내가 동남아에서 6년 넘게 일하다가 왔다는 얘기를 하면
꼭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와. 골프 많이 쳤겠네요?"
내가 골프를 치지 않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질문이 살짝 다르다.
"그 좋은 곳에서 골프 안 치고 뭐했어요?"
"아 바빠서 못 쳤어요"라고 대충 둘러대지만
당시에 나는 골프가 아닌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결혼도 안 했고 자식도 없는 총각시절,
일년 365일 중 300일 이상을 호텔 생활을 하던 때였다.
그 물가 싸고 저렴한 동남아에서 맞은 주말만
마음만 먹으면 골프는 물론이고,
어떤 취미생활도 수준급에 올려놓기 충분한 기회였고,
지금처럼 글 썼으면 책을 써도 몇 권 쓸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황금주말에 내가 한 것은
'일'이었다.
한주 동안 못한 업무를 몰아서 하고,
다음주 있을 발표와 워크샵과 토론을 준비하고,
이를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줄 참고서적을 읽고 있었다.
어디 주말뿐이었겠는가.
퇴근하고 혼자 있을 밤에도
쉬는 거 아니면 대부분 야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 시간이면 충분히 끝날 일을
더 고민하고, 더 잘 만든다고 두세 시간을 썼고
(내 일 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인데도!)
안 해도 누가 뭐라하지 않을 일들을
참 많이도 벌렸다.
수십 명씩 모이는,
그래서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이벤트들을 계속 제안하고 개발하고 리딩했고,
역량이 부족한 멤버들을 도와줄 교육 자료만
혼자 50개 이상 만들어냈다.
누가 뭐 좀 도와달라고 하면,
한두 줄 써서 보내주면 될 걸,
아예 번듯한 자료를 만들어 보내주기도 했다.
그 결과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고,
좋은 인정을 받았다.
내가 컨설팅을 했던 공장들은 모두들
역사상 최고 성과를 연이어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고,
나는 매년 최고 성과 등급을 받으며 연봉도 많이 올렸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다 덧없는 일이었나 싶다.
내가 그렇게 공들여 성과를 올려놓은 기계들은
아예 새로운 기계로 대체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내가 역량 개발을 도와주려고 부던히 노력했던
동남아의 친구들은 거의 90% 이상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몇 없다.
내가 세팅했던 각종 시스템도 리더십이 바뀌고
나와 일했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자연스레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들었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면,
나는 왜 그 때, 그렇게 일했어야 했나 싶은 것이다.
결국은 사라질 것들에 왜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쳤나 싶다.
나름대로 뜨거운 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성취감도 있었고 내 역량도 많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어떤 새로운 일을 부딪쳐도 어떻게 대처할지
머리가 빨리빨리 돌아가는 걸 보면
젊었을 때 몸 바쳐 일한 것이 효과가 분명 있다.
하지만, 좀 더 '나'를 위해 시간을 썼어야 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노력,
내 몸값을 올리기 위한 노력,
좀 더 다채로운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경주 했어야 했다.
동남아니까 골프도 한번 배워보고
글쓰기 좋아하니까 작정하고 장문의 글을 적어보고,
아니면 헬스장 가서 체력이라도 키워놨어야 했다.
열심히 살긴 했으나,
그 열심의 절반이라도
그냥 증발해버릴 회사일이 아닌
나에게 쏟았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황금기였던 그 시절을
영악하게 보내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