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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터놓고 얘기합시다 - 드라마

문★성 2012.03.24 18:27 조회 수 : 129

난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스무살 이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드라마라곤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가 전부고, 절반 이상 봤다 싶은 드라마는
카이스트, 하얀거탑, 소울메이트 그리고 최근의 뿌리 깊은 나무 이렇게 네 편 밖에 없다.
시크릿 가든, 다모, 대장금, 내 이름은 김삼순 등 등 시대를 풍미한 유명 드라마들은
대부분 본 적이 없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프리즌브레이크나 로스트 같은 미드(미국드라마)가
한참 인기몰이를 할 때도 단 한 편 챙겨본 적 없다.


(소울메이트 – OST가 너무 좋은 드라마였다)

드라마가 시간 낭비고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라는 주장을 내포한,
나름 암팡지고 다부지게 살려는 다짐 때문임은 부정할 수 없으나
다른 하나의 이유가 있으니, 내 스스로가 드라마에 대한 면역력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한 편 보기 시작하면 당장 해야하는 일들을 내팽겨치거나 밤을 새기까지 하며
정신없이 본 후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씩 멍해져있기도 하다가  
드라마를 의미를 확대해석, 과대 포장하여 혼자 울컥거리기도 하고
몇 번씩 다시보기를 하며 복습을 거치는 것은 물론인데다가
공부할 때 일할 때 아무 연고 없이 주요장면들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 되새김질을 하는 등
일종의 ‘심각한 감염상태’에 빠져들기 때문에 새로 드라마를 보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것이다.

드라마 소울메이트의 경우에는 다 보고 난 후 꿈에서 드라마를 재생해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며
어설픈 철학자가 되어 일기장에 며칠에 걸쳐 ‘사랑’을 주제로
잔망스런 해석을 늘어놓기까지 하다가 나중엔 드라마 생각이 뇌 전체에 전이된 나머지
전화 통화하다가 상대방의 이름을 드라마 주인공 이름으로 잘못 불러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곤 ‘고마워요 소울메이트’라는 책을 사보기도 했지)

노다메 같은 경우엔 그때껏 크게 관심없던 클래식음악을 켜켜이 쌓아두고 듣는
교양적 행위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긍정적인 측면도 있긴 했지만
잘생기고 스타일 멋진 남자 주인공을 따라 하느라 브이넥 니트만 한 여덟 벌을 사 모으는
사재기를 하기도 했으니 이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노다메의 치아키 선배 – 이것 좀 따라하려고 했었다)

많이 보지 않아서 그렇다. 드라마에 대한 경험이 많이 없다보니 면역력이 없어
연기자들 하나하나가 너무 잘생겨 보이고 예뻐보여 화면에 빠져들게 되고
잘 고른 배경음악이 전해주는 감성에 휘감겨 허우적거리게 되는데다가
상투적이고 뻔한 스토리라나 연출이라 하더라도 익숙하지 않다보니
마치 세상을 뒤집어놓을 신기원, 금자탑이라도 보는 양 경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여의도나 강남에서 매일 일하는 사람이라면 거기 고층 건물들에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겠지만 시골에서 처음 상경한 사람은 입을 떡 벌린 채
마천루로 윤곽을 장식한 화려한 도심에 감동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이렇듯 허약하고도 연약한 내가 이번에 ‘연애시대’라는 드라마를 봤다.
2006년에 방영된 작품이니까 무려 6년이나 된 드라마다.  
작년 말 잠깐 한국에 있을 때‘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라 치켜세우는
몇몇 평들을 인터넷에서 본 후 외국에서 너무 심심할 때 보면 괜찮겠다싶어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한국 떠난지 거의 한 달 반이 넘어서야  ‘너무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업무에 지쳐 ‘좀 쉬고 싶은’ 순간이 왔고 이 드라마를 여는 순간
‘좀 쉬고 싶은’ 순간은 ‘드라마에 빠져 허우적 대는’ 시간으로 바뀌고야 말았다.
앞에 열거한 드라마들을 봤을 때처럼 처음 한 편을 보면서 바로 ‘감염’이 되었고
밤을 새워가며 전편을 다 본 후 출연진들에 대한 정보를 캐모으고
인터넷에 뜬 리뷰들을 찾아 읽고 OST를 구해 듣고 원작소설을 알아본 후
주요 장면을 몇 번씩 되감으면서 보면서 코 맹맹이가 되어 훌쩍훌쩍거리다가
문득 글이 쓰고 싶어 만사 제쳐놓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다.


(연애시대의 손예진. 너무 예쁘다)

드라마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할 얘기는 없다. 당장 검색어에 ‘연애시대’만
쳐봐도 멋드러지게 잘 쓴 리뷰가 수백 편은 뜨는 마당이고
드라마가 내세우는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은 제법 해봤지만,
그래서 사랑이란 게 결국 자기 스스로와 그 사랑의 대상이 되는 사람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까지도 상처입히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딜레마에 대해
길게 한 번 적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그 역시 수많은 블로거들과
평론가들이 6년 전에 했던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몇 년간 감정이 오래된 시멘트 벽처럼 거칠게 말라붙은 지금의 내가
사랑에 대해 이러쿵저러쿳 얘기를 해봤자 유통기한 한참 지난 상한 과일의 무른 속처럼
물러터진 얘기가 될 게 뻔하다.

그냥 난 이게 신기한 거다. 그깟 드라마가 뭐라고
나름 똑부러진다고 자부하는 내 생활이 활을 잰 시위치럼 크게 휘어지고,
무심했던 감정이 폭풍우가 오기 전에 미리 다가온 파도처럼 높게 일렁이며
먹고 사는 문제, 프로젝트 진행 문제로 가득 차 있던 내 머리 속에
사랑이란 뭘까 하는 오천 년은 족히 묵은 오래된 주제가 갑작스레 대선주자로
발돋움하여 결국 이 할일 많은 주말 오후에 나로 하여금 모든 다른 일을
뒤로 미뤄두고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그것도 오랜 겨울잠을 자고 있는
난설란에 장문의 글을 쓰게끔 만드느냐는 말이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알고 싶지도, 또 알아야 될 필요도 없다. 그냥 이 상황이 재밌고 특별하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물론 난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보지 않으려 애쓸 것이다.
늘 항상 이런 감염상태에 취해 있어서야 내 인생에 어떤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을테니까.
그래도 가끔 검증된 잘 만들어진 드라마 한 편씩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갈다.
적어도 문성닷컴에 글 한 편씩은 더 올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찾아보니 2007년에 하얀거탑을 본 후에도 난설 한 편을 썼었다)
더불어 최적화, 합리화, 개선, 문제해결, 효율성 같은 무광 회색빛 단어들만 주어섬기는
내 입과 내 머리와 내 심장에 사랑이니 행복이니 이별이니 하는 천연색 자원들을
주유하여 조금 다른 방향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네가 행복해져야 이 세상도 행복해진단다
하나님한테는 내가 같이 용서를 빌어주마
행복해져라. 은호야

(연애시대의  마지막 회. 주인공의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주인공에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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