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사토라레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이 하나도 걸러지지 않은채 마치 마이크로 떠드는 것처럼 주위 사람들에

공중파방송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비범한 지능을 갖고 있어서

촉망받는 인재긴 하지만 자신이 끼치는 악영향을 알지 못한채 끊임없이 갖은 소음으로 주변을

긴장시키는 이들. 우리는 이들을 '사토라레'라 부른다.

만약 이들과 자리를 함께 한다면 주의해야할 것이다. 그가 당신을 향해 품는 생각들이 속속들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뚜렷히 전달되는데에다가 사토라레 본인은 그걸 전혀 인식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버럭 화를 내면서 생각 조심하라고 일침을 놓을 수도 없다.

그들은 사토라레 보호법에 의해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당신 주위에는

수많은 요원들이 그와 당신을 감시하기 위해 쫙 깔려있을 것이다. 그러니 신변의 안전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마치 아무일 없는 것처럼 따뜻하게 이 사회의 문제아를 안아주기로 하자.

또 혹시 모르지 않는가? 당신 역시 사토라레일지도. 말했다시피 사토라레 본인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자. 우선 상상력이 도드라지는 영화다. 조금 터무니 없긴 하지만 발상은 재밌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엄지처럼 남의 마음을 읽는 인물들을 접해본 적이 있지만 자기 마음을

읽혀지는 인물들은 이제껏 없지 않았는가. 물론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사토라레같은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마음 밀바닥까지 숟가락으로 닥닥 긁어서 주위 사람들의 귀에 억지로 쑤셔대는 이들 말이다.

뭐 이 영화의 사토라레와는 조금 다른 종(種)이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사토라레들은 국가에 이익될 것이

전혀 없으니 가히 신경쓰지는 말기로 하자.

영화는 제법 볼만하다. 소재에 비해 진부한 스토리 구조나 춤추는 대수사선의 모쓰히로 감독 답게

후반부들어 교훈적, 훈계적 어조로 밀어부치는 점은 역시 호감이 가지는 않지만, 상상력을 뒷받침해주는

이런 저런 설정들은 흥미롭게 다가오며 할머니와 주인공과의 애틋한 이야기는 가슴을 찡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일본에서는 '사토미 준이치'라는 이 영화의 주인공을 그대로 등장시키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고 한다.

'사토라레'를 만들어낸 그들의 상상력도 놀랍지만 한 소재를 자유롭게 활용해내는 그들의 응용력과

유연성은 더욱 더 놀랍다. 왜 우리는 박하사탕을, 공동경비구역JSA를, 살인의추억을 드라마로 만들지

못하며 허준을, 네멋대로 해라를, 모래시계를 영화로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터질듯한 수압으로 폭발한 것 같은 수도꼭지를 열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