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월드컵은 전혀 기억이 안 나니
나의 월드컵은 1990년부터이다.
당시 첫 경기 전 동네 작은 백화점 앞에 커다란 축구모형을 하나 가져다놓고는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쓰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한 켠에 '김주성 선수 화이팅'이라고 적었던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1994년 월드컵, 특히 스페인전은 학교 수업 시간에 틀어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서정원의 동점골에 환호했던 게 아직 생생히 생각나고,
1998년 월드컵은 시간 많은 스무 살 때라 아시아 예선부터 붉은악마들 따라 다니면서 열심히 응원했었다.
2002년 월드컵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이후도 4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국가대표 유니폼을 사 모으고
예선전부터 한 경기도 빼지 않고 보는 등 나름 충성스런 축구팬으로 지내왔다 생각한다.
이렇게 1990년부터 월드컵을 본 축구팬 입장에서,
더불어 K리그를 유럽축구보다 더 좋아하는 팬으로서
대한민국의 월드컵을 나름 정의해보자면,
4년에 한 번, 질 가능성이 높은 세 번의(운 좋으면 네 번의)
수준 높고 어려운 경기를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가슴 졸이며 응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가 잘했다 누가 못했다 따질 것도 없다.
경우의 수도 열심히 따질 필요 없다.
그냥 이렇게 월드컵 본선 보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감사한 일인 거다.
이번처럼 멋지게 이기는 경기 나오면 너무 즐거운 거고
이번처럼 한 경기 더 보게 되면 더욱 즐거운 거다.
그러면서 4년 뒤에도 또 볼 수 있겠지 하며
흐믓한 미소로 마음 정리하면 되는 거,
그게 대한민국 축구팬의 월드컵이라 생각한다.
이 정의대로 이번에도 열심히 응원하고, 열심히 즐겼다.
결과뿐만 아니라 예선부터의 과정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오래전부터 축구를 알게 되고 팬질할 수 있어 감사하며,
4년 뒤를 또 기대해본다. 사실 그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아시안컵, 올림픽, K리그 등 축구 이벤트는 계속 이어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