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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이었던 2003년 여름, 역삼동에 위치한 삼성 SDS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다. 

인턴이라지만 나름 삼성의 정식 채용절차를 거쳐 선발되었고,

이 제도는 졸업 후 시험 없이 삼성의 그룹사 중 원하는 곳에 공채로 입사할 수 있게 해주는, 

취업준비생에게는 굉장히 좋은 제도였다.

(내가 그 제도의 1기 수료생이었고, 회사 입장에서는 꽤 불리한 제도였는지 곧 폐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인턴 경험은 내게 독이 되었다. 

 

2호선을 타고 출근하는 매일 아침, 이른바 '푸쉬맨'이 사람을 밀어넣는 끔찍한 지옥철을 경험했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사람들의 젖은 우산과 축축한 옷, 가방에 치여 회사에 도착하기 전에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출근 후 회사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사무실에 있는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푸쉬맨이 직원들을 하루 종일,억지로 밀어넣고 어디론가 보내는, 그런 느낌이었다. 

회사 자체가 지옥철로 보였다.  

 

이 때의 일로 나는, 

4학년 2학기 본격적인 취업 시즌이 시작되었을 때 

내 실패를 불러온 하나의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다. 

 

"서울을 떠나자"

 

2호선 지옥철 같은 삶보다는 

지방의 한적한 비둘기호 같은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콩나물 시루 안의 별 볼 일 없는 콩나물 대가리로 사는 것보다는 

한적한 들판에 덩그러니 놓여진 느티나무로 살아가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에 그에 딱 맞는(그렇게 보이는) 회사와 직무를 골랐고

우여곡절 끝에 합격했다. 그리고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대전,

그것도 5일장이 열릴 만큼 개발이 잘 되지 않은 끄트머리 신탄진으로 이사했고

지하철이 아닌 자전거를 타고 아침 7시에 출근하여

오후 4시에 퇴근하는 (동절기에는 3시 반에 퇴근하는)

딱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았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든 서울에 붙어 있었어야 했고,

서울에서 승부를 봤어야 했다. 

낙향은 그 이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너무 일찍, 경쟁에서 도망쳤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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