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모의고사에서 전교 391등을 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거머진 것은
내 평생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정작 수능은 그 정도까지는 안 나왔다만)
사실 고등학교 공부라는 게
그 후 펼쳐지는 삶의 어려움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 때 짜릿한 역전의 기억이 두고두고 내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때 너무 무리해서일까.
정작 더 깊이 공부를 해야 할 대학생이 된 나는
이미 공부에 질려있었다.
겁 많은 성격이라 크게 일탈은 못해 꼬박꼬박 수업은 참석하고
숙제도 내고 시험도 때가 되면 벼락치기 해서 임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냥 공부하는 시뇽만 냈던 것 같다.
당연히 1학년 1학기 성적은 싹다 C- 에서 C+ 사이.
결석 없고 숙제 대충 내고 시험은 못 친 녀석들이 받는 학점이었다.
군대 다녀와서는 조금 정신 차리긴 했지만
여전히 고등학생 때와 같은 열의는 없었다.
졸업할 때쯤 보니 졸업에 필요한 최소 학점을 단 1학점도 초과하지 않은 채 딱 맞춰 들었고
재수강도 4년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냥 최소한의 공부만 하고 졸업하고자 하는 생각이었던 거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내 실패 중 하나였다.
조금 더 깊이 공부를 했으면, 좀 더 길게 공부를 했으면
그 다음의 인생 경로를 더 현명하게 고르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인 공부를 좀 더 활용했다면,
사회에서의 출발점을 다르게 가져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졸업 후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회사가 고맙게도 EMBA 대학원 공부를 시켜줬고
공부할 에너지가 꽉 차 있던 나는 운좋게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공인은 아니지만)
그러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나는 공부 체질이 맞다.
그러니 너무 섣불리, 그러니까 학부 졸업할 때쯤인 스물 여섯에 인생을 결정하지 말고
좀 더 공부하면서 기회를 엿봤어도 괜찮을 거였다.
학교에서 공부를 게을리하고,
더 나아가 가능한 빨리 공부를 그만두려고 했던 나는,
졸업 후 취업 시즌에 좀 황당한 결정을 하게 된다.
이는 실패이야기 #4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