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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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때 한국에서 처음 정식 발매된 콘솔 게임기 ‘재믹스’를 손에 잡았고,
한국 최초의 게임잡지 ‘게임 챔프’를 창간호부터 사봤을 정도니,
나와 게임과의 관계는 꽤나 오래된 편이다. 비록 언젠가부터 소원해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일 년에 몇 번 얼굴 마주하지도 않는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게임으로서는 억울한 노릇이겠지만, 난 우리 이별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철 든거지, 뭐.”
사이가 멀어지기 전 내가 주로 하던 게임은 액션이 거의 가미되지 않은 어드벤쳐나 롤플레잉 게임류였는데,
바싹 긴장한 상태에서 촌각을 다투며 내 수명을 스스로 단축해버리는 게임보다는
핫쵸코 한 사발 받아놓고 느긋하게 즐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다른 게임 장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나를 잡아끄는 아주 짜릿한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선택지’라는 개념이었다.
(인터넷 검색해서 아무 거나 갖다 붙인 그림)
선택지는 스토리 상에 있어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방향을 결정하는
일종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느냐에 따라 향방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선택지의 경우 한 번 선택을 잘못 하는 것만으로 잘 나가던 게임이
베드 엔딩으로 끝날 수도 있고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꼬일 수도 있다.
반대로 선택 하나 제대로 하는 것만으로 공주님과 결혼에 골인하거나
아주 환상적인 아이템이나 써먹을만한 동료를 얻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신중하게, 지혜롭게 선택을 잘 해야 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당근을 먹을래, 사과를 먹을래’와 같은 별 거 아닌 선택지에도
앞뒤 상황을 잘 고려해 조심스럽게 결정을 내려야지,
내 캐릭터가 ‘백설공주’임을 망각한 채 ‘사과 먹을래요’를 클릭했다간
어느새 남해안 새우처럼 등을 둥글게만 채 바닥에서 퍼덕거리고 말 것이다.
가만, 이쯤 되면 느낌 오셨을 게다.
선택지의 개념은 바로 우리네 인생에서 적출해낸 추출물이며
선택지가 들어간 게임은 우리네 인생의 모사(模寫)란 것을 말이다.
물론 인생이야 게임의 화면처럼 몇 가지 보기를 예쁘게 보여준 다음 고르라고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이미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백 수천 번의 선택지를 거쳐온 우리는 매 선택의 순간이 올 때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선택의 순간을 잘 감지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음’을 고른 것과 같으니 선택지를 지나온 것과 매한가지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하나하나의 선택의 결과,
그것들의 조합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게임에는 세이브와 로드라는 기능이 있어 잘못 선택했음을 깨달은 순간
다시 선택지로 되돌아 올 수도 있고 이쪽 길과 저쪽 길 모두를 경험해볼 수도 있다.
고로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가 다시 찾기도 하며
닌자가 되었다가 변호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어떤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라는 말이 국가대표 관용어로 애용될 만큼
선택의 파급력은 크고 이미 지나온 선택지는 아교풀로 강하게 달라붙은 종이처럼 다시 뜯어낼 수 없다.
다른 선택을 통해 어느 정도 만회할 수는 있겠지만 한 번의 선택, 그 자체를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버젓이 키보드를 치고 있는 걸 보니 아직 내 인생은 아직 엔딩에 다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수많은 선택지에서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예를 들어, 2004년 12월 26일 오전 11시쯤, 유한킴벌리에서 불현듯 걸려온 전화.
“추가합격 하셨는데요, 저희 회사에 올 의향이 있으십니까? 오늘 안에 결정해주세요.”
이를 거절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런지.
그냥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에 취직했다면?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문성닷컴 다 말아먹었을 수도 있고, 벌써 결혼해서 애아빠가 되었을 수도 있다.
혹은 예기찮은 사고로 배드 엔딩을 맞았을 수도. 그러나 알 수 없다. 절대로 알 수 없다.
그 선택지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내 인생에는 세이브/로드 버튼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나비효과’는 이 선택지의 개념을 주된 소재로 삼는 영화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야 양자역학의 평행우주론 및 제목대로 나비효과 그 자체도 고려를 해봐야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 마음은 마치 선택지가 흩뿌려져 있는 한 편의 걸작 어드벤쳐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뭔가 신비한 운명을 타고난 주인공이 어렸을 때부터 쓴 일기장을 마법의 양탄자 삼아
인생의 여러 분기점을 돌아다니며 다른 삶을 살아본다는 개념은
어떻게 보면 ‘백투더퓨쳐’식의 어린이 영화에서도 충분히 쓰일만한 구조인데,
이런 기본 포맷의 유치함을 덮어버리고자 해서인지 영화는 삭막하고도 무서운 아우터를 덧입고 있다.
주인공이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이전 선택지로 돌아갈 때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마치 불행에 대한 열역학 제1법칙이 있는 것처럼 아무리 애써봐도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으며
끝내 자기가 태어난 것 자체가 불행의 시작이었다는 애달픈 종말로 치닫고 만다.
그 깨닫지 말았어야 할 것을 깨달은 대가로 인생 첫 번째 선택지로 돌아간 주인공의 모습은
마지막 선택지에 서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박하사탕'의 설경구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어찌보면 박하사탕은 돌아갈 수 없었기에, 돌아가고픈 이들에게 우울을 안겨주었다면
나비효과는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고픈 이들에게 우울을 안겨주는지도 모른다.
돌아갈 수도 없지만, 돌아가서도 안 되는 것이 인생......
영화의 특성상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것을 설명하기가 어렵기에 여기저기서 논리적 비약이 엿보이며
초중반엔 지루한 느낌도 주나 영화의 프레임이 이해되는 시점부터,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포가
제 색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비효과는 그 어떤 영화 못지 않은 속도감과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독특한 주제의식과 상상력의 동원, 아역에서 성인역에 이르기까지, 연기력 있는 배우들의 설득력있는 변신 등
생각할 거리만큼 볼거리가 많은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때문에 여 영화가 주는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기 전의 선택지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내 선택은 동일할 것이라 믿는다.
Message to Life:
후회 같은 것을 별로 안 하는 성격이긴 하나 내게도 ‘그 때 왜 그렇게 했을까?’ 싶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선택임이 분명한데 그 때는 어리석어서인지 철이 없어서인지 판별해낼 만한 지혜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그때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함부로 확신해서는 안 된다.
그 때의 선택이 -50점 짜리라고 해서 다른 선택이 100점짜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되레 다른 선택은 -2500점의 엄청난 악재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니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손을 털자. 잊어버리자. 앞만 보며 나가는 거다.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미래를 만들고 있기에.
(2009년 1월 24일)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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