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16년도 지난 일이지만,
왜 하고많은 회사 중에 유한킴벌리에 들어갔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회사 이미지가 좋아서, 입사 당시 유명했던 문국현 사장님의 카리스마에 끌려서 등
살짝 포장된 얘기를 먼저 꺼내겠지만
솔직한 대답은, “좀 편안하게 회사 다니고 싶어서” 이다.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직원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곳이니 사람 막 갈구지도 않고,
4조 2교대 근무, 평생학습 등을 자랑하는 걸 보면 업무 많이 하지도 않으며,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화장지 기저귀 생리대는 계속 쓸 테니 회사가 망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이다.
여기에 당시에 합격한 회사가 몇 개 안 되어서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까지 추가하면
포장을 벗긴 아주 솔직한 이유 되겠다.
지난 16년을 돌아보면 내 생각은 틀림이 없었다.
다른 회사 안 다녀봐서 잘 모르지만 이 회사 사람들 대부분 착하고 남들 괴롭히지 아니하며
삼성이니 현대니 잘 나가는 기업보다 평균 근무시간도 분명 작다고 생각한다.
출산율이 바닥으로 내리꽂고 있지만 회사는 여전히 준수한 영업이익을 내고 있고
내가 은퇴할 때까지 망할 리스크도 그리 크지 않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평균의 얘기이고,
나 개인을 돌아본다면,
지난주에도 3일은 새벽 한 시 넘어서까지 일했고,
아무도 갈구는 사람 없지만 스스로를 계속 갈구고 있으며,
이번에 직무가 180도 바뀜으로 내 대외적인 커리어패스는 완전히 꼬였고
60세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다.
그러면서 잘 나가는 회사의 잘 나가는 직장인들처럼 벌지는 못하고 있지.
(위생용품 회사가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는가)
세상 모든 일은 정규분포를 그리기 마련이고,
평균과 동떨어져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일부가 늘 존재한다.
지금 와서 깨달은 거지만 이미 한 2009년부터
나는 이 회사의 정규분포, 그 끝단에서 놀고 있었다.
이러려고 이 회사에 온 것은 아닌데 말야.
입을 삐쭉거리며 파워포인트를 연다.
다음 주 월요일 발표 자료 만들어야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