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8 마일

랩퍼 ‘에미넴’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에미넴이 주인공 래빗을 직접 연기하였다.

한물간 공업도시 디토로이트에서 8마일은 부유한 계층과 가난한 계층이 거주하는 지역을 구분하는 라인의 길이를 의미한다. 그리고 ‘부유하지 못한 편’에 살고 있는 래빗은 자신의 가난하고 엉망인 삶 속에서 자신만의 랩을 읊조린다.

바닥인생, 그 밑에서 끊임없이 손짓을 해대며 랩을 해대는 젊은 청년들. 그들은 삶의 어려움을 랩을 흥얼거리며 잊어버리기도 하며 ‘배틀’을 통해 서로의 우열을 가리기도 한다. 랩이라는 문화가 기껏해야 아이돌 가수들이 노래 간주 부분에 잠깐씩 집어넣거나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가수들이 영어에다가 한국말을 섞어서 국적불문으로 짬뽕시킨 것이 대부분인 우리 나라에서는 조금은 낯설 수밖에.

무엇보다도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그들의 랩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번역자의 의도가 듬뿍 가미된 자막을 통해서만 해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이 내뿜어대는 랩의 50%나 제대로 이해했을지 의문이다. 라임에 신경을 쓰다보면 의미를 모르겠고 의미에 집중하다보면 라임을 놓쳐버린다. 귀로 랩을 듣는 동시에 오른쪽 눈으로는 자막을 보며 열심히 생각해야 하며 왼쪽 눈으로는 랩퍼의 퍼포먼스를 뜯어보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기란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화를 보러왔지 진기명기를 연습하러 온 게 아니거든.

아무튼 이래서인지 ‘놓친게 많은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핵심이자 엑기스인 ‘랩’이 100%로 다가오지 못하다니.

랩을 제외하고도 래빗의 집안이야기와 사랑이야기,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긴 하나 그의 ‘랩’이 자신의 이 모든 상황을 가슴 속에 내장된 필터로 몇 번 걸려낸 후 취향대로 포장하여 나온 산출물이므로 그의 랩만으로도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축구선수는 발로 말하고 야구선수는 배트로 말하듯이 랩퍼는 랩으로 말한다. 그의 랩에 무게중심을 둘 뿐 다른 상황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것은 영화 속 래빗의 역할이니까.

춤으로 배틀하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한 적이 많으나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꼭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다. 무척이나 재밌을 듯하다.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