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섹스 앤 더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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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작년쯤이었던 것 같다. 로스트, 24시, 프리즌브레이크 등 미드(미국드라마) 열풍이
하늘을 캄캄하게 가려 장대비를 내리 쏟아 부었고
수많은 이들이 그 속에 흠뻑 젖어가며 양손 엄지손가락을 모두 치켜세운 채 극찬에 극찬을 거듭하던 게 말이다.
그 인기는 실로 무서울 정도였다. 오늘은 한 편만 보고 자야지, 했던 착한 마음들이
20편을 연달아 보게 할 정도의 불굴의 정신력으로 변모하기 일쑤였고,
디지털 기기와는 궁합도 보기 싫다던 사람들이 PMP 하나 씩 사 들고 앉아 지하철, 버스에서 드라마 삼매경에 빠졌으며,
학생 때도 잘 새어보지 않던 ‘날밤’을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반에 비로소 까보는 사람이 수두룩하게 발생했을 정도로 미드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 힘에 휩싸이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도 오싹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의지박약인 나 역시 발 한 번 담갔다면 여지없이 허물어져
퇴근하면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자정까지 드라마 앞에서 침을 흘려댔을 것이 자명한 노릇이긴 하다만.
이러한 ‘미드열풍’의 정점은 물론 프리즌브레이크가 찍은 것이겠지만,
도화선으로서의 ‘섹스 앤 더 시티’의 역할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잘은 몰라도 작년 냉장고 광고에서까지 ‘오늘은 뉴요커 분위기로~’ 식의 살짝 미친듯한 광고를 내게끔 한
뉴요커 열풍도 이 드라마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한 잔에 5~6천원 하는 스타벅스 커피나
인당 1만 5천원씩 받는 베이글 하나에 계란 하나 더한 바가지 브런치 역시 섹스 앤 더 시티가 제시한 생활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들은 바 있다.
그런 파급력이 결국 목돈 들여 영화까지 만들어 냈고, 나 같은 사람까지 극장에 한 자리 꿰고 앉아 감상토록 한 게 아닌가 싶다.
결국 극장판까지 나오게 한 미드는 로스트도, 24시도, 프리즌브레이크도,
하다 못해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미드의 시초나 다름없는 프렌즈도 아니지 않는가.
애초부터 극장판을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마무리지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어쨌거나
그만큼의 힘과 자신감이 이 드라마에게 있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물론 난 원작 드라마의 팬이 아니기 때문에 심도 있는 분석을 꺼내기는 어렵다.
드라마 팬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서비스 장면들도 낌새를 채긴 했는데 드러내놓고 환호를 보낼 만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여러 시즌을 통해 드러난 캐릭터의 성격이나 사건들을 가슴 속에서 하나씩 꺼내며 주인공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눈물을 훔칠 것도 아니며,
팬으로서의 의무에 입각, 영화상의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여 넓은 아량을 베풀 입장도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이 영화는 단순히 드라마 팬들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한 편의 단독작품으로도 그리 손색이 없는, 괜찮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매니아층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으나 드라마에서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을 각각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영화에서 다시금 상세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인물의 말이나 행동에서 인과관계를 무시한 비개연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영화의 맥을 이루는 스토리가 비록 드라마의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깔고 있긴 해도 어엿한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서의 기승전결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니만큼 4명의 여주인공을 공평히 드러냄에 있어 눈에 띄는 불균형은 느껴지지 않았으며
시간에 다급히 쫓기어 필름 편집용 가위로 삭둑질을 가한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결혼과 사랑이라는 주제 자체가 원작의 팬이 아니라도 충분히 호응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예상 외로 캐릭터보단 캐릭터를 통한 주제발현에 중점을 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역시 40이 넘고 50이 넘은 우리의 여 주인공들이다.
아무리 명품 구두를 신고 비싼 옷을 입고 번지르르한 치장을 한다 한들
영화관의 큰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밭두렁같이 깊은 주름과 추수 때 고구마 밭 같은 붉은 반점,
웃거나 웃을 때 얼굴에 사정없이 그어지는 수십 개의 선들은 가감 없이 그들의 나이를 짐작하게 하고,
그들이 그렇게 중요시하고 강조하는 ‘아름다움’이란 가치를 무색, 퇴색시켜 버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 그들은 모두,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아무리 명품, 멋진 스타일의 옷가지들로 꾸몄을 지라도
티셔츠, 면바지에 스니커즈 구겨 신은 이십 대 여성이 그들보다 몇 배는 아름다워 보인다.
물론 충분한 소득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합당한 소비를 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소득에 비해 늘 무리수를 일삼는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보다는 여러모로 낫다. 모범이 될 만하다.
다만, 크게 효과가 없어 보이는 저러한 ‘꾸밈’이 과연 우리가 마땅히 지향해야 될 바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을 뿐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제법 돈을 버는 사십 대 여성이 있다고 치자.
만약 한국 사회였다면 필시 결혼했을 것이고 맞벌이를 계속 한다면 아마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아이 사교육비에 퍼붓고 있어 여유가 없겠지만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혹은 아이 사교육비와 집안 운영비에 돈을 일정량 배정하고도 충분한 소비력이 남아있다면 어떨까.
과연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본받을만한 역할모델이 되어줄 수 있을까?
글쎄. 난 답을 모르겠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나갔다 하면 차를 쇼핑백으로 가득 채우고
올림프스 산의 신들처럼 희한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지 않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늘어난 뱃살에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그야말로 아줌마’도 별로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일터인데 결국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혜롭게 삶의 방향을 잘 잡아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부족하지도 않되 넘치지도 않을 정도의 균형 말이다.
난 남자라서 남자 나름의 문제에 계속 얽매여서 살아가겠지만 여성들도 참 골치 많이 아플 것 같다.
특히 외모의 문제에 있어서는 여성들이 남성보다 훨씬 민감하고 고민 많이 하니까 말이다.
이 영화에서 혼란을 느꼈던 것은 비단 이 주제만은 아니었다. 영화 내내 주구장창 말하는 결혼과 사랑 역시 내겐 어렵기만 했다.
결혼을 앞두고 한 없이 들 뜬 여자의 심정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어 하는 남자의 심정도,
바람을 핀 남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여자의 심정도, 너무 외로워서 잠깐 외도를 한 후 솔직히 고백한 남자의 심정도
조금씩은 이해가 가다가 또 어떤 부분은 전혀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을 느껴 버린 다든지 해서,
도무지 내 생각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지점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복잡한 심정은
내가 평소에도 결혼과 사랑을 생각할 때 느끼던 것의 양태와 정확히 일치했다.
즉, 영화의 내용이 날 혼란케 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 주제 자체가 내겐 계속 어렵고 힘든, 일종의 짐이었다는 것이다.
관련된 책을 그렇게 읽고 남자와 여자에 관한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왔지만 난 아직도 결혼과 사랑에 대해
뚜렷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지혜를 갖추지 못한 것 같다.
그 답을 찾아가는 노력은 아마 계속하겠지만, 과연 내가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까지,
누군가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할 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꼭 그렇게 되길 기도해야할 일이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이 홈페이지에 유레카! 라 외치며 결혼과 사랑에 대한 답을 멋들어지게 제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덤으로 사십 대 여성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좀 더 개념차게 말할 수 있으면 더 좋을 테고.
그 때까진 섹스 앤 더 시티류의 영화는 언제든지 두 팔 벌려 환영할테다.
<별점: ★★★★☆☆>
멋쟁이들에겐 나이듦이 더 슬픈 일일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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