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전만해도, 시련과 결핍이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믿었다.
젊은 날에는, 사서 고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하게 시련도 겪어보고,
돈이든 뭐든 필요한 것이 충분치 않은
이를 발판으로 나중에 더 큰 시련이 왔을 때
잘 이겨낼 수 있고 더 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 주위를 바라보니
이게 정말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크게 방황하지 않고 젊을 때부터 모나지 않게 자기 일 하는 동시에
적절하게 재테크도 하면서 자산을 불려온 사람들이,
자신을 그야말로 깎아가며 사회적 성공을 이룬 사람들보다
과연 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반지하방에서 고생하며 공부하여 성공의 신화를 만든 사람들보다
운 좋게 괜찮은 집에서 태어나 부모 도움으로 일찌감치 아파트 장만하여
그거 오른 것으로 몇 억씩 벌어 안정적 미래를 보장 받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
돌아보면 나는 늘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당장 내년에 내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는데,
이런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10년 뒤, 20년 뒤를 내다보며 무엇을 준비하기 보다는
매해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 급급하며 살아왔다.
다행히 그 결과로 나름 큰 불만 없는 삶의 수준에 도달하긴 했지만
막상 이 자랑할만하지도 않은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와 보니
이 언덕에 오를 수 있는 더 쉬운 길이 굉장히 많았고,,
이보더 훨씬 더 쉬운 방법으로 더 높고 거대한 산에
오를 수 있음도 보게 되었다. 그 쉬운 길이
결코 비난 받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닌 것도 함께.
물론 산과 언덕의 높이로만 인생을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만,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내 아들과 딸의 머리가 굵어졌을 때
걔네들이 듣고 안 듣고를 떠나
아버지로서 나는 어떤 인생의 길을 제시할 수 있을지 말이다.
좁은 길을 굳이 택하고 결핍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끝끝내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장을 이루는 삶이 낫다고 할 것인가
최대한 빨리, 편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인생 길에 뿌려진 소소한 행복들을 찾아가며 편안함 속에 머물라고 할 것인가.
평생 내 대답은 항상 전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자와 후자 사이 그려진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아주 어중간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