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황산벌

 '사투리'와 '거시기'로 압축되어 말해지는 영화 '황산벌'.

 어찌보면 옵션에 불과한 이런 요소들이 너무 강조되어 홍보된 것이 못내 아쉬운 영화다.

 사투리말고도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는 많기 때문이다.

 물론 부족한 점도 적지 않지만 색다른 생각과 재치 그리고 현실을 바라보는 진지한 눈까지

 갖추어져있는 제법 괜찮은 작품이라는게 내 소견이다.

 게다가 맨날 궁중암투나 벌이는 TV의 조선시대 사극이 아니라

 스케일있는 삼국시대 이야기라니. 이건 내용이야 어쨌든 나로서는 대환영하고 싶은 소재다.

 누차 언급한 이야기지만 삼국시대, 아직 영화로 쓸만한 이야기들 도처에 산개해있다.

 조금 과장해서 주장한다면 삼국사기 덮었다가 그냥 아무 페이지만 펴도

 영화 만들 거리 찾을 수 있을거다. 꼭 영화관 찾아가서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보라고

 압력도 넣을테니 제발 좀 많이 만들어주시라. (특히 살수대첩. 죽기전에 보여달라)

 몇몇 코믹스런 장면이 있긴 하지만 영화 황산벌의 기본적인 코드는

 '진지함'이다. 초장부터 사면초가 위기에서 활로를 찾는 백제와 강대국인

 당나라의 행패에 찍소리 못하는 신라의 이야기는 이미 이 영화가

 본질적으로 코메디에만 머물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당연하다.  마누라와 자식을 베어버리고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병사를 이끌고

 신라와 싸우러 나가는 계백과 자기 아들보고 죽으라고 내보내는 신라 장수들이

 주요등장인물인 이상 이 영화는 역사를 모독하지 않을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생적 무거움'은 마지막 전쟁 장면에서 극에 이르는데 느린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진흙탕 전투는 암울함을 극도로 높여준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의 분위기 구성에 대단히 만족한다. 만약에 계백이 죽을 때도

 '아따 거시기하게 거시기하네' 그러면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든지 해서

 관객을 웃기려고 했다면 아마 난 분노를 참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수위를 잘 조절한 이 영화의 전반적인 코메디는 괜찮은 편이다.

 특히 랩을 연상시키는 보성벌교 욕지거리 스페셜 코너 정도면 아주 좋은 편.

 다만 월드컵을 패러디한 응원전은 에러였다. 대한민국 박수는 축구장안에서만 듣게

 해달라. 이건 아니다.  

 그리고 하나만 추가. 캐스팅 아주 좋았다. 계백도 계백이지만 정진영. 목소리나

 표정연기 모두 매우 매력적이었다.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