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손과 발에 사마귀가 심하게 났었다. 손에 난 녀석은 마치 문둥병처럼 보기 흉하게 번져 있었으며, 발바닥에 난 녀석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게 박혀 있었다. 그대로 둘 수 없어 레이저로 태워보기도 하고 냉동 치료를 하기도 했는데, 얼마 안 가 금방 부활하고 좀처럼 낫지가 않았다. 효과가 있다는 얘기에 봉침까지 몇 번 맞아 봤는데, 오히려 부작용으로 현기증이 나 길에서 풀썩 쓰러지는 등 더 큰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우연찮은 계기로 매일 먹던 영양제, 건강기능식품 – 오메가3, 비타민, 홍삼환 등 – 을 일제히 끊어 보았는데, 세상에, 2주가 채 가지 않아 열 군데 가까이 나 있던 사마귀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때 먹던 약 중 어떤 녀석이 내 몸과 심하게 맞지 않았던 듯하다. 자연스럽게 그 때 이후로 일체의 영양제를 끊고 어떤 건강식품도 먹지 않게 되었는데, 다시 예전처럼 사마귀가 날까 하는 두려움보다는 지독한 불신 때문이었다. 돈은 비싼데 몸을 좋게 하기는커녕 심각한 부작용만 생기니 먹을 이유가 없는 게 당연하잖은가.
그렇게 6년을 약과는 거리를 두고 살다가 최근에 다시 몇 종류의 영양제를 먹게 되었다. 작년 한국으로 돌아와서부터 무리한 근무와 스트레스, 운동 부족으로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일반적인 접근법 – 밥 잘 먹고, 잘 쉬고, 운동 종종 하고 등 – 으로는 회복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험 삼아 몇 개를 사본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복용 2주차부터 확연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고 예전보다 확실히 피로를 덜 느꼈다. 머리가 맑아진 듯 했고 구내염이 말끔하게 나았다. 플라시보 효과일 수도 있고 그간 하도 약을 안 먹다 보니 약발이 잘 받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매우 신기하면서도 고무적인 결과였다. 다행히 사마귀나 다른 부작용도 아직 없으니 아쉬울 게 없을 정도이다. (이 홈페이지도 약 먹고 체력이 돌아오니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약이 먹히는 나이, 약이 정말 필요한 나이가 된 것 같아서 서글프기도 하다. 이렇게 한 번 효과를 보면 계속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점점 약병 수도 늘어날 것 같고, 분명 오래지 않아 효과도 반감될 것이다. 약발이 받는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닌 것이다.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힘으로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 약은 이를 도와주는 보조용으로만 보면 될 뿐이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약으로 영구적인 건강을 얻을 수는 없다. 약발 좋다고 안심할 일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