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면 전쟁영화도 이렇게 달라지게 된다.

영웅이 등장하여 맹활약하며 세계 정의를 바로잡는다는 만화 같은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총에 의해 머리가 부스러지고 손발이 떨어져나가는 처참한 모습들과,

공포에 덜덜 떨며 두려워하는 결코 영웅적이지 않은 군인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강조된다.

이 영화를 이병 휴가 때 봤었는데 전쟁의 공포라는 것에 질려버렸던 기억이 난다.

총을 들고 싸워본 적도 목숨의 위협을 느껴본 적도 없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과연 이럴 것이라는 느낌은 들었다.

세계 대전이나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통해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허무하게 죽어갔는가.

영화 내용은 4형제 중 3형제가 전장에서 산화한 어머니를 위해

막내아들인 라이언 일병(사실은 이병이지만)을 구해오는 특수임무를 받은 밀러 대위와 그 소대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결국 라이언을 찾아내지만 마지막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모두 죽어간다.

탱크를 앞세운 적의 화력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초반의 해변상륙작전에서의 처참한 ‘학살’ 못지 않은 끔찍함을 보여준다.

영화를 지겹지 않게 이끌어오던 개성있는 인물들이지만, 전쟁의 냉엄함 앞에서는 여지없이 실패하고만다.

결국 스티븐 스필버그가 말하는 것은 ‘이것이 전쟁이다’가 아니었을까.

어린애들까지도 장난감 총을 들고 설치며 각종 영화니 게임에서 전쟁을 마치 영웅의 활약무대인양 미화하고,

‘까짓껏 전쟁한번 하면 되지 뭐’와 같은 의식이 만연한 이 때 그는 전쟁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전쟁영화’인 거다. 영웅도 없으며 미국 우월주의도 없다.

세계정의와 평화와 같은 허무맹랑한 개념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의미가 있든지 없든지 주어진 의무에 충실했고 그러다가 죽어간 군인들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막내아들을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라’는 목표가 어이가 없는가?

그럼 ‘사회주의 국가 건설’, ‘자유주의 국가 수호’는 어디 타당한 목표였던가.

전쟁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정말 귀중한 영화다.

아직도 북한이랑 한 붙어서 이기면 금방 통일할건데 뭐 그리 골치 썩이냐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