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휴머니스트

‘엽기 영화’를 컨셉으로 하여 제작된만큼 부던히도 애를 쓴 영화다. 막바지엔 좀 시들해졌지만 초중반부를 장악하는 ‘엽기’와 그에 못지 않은 ‘유머’는 다른 영화와는 분명히 다른, 신선한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퇴역장성의 아들로 태어나 썩은 정신으로 허황방탕한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 마태오(안재모)는 음주운전 후 실수로 경찰관을 죽여버린다. 주인공과 친구들을 현장에서 검거한 동료경찰관은 체포는커녕 이를 미끼로 돈을 요구하고(친구였던 죽은 경찰관의 가족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로부터의 돈을 받지 못한 주인공은 친구인 유글레나(강성진), 아메바(박상면)와 함께 아버지(박영규)를 유괴해 돈을 계모로부터 뜯어내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결말은 무척 복잡하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아닌 엉뚱한 사람을 납치해오다 그만 죽여버린 유글레나는 죄를 면하기 위해 주인공을 죽이려 하나 친구를 죽이기 싫어진 아메바에 의해 살해당하며 아메바 역시 마태오에게 죽음을 당한다. 휴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친구들이 잡아온 수녀를 놓아주고자 했던 마태오는 수녀가 무턱대고 휘두른 미술도구에 그만 실명하고 검거되어 버린다. 죄책감에 못 이긴 수녀는 수녀복을 벗고 타락해버리며 체포된 주인공의 고백을 처음부터 기록하던 검사는 우습게도 주인공에게 돈을 요구한 경찰관을 협박하지만 곧 죽게된다.

정신이 없는건 스토리만이 아니다. 중요한 조연 중 하나인 ‘거지’와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재미있다가 섬뜻하게 무서워지고 어린 시절 회상장면에서 피가 난무하는 가운데 들려오는 동요는 그야말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게다가 박영규, 박상면 등의 훌륭한 연기까지 더해져 아무 대책없는 영화가 감독의 요구대로 더욱 더 대책없이 제작될 수 있었다. 후반들의 이러한 무대책의 강도가 약해지고 지루해진 것은 상당히 아쉬운 점이다.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