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장애를 가진 형을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던 여자를 떠나야했던 남자가 있다.

 부모의 빚더미에 눌러 그걸 갚는데 급급하느라

 사랑을 꿈꿀 여유조차 가지지 못한 여자가 있다.

 

 사는게 어려워 앉기만해도 한숨만 나오고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사랑이란게 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연애의 고열에 시달려 가뜩이나 상처투성이인 가슴을 헤집어놓지 않으면 좋으련만

 잔혹한 사랑은 그들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사랑하게 된, 혹은 그들을 사랑하게 된 상대방이

 현실의 무거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찬 진흙탕에서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른 손을 내밀어야할 것이다.

 어둔 인생에 광명을 선사해주고

 막막한 인생 남은 길의 해답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어깨를 나란히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부름에 몇 번을 망설이다 겨우겨우 문을 열고 나가보니

 나와 똑같은 무게의 짐을, 혹은 더한 짐을 한아름 지고 있는 사람이

 지친 표정을 하고 서 있다면 어떨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은 필연적으로 현실과 싸우게 된다.

 하다못해 초등학생의 첫사랑마저도 부모님의 간섭과

 학급친구들의 놀림으로 인해 좌절대기 마련이니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해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이 사랑을 이기기도 한다. 가끔은.

 그건 사랑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현실이 더 절실히 사무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결국 죽고 말았다지.

 

 사랑이 현실을 이기기도 한다. 때로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승리는 서전(序戰)에 불과할 뿐

 결실을 맺은 사랑앞에서도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두텁게 쌓여있기만 하다.  

 결혼에 성공했다고 하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결혼식'에 성공한 것, 인생은 꽤나 길다.

 

 

 영화 속에서

 지칠대로 지친 한석규는

 역시 너무 울어 시들해져버린듯한 김지수에게 말한다

 

 "나나 당신이나... 정말 쉽지 않네요"

 

 말 줄임표의 생략된 부분에는

 '이 놈의 현실이'가 들어가면 적절할 것이다.

 

 "나나 당신이나 이놈의 현실이 정말 쉽지 않네요"

 

 영화의 결말은 사랑의 가까스런 판정승을 암시하지만

 글쎄. 그렇다면 한석규는 더 지치고 김지수는 더 울게되지도 모르겠다.

 그 못지않게 더 웃고 더 기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너무도 많지만

 그 중 하나가 현실인 것만은 분명한 노릇,

 모든 현실을 이길 위대한 사랑이 강림하면 좋겠지만

 그 못지 않게 사랑을 제약하지 않을, 이길만한 현실이

 허락되어졌으면 한다.

 

 <별점: ★★☆☆☆☆>

뛰어넘어 서로에게 안기지 못함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