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나쁜 남자

꼭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사랑하라는 법은 없다. 사람들은 가끔 분수에 맞지 않는 사랑에 빠져 버린다.

여기 밑바닥 인생을 사는 한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가 사랑에 빠진 대상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머물고 있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자, 당신이 이 남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내 짝이 아니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포기해버리거나 어떻게서든 그녀가 서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다. 그녀가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날 보고 끌어당겨주는 행운을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나쁜 남자의 주인공 한기(조재현)는 달랐다. 그는 위로 손을 뻗어 그녀의 목덜미를 잡은 다음 자기가 머무르는 바닥까지 잡아당겨버린다. 그녀의 인생은 처참하게 망가지고 부서져간다. 그는 그렇게 사랑을 한다. 그는 ‘나쁜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나쁜남자에게 사랑을 느껴버린다.

기분을 무척이나 불쾌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TV드라마 같은 것을 통해 바닥에서 뛰어올라 입신양명하여 사랑까지 쟁취하는 잘생기고 성실한 주인공을 늘 보아왔기 때문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부숴버린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는 거북하기 이를 때 없다. 그러나 그것이 감독의 의도임은 부정할 수 없다. 어디 김기덕 감독이 보통 감독이었던가. 분노와 불쾌감을 느꼈다면 아마 영화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감독의 의도를 극한까지 이끌어 내 준 것은 역시 조재현의 연기다. 언어장애로 인해 영화 내내 말을 하지 않고 오직 눈빛으로만 의사표현을 하는 한기를 그는 정말 ‘나쁘게’ 연기해내었다. 한국의 어떤 남자배우도 이 역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리라.

많은 여성들로부터 최악의 영화라 비평받은 바 있다. 그녀들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수작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나쁜’ 영화이니까.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