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초속 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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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단짝인 철수와 영희는
나이에 맞지 않게 조용하고 조숙한 애들로
소란스러운 어린 녀석들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사이였답니다.
적어도 졸업과 동시에 영희가 멀리 거제도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 후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안부를 묻지만
아시다시피 거제도는 너무 멀기에
두 사이의 애절함과 애틋함은 커져만 갑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철수는 약속을 하고 영희를 만나러 가죠.
중학교 1학년으로서는 제법 용기를 낸 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차는 폭설로 인해
몇 시간이나 연착됩니다. 가다서다를 반복하죠.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철수는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서러운 눈물까지 흘러댑니다.
그 마음, 아시죠?
그런데
한 밤 중에,
약속시간이 한참은 지난 역에는
진작에 돌아갔을 것이라 생각했던 영희가
부동자세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가움에, 그리움에, 복받쳐 올라오는 슬픔에
둘은 한 동안 아무 말도 못하죠.
아름다운 설경 속을 같이 걸으며
철수와 영희는 손을 잡고
조금 때이른 듯한 키스를 하고,
밤새도록 얘기를 하고
각자의 각오를 다집니다.
이 사랑, 이 사람. 지키겠노라고.
그 날엔,
어린 날의 치기로 보기엔
너무도 순수하고 귀한 두 마음이
두텁게 쌓인 눈밭 위에 하얗게 빛났답니다.
세월이 흐르네요.
겨울은 계속 반복되어
두 사람을 고등학생으로, 대학생으로,
어른으로 실어갑니다.
그리고,
너무 멀리 있던 탓일까요.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하지만 뚜렷하게 식어 갑니다.
자주 왕래하던 편지는 뜸해지다
아예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고
서로를 담았던 가슴엔
다른 사랑이 깃들고 또 떠나갑니다.
그리고 또 다시
겨울입니다.
영희는 결혼을 약속한 어느 번듯한 남자와
살갑게 팔짱을 끼며
지난 날처럼의 예쁜 눈꽃을 맞이하고
철수는 사귀던 여성과 헤어진 쓸쓸함과
회사를 관둔 답답함을
하이얀 입김에 담아 쓰게 뱉어 놓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종종 그래왔던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떠올립니다.
한 때는 무엇보다 큰 의미로 자리잡았던 사람
지나가다 한 번쯤 스친 것도 같고
우연히 한 두 번은 마주칠 것도 같지만
다시 보지 못한,
다시 볼 수 없을
첫사랑의 발자국.
운명적이라 생각했지만
실상 그리 운명적이지 못한 만남이었고
운명이란 말을 붙이기는 머쓱할 정도로
평범한 멀어짐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옛사랑들처럼
두 사람의 순수했던 갈망,
서로를 향한 마음,
풋풋한 입맞춤까지 모두
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했던 날들이
두 사람의 삶 속에 잔잔하게 남아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서로를 추억하게 하고
서로를 기억하게 하고
서로를 되새기게 하는건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의 전부를 기꺼이 내어놓고
그 빈 자리를 상대방의 마음으로
채워놓았기에
마치 수술자국처럼
마음에
사랑의 자국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작년 가을인가요.
한 번도 제대로 사랑을 해 본 적 없다는
가까운 여동생이 제게 이런 말을 했더랬죠.
“첫사랑은 보통 잊혀지지 않는다면서요.
옛사랑을 마음 속에 담은 채로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거, 이해할 수 없어요.”
“그건, 옛사람을 여태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했던 느낌과 감정들을 기억하는거야.
인생에 가장 밝았던 날들, 인생에 가장 슬펐던 날들 속에
기뻐했고 슬퍼했던 자신을 소중히 간직하는거라구.”
내 항변에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랑을 하게 되고, 이별을 하게 되면
그녀 역시 알 수 있겠죠.
영희는 결혼을 하게 될 거고
철수도 곧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새로운 사랑 속에
각자의 삶을 잘 꾸려나가겠죠.
하지만
열 네 살 어린 나이에 서로를 향해 달려갔던 자신을,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던 마음을,
멀어짐을 의식하며 뱉어대던 깊은 한숨을
간간이
떠올리게 되겠죠.
그럴 때면
초속 5cm로 떨어지는 벚꽃처럼
어깨 위에 쌓이는
그 때의 기억 속에 잠시 자신을 방치했다가
곧 가벼운 미소와 함께 툭툭 털어버리겠죠.
“왜? 갑자기 피식 웃고. 무슨 일이야?”
“아.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자, 어서 가자”
그렇게 말이죠.
<별점: ★★★★★★>
스스로에게 문자 보내기. 내게도 비슷한 버릇이 있어 저 마음,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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