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기록 많이 남기는 사람, 많지 않을 것이다.
일기는 86년부터 꼬박꼬박 쓰고 있지,
가계부도 10년 째 쓰고 있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기록한 문서도 거창한 이름으로 하나 마련하여
역시 오랫동안 업데이트하는 중이다.
하다못해 이 문성닷컴도 이미 만 17년이 넘었으니,
일단 한 번 시작하면 꾸준하게 기록하는 게
몇 안 되는 내 장점 중 하나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기록들을 잘 돌아보는 편은 아니고
그냥 쓰고 남겼다에 의의를 두는 편이다.
예전에 썼던 글을 잘 뒤져보지 않는 것은,
애초에 이런 걸 미래에 써먹어보겠다고 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순간순간의 감정을 휘발시키지 않고
잡아보겠다는 것에 뜻을 둔 것이기도 하며,
다른 하나는 예전의 감정을 굳이 되새김할 필요를 못 느껴서이다.
지금도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고 있는데
예전 슬펐고 힘들었고 괴롭던 감정을 다시 끄집어내
씹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언젠가 은퇴한 후, 혹은 모종의 이유로 바쁘지 않게 살게 된다면
아마 1986년부터의 일기장을 한 장씩 넘기면서 회한에 잠겨보기도 하고
수시로 기록했던, 한 번도 맞은 적 없는 '문성 진로 계획' 같은 것을 뒤져보며 키득거리기도 하겠지만
아직은 요원한 얘기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기록을 쌓는다.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바로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