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9.03.09 21:59

[2008] 초속 5cm

조회 수 4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extra_vars1 |||||||||||||||||||||
extra_vars2 |||||||||||||||||||||||||||||||||||||||||||||||||||||||||||||||||||||||||||||||||

초등학교 단짝인 철수와 영희는

나이에 맞지 않게 조용하고 조숙한 애들로

소란스러운 어린 녀석들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사이였답니다.

적어도 졸업과 동시에 영희가 멀리 거제도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 후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안부를 묻지만

아시다시피 거제도는 너무 멀기에

두 사이의 애절함과 애틋함은 커져만 갑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철수는 약속을 하고 영희를 만나러 가죠.

중학교 1학년으로서는 제법 용기를 낸 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차는 폭설로 인해

몇 시간이나 연착됩니다. 가다서다를 반복하죠.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철수는 발만 동동 구르다

결국 서러운 눈물까지 흘러댑니다.

그 마음, 아시죠?

 

그런데

한 밤 중에,

약속시간이 한참은 지난 역에는

진작에 돌아갔을 것이라 생각했던 영희가

부동자세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가움에, 그리움에, 복받쳐 올라오는 슬픔에

둘은 한 동안 아무 말도 못하죠.

 

아름다운 설경 속을 같이 걸으며

철수와 영희는 손을 잡고

조금 때이른 듯한 키스를 하고,

밤새도록 얘기를 하고

각자의 각오를 다집니다.

이 사랑, 이 사람. 지키겠노라고.

 

그 날엔,

어린 날의 치기로 보기엔

너무도 순수하고 귀한 두 마음이

두텁게 쌓인 눈밭 위에 하얗게 빛났답니다.

 

 

세월이 흐르네요.

겨울은 계속 반복되어

두 사람을 고등학생으로, 대학생으로,

어른으로 실어갑니다.

 

그리고,

너무 멀리 있던 탓일까요.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하지만 뚜렷하게 식어 갑니다.

 

자주 왕래하던 편지는 뜸해지다

아예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고

서로를 담았던 가슴엔

다른 사랑이 깃들고 또 떠나갑니다.

 

그리고 또 다시

겨울입니다.

영희는 결혼을 약속한 어느 번듯한 남자와

살갑게 팔짱을 끼며

지난 날처럼의 예쁜 눈꽃을 맞이하고

철수는 사귀던 여성과 헤어진 쓸쓸함과

회사를 관둔 답답함을

하이얀 입김에 담아 쓰게 뱉어 놓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종종 그래왔던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떠올립니다.

 

한 때는 무엇보다 큰 의미로 자리잡았던 사람

지나가다 한 번쯤 스친 것도 같고

우연히 한 두 번은 마주칠 것도 같지만

다시 보지 못한,

다시 볼 수 없을

첫사랑의 발자국.

 

운명적이라 생각했지만

실상 그리 운명적이지 못한 만남이었고

운명이란 말을 붙이기는 머쓱할 정도로

평범한 멀어짐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옛사랑들처럼

두 사람의 순수했던 갈망,

서로를 향한 마음,

풋풋한 입맞춤까지 모두

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했던 날들이

두 사람의 삶 속에 잔잔하게 남아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서로를 추억하게 하고

서로를 기억하게 하고

서로를 되새기게 하는건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의 전부를 기꺼이 내어놓고

그 빈 자리를 상대방의 마음으로

채워놓았기에

마치 수술자국처럼

마음에

사랑의 자국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작년 가을인가요.

한 번도 제대로 사랑을 해 본 적 없다는

가까운 여동생이 제게 이런 말을 했더랬죠.

 

첫사랑은 보통 잊혀지지 않는다면서요.

옛사랑을 마음 속에 담은 채로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거, 이해할 수 없어요.”

 

그건, 옛사람을 여태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했던 느낌과 감정들을 기억하는거야.

인생에 가장 밝았던 날들, 인생에 가장 슬펐던 날들 속에

기뻐했고 슬퍼했던 자신을 소중히 간직하는거라구.”

 

내 항변에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랑을 하게 되고, 이별을 하게 되면

그녀 역시 알 수 있겠죠.

 

 

영희는 결혼을 하게 될 거고

철수도 곧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새로운 사랑 속에

각자의 삶을 잘 꾸려나가겠죠.

 

하지만

열 네 살 어린 나이에 서로를 향해 달려갔던 자신을,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던 마음을,

멀어짐을 의식하며 뱉어대던 깊은 한숨을

간간이

떠올리게 되겠죠.

 

그럴 때면

초속 5cm로 떨어지는 벚꽃처럼

어깨 위에 쌓이는

그 때의 기억 속에 잠시 자신을 방치했다가

곧 가벼운 미소와 함께 툭툭 털어버리겠죠.

 

 ? 갑자기 피식 웃고. 무슨 일이야?”

 

.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자, 어서 가자

 

그렇게 말이죠.

 

 <별점: ★★★★★★>

 

 스스로에게 문자 보내기. 내게도 비슷한 버릇이 있어 저 마음, 공감이 간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2 [2008] 섹스 앤 더 시티 문★성 2009.03.09 56
351 [2008] M (엠) 문★성 2009.03.09 51
350 [2008] 색계 문★성 2009.03.09 51
» [2008] 초속 5cm 문★성 2009.03.09 41
348 [2007]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문★성 2009.03.09 50
347 [2007] 나니아 연대기 문★성 2009.03.09 72
346 [2007] 빨간모자의 진실 문★성 2009.03.09 47
345 [2007] 화려한 휴가 문★성 2009.03.09 40
344 [2007] 캐러비안의 해적3 문★성 2009.03.09 48
343 [2007] 플라이 대디 문★성 2009.03.09 39
342 [2007]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문★성 2009.03.09 44
341 [2007] 데스노트1 문★성 2009.03.09 42
340 [2006]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문★성 2009.03.09 39
339 [2006] 라디오스타 문★성 2009.03.09 29
338 [2006] 괴물 문★성 2009.03.09 32
337 [2006] 엑스맨3 문★성 2009.03.09 53
336 [2006] 미션 임파서블3 문★성 2009.03.09 30
335 [2006] 음란서생 문★성 2009.03.09 31
334 [2006] 너는 내 운명 문★성 2009.03.09 41
333 [2005] 버퍼 문★성 2009.03.09 4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9 Nex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