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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삐딱하게 들리지 몰라도, 나이가 들면 인생이 뻔해진다.
인생의 커다란 선물 중의 하나인 ‘가능성’이란 요소를 점차 잃게 되기 때문이다.

외국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각각의 나이 대에 해야 할 일이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고 이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쉽사리 인생의 낙오자, 실패자로 규정 받게 된다.
예컨대 남자의 경우 스물 한두 살에는 대학을 가고, 이십 대 중반 전에는
군대를 다녀와야 하며, 이십 대 후반이나 삼십 대 초반에는 결혼을 하여
빠른 시일 내에 자식을 낳아야 한다. 그런 후 사십 대가 넘어가면
어엿한 회사에서 나름 대접받는 직위에 올라가 있어야 소위 ‘정상적인 인생’으로
치부 받는다. 그리고 이 시기를 지키지 않으면 ‘늦었다’, '뒤쳐진다'라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지금의 내게도 많은 사람들이 ‘결혼 언제 하냐. 벌써 늦었다’라는 소리를 재야의 종소리처럼
반복해서 주입하고 있다. ‘사회적 평균에 비해 늦었다’라는 소리다.
즉 한국 사회에서 내 나이는 ‘결혼을 하고도 남았을 나이’인데 현재 그 기준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고, 우려이고 또한 엄포이기도 하다.

좋아, 용케 결혼을 했다고 치자. 그러나 그런 뒤 만약 서른 중반까지 자식이 없다면
사람들은 또 다시 내게 일갈할 것이다. ‘언제 애 낳냐. 벌써 늦었다’.
나아가 내가 그때까지 대리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으면 ‘너 언제 과장되고 부장될래.
많이 늦었다’라는  잔소리를 사방팔방 십육 방에서 들을 것이 확실시된다.
이게 한국 사회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압박이 너무도 강하고 이탈자에게 가해지는 심리적 수탈이
무척이나 잔혹한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케도 사회가 정해놓은 수순을
잘도 따라간다. 아니, 따라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낳게 되는 가장 큰 부작용이 바로 앞서 말한 ‘가능성의 상실’ 이다.
그 기준에 따라 각각의 나이대에 맞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인생이 점점 더 뻔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자꾸만 '해야하는 일들'은 많아지게 되고 이것들을 정신없이 쫓아가다 보면
정작 '하고싶은 일들'이 설 자리는 없어지게 되고, 결국 정해진 수순을 그대로 따라가는
지리하고 특별할 게 없는 삶이 되어 버리고 만다.

다시 내 경우를 두고 얘기해보자.
지금의 내가 케이블 티비에서 방송해주는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아, 나 고고학 하고 싶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느낌이 아주 심각하게 든다고 할지라도
지금껏 사회적 수순에 충실하면서 구축해온 경로와 결과물들을 모조리 부정한 채
다시 수능을 준비하여 2012학번으로 모 대학 고고학과에 들어갈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다시 대학 새내기로 시작한다면 마흔이 되고 오십이 되어서도
남보다 한참은 뒤쳐지는 삶을 살게 될텐데 가족의 기대를 배신하고,
지금까지 닦아왔던 모든 것을 부정함에 따라 가해질 그 모든 사회적 압박을 감당할 자신이
내게는 없다. (아마 결혼도 못할 것이다. 여자 집안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다시 말해 내가 ‘고고학 전공 대학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거나,
아주 미약할 정도로 줄어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십 년이 더 지난 뒤에 고고학자로의 꿈이 생겼다면? 아서라, 어림도 없다.
차마 가족에게 말을 꺼내보지도 못할 것이다. 혼날 게 뻔하니까.
하다못해 고고학을 개인적으로 공부하기 조차도 힘들 것이다.
그 돈으로 애들 학원 보내고 참고서 사야 한다는 다른 종류에 압박에 시달릴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십 년 전이라면 어땠을까? 당시 난 군대에 있었고
대학교는 고작 1년 만을 마친 상태였다. 남은 군생활 동안 수능을 준비하여
제대한 후 다시 입학하면 되는 거니까 여전히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처럼
불가능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됐든 남들이 말하는 사회적 기준에 고작 1년 뒤쳐지는 것 뿐이니
압박도 그리 극심하지는 않았으리라 (그 시절에는 그 1년이 꽤나 큰 의미였지만)
당시 내가 있던 부대에서는 그렇게 공부해서 다른 대학, 다른 과로 가고자
준비하는 사람들이 정말 넘치도록 많이 있었다. 가능성이 있으니까 도전하는 사람도
많았던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십 년 전이었다면? 아아. 말할 것도 없다.
‘난 고고학자가 될거야’라고 길거리에서 외치고 다녀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
없었을 것이다. 내 스스로도 불가능한 일,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 때는 정말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내게는 없는, 그 가능성 말이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연애 얘기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스무 살 때의 난 아주 넓은 연령대의 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만났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었다는 거다)
아래로는 고등학생으로부터 위로는 이십 대 중반까지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여자애가 나 좋다고 편지쓰고 스티커 사진 찍어 보내고 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내가 마흔 살의 노총각이 된다면 상대방의 나이는 아무리 낮게 봐도
삼십 대 초 중반 이하로는 내려가기가 어렵다.
그리고 대상이 되는 연령의 여성 중 상당 수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이미 시집을 가버렸을 테니 만날 수 있는 여성의 절대적인 수만 따지자면
스무 살 때에 비해 비교도 안 될 만큼 줄어있게 된다.
보라. 나이가 들면 이런 가능성까지도 줄어들게 된다.

