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으니 어언 31년째.
꼬꼬마 때 쓴 일기야 다 누구랑 뭐하고 놀았다는 내용 밖에 없지만,
조금씩 철이 들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일기를 돌아보면
전혀 의도하지 않게 전체를 아우르는 큰 주제가 하나 있다.
‘나에 대한 불만족’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스스로에 대한 반성, 질책, 비판, 비난이
일기 곳곳에 들어차 있다.
외모와 성격, 모자란 능력에 대한 답답함,
일이나 학업, 관계에서의 실수와 실패에 대한 아쉬움,
게으름과 나태에 대한 짜증까지,
이런 일기들로 돌이켜보건대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유독 ‘내가 되고 싶은 나’에 대한 갈망이 컸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내 자신’은 형편이 없으니
늘 답답하고 화가 났던 것 아닐까.
그리고 아쉽게도 이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내 자신’ 사이의 간격은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지기만 한다.
노화로 인한 신체의 쇠락과
그에 비례하여 급증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은
내 스스로에게 투자할 시간을 참 많이도 앗아갔고,
예전에 비해 확연히 떨어진 정신적 의지력은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좀 쉽게 말하자면,
허구 헌 날 야근하고, 야근 안 할 때는 집안일과 육아에 바쁘고,
남은 시간에는 누워서 TV보거나 인터넷하고 놀고 있으니
어찌 그 간격이 줄어들겠냐는 거다.
연말을 맞이하여 찬찬히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참 못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말엔 더 흉악한 나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수십 년 지겹도록 일기에 적은 말들이지만,
오히려 지금 더 절실하게, 더 강하게 필요한 말들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자.
나를 이대로 두지 말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