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몰라도
예전부터 옷 사고 화장품 사는 데에는 돈 제법 쓰는 편인데,
가끔씩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공도 그렇고 회사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인풋 대비 아웃풋을 최대한 끌어내는 효율성 분석 개선과 관련이 깊은데,
오랫동안 몸 담아온 이쪽 분야의 시각에서 보면,
패션에 투자하는 것은 ‘자기 만족’이라는 매우 주관적인 요소를
차치하면 효율이 매우 낮은 일에 다름 아니다.
여기 ‘긴 글’란에도 한 10년 전쯤 비슷한 글을 적기도 했는데,
타고난 외모가 떨어지는 사람은 아무리 꾸며봤자
여전히 못생긴 거고,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은
너무 누추하거나 유행에 뒤떨어지게 다니지만 않으면
여전히 잘생기고 멋진 거다. 차이가 역전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별로 좁혀지지도 않는 것 같다.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생각이다.
내가 고가의 맞춤 양복을 입고 번쩍거리는 값비싼 시계를 차고,
최고급 소가죽으로 만든 멋진 구두를 신고 다닌다 할지라도
스파 브랜드 옷으로 대충 입고 나온 키 크고 잘 생긴 친구보다 더 나아 보일 리 없다.
내 얼굴과 몸의 구조적인 문제는 좋은 옷을 입는다고 가려지지 않으며
비싼 브랜드의 옷과 화장품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지지도 않는다.
열심히 돈과 시간을 부어 봤자 타고난 외모 점수인 50점에서 (예를 들자면)
기껏해야 한 5점 정도 추가될 것이고,
날 때부터 90점 넘는 친구들은 물론 70점 대의 친구들도 못 따라잡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단 5점이라도 올려야 하기 때문에,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왠지 안 될 것 같기에
우리는 여전히 꾸미는 데 많은 돈을 쓰고 있으며,
덕분에 백화점과 쇼핑몰은 그렇게나 장사가 잘 되고
온라인 쇼핑몰 운영으로 떼돈 번 젊은 사장님들이 끝도 없이 등장하는 것이며,
나 역시 이번에는 뭘 사야 되나 자주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있는 것이지만,
오늘처럼 가끔씩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대체 뭘 위해, 꾸미는 데 그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 것일까.
우리의 노력을 합당한 가치를 맺고 있는 것일까.
'자기만족'이라는 미사여구로 쉽게 덮어버리는 게 옳은 일일까.
... 이런 생각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구매하기 일보 직전의
인터넷 사이트를 아주 힘겹게 닫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