이런 식으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사라져가고 인생의 폭은 좁아진다.
점점 더 예측 가능한 인생, 생각했던 바와 달라지지 않는 뻔한 인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할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되니
앞일을 모를 때 발생하는, 자욱이 낀 안개의 형태를 띤 ‘기대감’ 역시 밀도를 상실하고
이로 인한 삶에 대한 묘한 흥분조차 말소되어 간다. 슬프고도 슬픈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기대하길 바라고, 지속적으로 삶이 자아내는
짜릿한 흥분감을 맛보길 원한다. 계속해서 이 가능성을 갈구하는 것이다.

남과 비교되기를 거부하고 사회의 속박에 억눌리지 않는 사람들은
이 가능성을 추구하고자 다른 사람들은 놀래 자빠질만한 결정들을 내리곤 한다.
안정된 대학 교수 직업을 버리고 꿈꿔온 레스토랑을 열어버린 요리사,
고향에서 농사를 시작한 어느 검사, 앞길이 창창한 회사를 관둬버리고
가진 것을 전부 팔아 세계일주를 떠난 부부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용단을 내리지는 못한다.

어떤 이들은 어떻게든 꺼져가는 가능성의 불씨를 살려보고자 작은 몸부림을 쳐댄다.
성형수술과 비싼 화장품으로 얼굴을 꾸미고, 명품 가방을 무리하게 사놓으며,
스타벅스에서 인증샷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며 자신이 아직 이렇게 고귀하다,
아름답다, 가능성이 넘치는 존재다 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칠천 원짜리 클린앤클리어를 바르고,
짝퉁 키플링 가방을 들고 다니며 학교 앞 떡볶이를 먹는 인증샷을 올리는
열 여덟 살보다 가능성이 넘치는 존재라 생각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말이다.

다른 이들은 왜곡된 방식으로 쭈글해진 인생에 가능성을 주입한다.
불륜을 통해 이미 지나버린 연애의 짜릿함을 탐닉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진해서 백수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나이에 맞지 않는 허무와 게으름,
나태 속에 파묻힌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다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을 잃어버린 대부분의 평범한 한국 사람들은 어디에서 상실된
'삶의 흥분'을 맛보게 될까.

바로 ‘자식’에서다.
자기 인생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보기 어렵지만 자식에게서는 끝없이 펼쳐진,
이해할 수도 없을만큼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보게 되는 그들은
기대할 게 없는 스스로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예쁜 옷을 입어도 (가능성을 잃어) 예전보다 예뻐 보이지 않는 자신보단
조금만 잘 차려 입어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수 있는 딸자식을 위해
옷 한 벌을 더 사게 되고, 종로에 위치한 어학원에 일년 째 다녀도 (가능성을 잃어)
여전히 문장 하나 제대로 뱉어내지 못하는 자신보다 일주일만 배워도
금방 외국인 흉내를 내는 아들의 사교육에 돈을 쏟아 붇게 된다.
(가능성을 잃어) 의사가 될 수 없고, 판사가 될 수 없는 자신을 아니까
가능성이 넘쳐 흐르는 자식이 열심히 공부를 해서 그 꿈을 채워주기를 바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는 자식의 가능성을 자신의 가능성이라 잘못 인식한 탓에 발생하는 오류다.
실제로 자식이 그 인생의 가능성을 높여갈수록 부모 본인의 가능성은
자꾸만 줄어드니 말이다. 아이 뒷바라지 하느라 자기 인생을 희생하는 부모가
어디 한 둘이던가. 게다가 자식이 가능성을 맘껏 키워 성공한다고 해서
그게 부모의 가능성으로 이자까지 붙어 돌아오지는 않는 노릇이잖은가.

없어진 가능성의 부활을 자식에게서 기대하는 것 자체를 탓하고자 함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나마 이미 소멸된 가능성을 계속해서 더듬어 찾아가는
나이 든 이들의 슬픈 인생, 그 자체를 슬퍼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내 인생의 가능성은 파도에 깎여나가는
퇴적암처럼 끊임없이 부서져 내리고 있다.

어찌 보면 나이가 들어 우리가 잃게 되는 것들 중에서
오래 묵힌 볏단처럼 비루해진 외모,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말라버린 관계보다
더 슬픈 것은 바로 이 가능성의 상실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내 글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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