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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할머니가 바늘귀에 실을 꿰지 못해 대신 해달라는 걸 보고

왜 이걸 못하시지 의아해 했었는데,

어젯밤 바지주머니에 단추 달려고 반짇고리를 꺼냈다가 식겁했다.

무심코 작은 바늘을 꺼냈는데 도무지 바늘구멍에 실을 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타겟이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손이 흔들려 도저히 해낼 수가 없었다.

 

포기가 빠른 남자답게 몇 번 시도 후 바로 새끼손가락 길이만한 큰 바늘로

바꿔서 가까스로 바느질은 끝냈지만 실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게 처음이 아니었다. 몇 년 만에 프라모델 하나 샀더니

작은 부품이 잘 보이지가 않아 감에 의지해 대충 끼워 맞추면서 고생 아닌 고생을 했었다.

프라모델에 붙이는 스티커는 핀셋을 써도 제자리에 정확하게 붙이는 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늙어서 노안이 온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아내가 흰머리를 발견해 뽑아주는 일이 잦아졌다.

종아리가 자주 아파서 정형외과를 갔더니 근육 노화의 가능성을 들었고,

어제 피부과 갔더니 색소침착 문제가 있다더라.

 

“내가 늙어가고 있구나”하는 것은 몸이 성장을 마친 직후부터 꾸준히 느낀 것이지만

지금의 “내가 늙었구나”와는 느낌가는 사뭇 다르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구나”와 “이미 산중턱까지 내려왔구나”의 차이랄까.

 

예정된 수순을 밟아가는 것이기에 올 게 왔구나 싶으면서도

적어도 내게는 5-10년 늦게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기에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

아직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이것저것 알아보고는 있지만

끽해야 몇 년 늦출 수 있을까.

 

세상만사 그러하듯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는 법이다.

이미 힘들어진 바늘귀에 실 꿰는 것이, 내가 뭔가를 한다고 해서 갑자기 다시 쉬워질 리는 없다.

 

어찌 보면,

‘늙어가는구나’에서 ‘나도 늙었구나’, 그리고 앞으로 있을 ‘정말 완전히 늙어버렸구나’까지,

한 단계 한 단계를 손사래 치며 애써 부정하고 거부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그 과정 자체가

노화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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