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by 문★성 posted Mar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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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로 드롭이나 청룡열차 등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낙하하며 짜릿한 쾌감과 공포를 쌍으로 안겨주는 놀이기구를 탈 때 가장 무서운 순간은 언제일까? 기구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할 때? 혹은 엄청난 속도로 밑으로 떨어지는 도중? 아니다, 우리가 가장 척연한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자일로 드롭이 끝까지 올라가 최정점에서 딱 멈춰 섰을 때, 청룡열차가 천천히 철로를 타고 뻗쳐올라 한없이 높은 고갯길의 꼭대기를 막 지날 때이다. 이제부터 온갖 무서움이 물밀듯이 몰아칠 것을 정신과 육체가 동시에 감지하고, 땅보다 하늘이 더 가까이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말이다. 그 다음부터는 익히 아시는 대로다. 정신 없이 마구 소리지르다 보면 어느새 지평선에 도달하게 된다.

 

 

나이 드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십대 후반, 이십 대 초반만 하더라도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는 많지 않다. 주위의 많은 아저씨, 아줌마들처럼 자신도 늙을 것이라는 것을 전혀 실감치 못하는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일로만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하늘 끝까지 영원히 뻗어가는 놀이기구가 없듯 어떤 이들은 스물 다섯 즈음, 어떤 이들은 서른 즈음, 어떤 이들은 그보다 더 빠르거나 더 늦은 시기에 인생의 정점에 이르게 된다. 승진을 하였다거나 로또에 당첨되었다거나 하는 빛나는 순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는 것이 더 이상자라는 것이 아니라늙는 것이 되어버리는 인생의 변곡점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 꼭지점에서, 우리는 놀이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절절하고 으슬으슬한 공포를 실감하게 된다. 조물주가 만들어놓으신 인생의 최대 비극 중 하나, 즉 나이 듦의 공포를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외모가 가장 아름답고 오장육부가 가장 건강한 젊은 시절이 지나갔으며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아차리면서 곱씹게 되는 비통함이다. 자신이 이미 늙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부터 늙을 것을 알기에 드솟는 비창이다. 그렇기에 이 시점은 인생에 있어 가장 슬프고 아픈 통과지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내 얘기를 해보자. 찬찬히 살펴볼 것도 없이 지금의 내 모습은 5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열심히 살았기에 그때보다 아는 것도 많아지고 인생의 깊이도 지심해졌으리라 생각하지마는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피부나 몸매 등 다른 몸 상태의 질 역시 떨어졌다. 길거리에서 말 거는 사람들도 이제는저기, 학생이 아닌 ‘저기요, 아저씨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어딜 가서 나이 얘기를 하면 대부분생각보다 나이 많네라는 반응이지 예전처럼한참 좋을 때네’, ‘아직 어리네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5년전 내 모습)

 

그렇다. 부정할 수 없다. 난 인생의 변곡점을 막 지난 것이다. 정점에서 경험했던 우울함과 심각함은 조금은 덜게 되었지만 아직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더불어 내년의, 혹은 5년 뒤의 나의 모습이 지금보다 어려 보이거나 젊어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내리막은 더 가팔라 질 것이고 나는 정신 없이 소리 지르며 땅을 향해 곤두박질 치게 될 것이다.

 

 

그런 내 눈 앞에벤자민이 보였다. 나와는 다르게,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는 다르게 인생의 정점을 다르게 가져가는 사람. 끝없이 올라가기만 하는 청룡열차를 탄 사람 말이다. 그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가 그렇게 아쉬워하고 염원하는 젊음을 얻어가며 보는 이의 시샘을 자극한다. 물론 그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특이한 삶이 축복으로 느껴지진 않았겠지만, 보는 이로써는 충분히 부러워할만한 일이다.

(십대의 벤자민)

 

우리 또한 그와 같은 인생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 어차피 어릴 때야 젊음의 중요성을 잘 모르니 노년의 몸 상태를 가지고 있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름다워지고 점점 멋있어지는 자신을 만나게 되면 어떨까? 젊음은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자 축복이기에 좀 더 지혜로워졌을 때, 세상이치를 더 잘 파악하게 되었을 때 이를 향유하게 된다면 더 복된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인생의 정점에서 나이 듦이 그냥 멈추는 것은 어떨까? 이십 대의 신체를 가지고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이다. 육십, 칠십이 되어서도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넘치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때쯤 가지게 될 인생의 많은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조물주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셨다. 어릴 때는 너무도 귀엽고 예쁜 모습으로 사랑받고 보호받게끔 하시고, 청장년 때는 정점에 이른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공부든 운동이든 사랑이든 많은 일을 하게끔 하시며, 내리막에 접어들게 되면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그들을 양육시키면서 점점 자리를 내주게끔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것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순리, 벤자민 버튼은 현실엔 없다. 보톡스와 각종 성형수술로 정점을 연장시키고 있는 가짜 벤자민들만 있을 뿐이다.

 

이런 태고적 한계 때문에 우리는 젊은 시간을 더 소중히 보낼 필요가 있다. 수십 년 뒤 왜 그 좋을 때 그렇게 행동했을까, 왜 그렇게 좋을 때 그 중요한 것을 하지 않았을까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지혜는 인생의 정점이 한참이나 지난 후에 주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노년에도 그 지혜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 전에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지혜를 갖고 지금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간다면, 주위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또 하나의 진짜 벤자민 버튼을 발견할 것이다.

 

 

Message to Life:

 

영화라는 예술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영화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감상을 줄 영화다. 관람자가 지금 몇 살이며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 나이 듦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생의 오르막을 막 올라가는 중인가? 그렇다면 벤자민의 이야기에 크게 부러움을 느끼거나 나처럼 진지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내리막을 한참 타서 이제는 종착지가 가까이 왔다고 느끼는 분이면 아마 내가 느낀 것보다 배는 더 심한 쓸쓸함을 느꼈을 것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게끔 하는 영화만큼 좋은 영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좋은 영화는 참으로 적다. 어려운 철학적 주제를 들고 나오는 영화는 많지만 보는 이의 공감을 살만한 영화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좋은 주제를 잡고, 깊은 고찰을 통해 구성이 좋은 스케치를 그려 냈으며, 특별한 주인공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의 주위사람들과의 적절한 대비를 통해 주제의 색깔을 제대로 칠해내었다. 그 색감과 구도는 우리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며, 고로 좋은 영화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하등 아까울 것이 없다.

 

(2009년 2월 27일)

 

 

  

<별점: ★★★★★★>

 

 

젊어지는 벤자민보다 늙어가는 그의 연인 데이시의 모습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게 꽃다운 소녀가 그렇게 아름다운 숙녀로 꽃피더니

어느새 꽃대신 주름으로 몸을 휘감고는 곧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나도 동일한 테크트리(?)를 탈 것임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