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08년 12월에 문성 집에 입양된 넷북입니다. 이름을 제대로 말씀 드리자면 HP Mini T1001TU인데요, 세상 대부분의 넷북이 그러하듯 그냥 ‘넷북’으로 불린답니다.
아아, 넷북이 뭔지 잘 모르시는 분도 계실 것 같네요. 넷북은 영어로 Net Book이라고 쓰구요, 말 그대로 Network 활동에 적합한 미니 컴퓨터다, 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크기가 작아서 여기저기 들고 다니기 좋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쉽게 꺼내 사용할 수 있거든요. 일반 노트북의 사이즈가 보통 14인치에서 18인치 정도 하잖아요? 저희 넷북은 커 봐야 12인치고 작은 애들은 7, 8인치까지 내려가기도 한답니다. 저는 딱 중간인 10인치구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작은 만큼 성능은 좀 떨어집니다. 어쩔 수 없죠. 부품도 다 작은 걸 써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전자제품은 작은 만큼 비싸다 보니 아무래도 커다란 컴퓨터보다는 좀 싼 부품을 쓸 수밖에 없고, 기능도 따라서 떨어지게 되는 거죠. 뭐, 하는 수 없는게 어치피 우리는 메인으로 쓰여지는 컴퓨터가 아닌, 넷북이니까요.
근데 말이죠. 저는 요즘 항상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답니다. 주인이 총애하던 데스크탑 형아가 맛이 가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거든요. 지난 달로 기억하는데요, 속도도 빠르고 용량도 엄청나 제가 늘 존경해오던 데스크탑 형아가 한참 잘 일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답니다. 다행히 곧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증상은 반복되었고, 점점 더 안 좋아졌구요. 처음에는 부팅된 지 한 삼십 분, 한 시간 뒤쯤에 꺼지곤 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부팅 되다가 꺼져버리더라고요. 지켜보던 제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요.
그래도 한 때 프로그래머를 꿈꿨다는 주인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데스크탑 형아의 배를 몇 번씩 뜯어내어 연구를 하다가 불연듯 'CPU를 냉각시켜주는 오일이 떨어져 과열이 된 것 같다'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더니 어디서 이상한 액 같은 것을 하나 구해와 덕지덕지 바르는 수술을 직접 진행하더라고요. 아, 이젠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말이죠. 이 사람, 바보 같이 CPU를 다시 메인보드에 끼우다가 핀을 부러뜨려 버렸지 뭐예요. CPU에 달린 핀은 수백 개가 넘지만 하나라도 부러지면 제대로 장착될 수조차 없거든요. 그런데 주인은 무식하게 힘으로 우겨넣다가 핀을 한 오십 개는 꺾어버렸답니다. 참으로 마뜩찮은 사람이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네요. 한 일주일쯤 뒤에는 아예 CPU를 새로 사왔거든요. 비싸지는 않지만 예전 것보다는 더 좋은 것 같긴 했어요. 주인은 지난 실패를 거울 삼아서인지 조심스레 CPU를 데스크탑 형아의 심장에 끼워넣었고, 다행히도 데스크탑 형아는 부활한 옵티머스 프라임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언제 아팠냐는 듯 왱왱 소리를 내며 기염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예전보다 훨씬 빨라진 채로요! 주인과 저는 모두 한참 동안 감격에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답니다.
그간 느리디 느린 저한테 짜증내고 답답해하던 주인은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빠른 속도에 흐믓해져 계속 싱글벙글이었습니다. 하루 사이에 책상 위에서 물려나 찬밥이 된 터라 조금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 넷북이니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새로운 CPU는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데스크탑 형아는 갑자기 컥 소리를 내며 쓰러지더니 사지를 죽 뻗고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인 말에 따르면 메인보드가 CPU를 읽지 못하게 된 것 같아요. 주인은 또 컴퓨터를 뜯어보고 메인보드의 건전지를 빼 초기화를 시킨다던가, 점퍼셋팅을 새로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애를 써보는 모양이던데, 데스크탑 형아는 아직까지도 전혀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계속 다른 방안을 모색해보는 눈치지만 전 알 것 같아요. 데스크탑 형아는 영원한 나라, 디지털 세계로 영영 가버렸다는 걸요.
하는 수 없이 주인은 다시금 저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다 놓고는 메인 컴퓨터 역할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글도 제가 대신 받아적고 있는 거든요. 요즘 출장이 많아져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이 없다보니, 그냥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저한테 이 일을 시킬 것 같네요.
그것까진 좋다 이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부팅이 왜 이리 느리냐, 인터넷이 또 왜 이렇냐. 소음은 왜 이리 많냐. USB 꽂을 구멍이 왜 두 개 밖에 없냐, 메모리 카드 꽂은 구멍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구나, 어떻게 모니터에 연결할 수도 없게 만들어져 있냐 등등……
사실 좀 억울합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전 넷북이거든요. 10인치의 사이즈에 1.3kg의 무게로 설계되었고, 커피전문점의 테이블 위에서나 지하철/버스/기차에서의 무릎 위에서 가장 멋들어지게 돌아가게끔 만들어졌단 말예요. 그런데 왜 주인은 저한테 데스크탑의 역할을 바라고, 원하고, 그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저리 분개하는 걸까요. 데스크탑 형아가 수명을 다 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제 역할은, 제 사명은 그와는 다른 것이거든요. 주인이 빨리 이 사실을 좀 깨달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저한테 맞는 자리로, 다시 돌려보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참, 생각해보니 이건 비단 제 얘기만은 아니네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나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나요? 무엇을 할 때 가장 빛을 발하도록 설계 되었냐는 말예요.
그런 것 없다고요? 에이, 왜 그러실까. 우리 데스크탑 형아처럼 이년도 못쓰고 퍼져버릴 컴퓨터들도 뚜렷한 목적과 설계도를 가지고 조립되는데, 우리를 발명해내고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위대한 존재가 아무 의도도 없이, 가능성도 없이 그냥 태어났겠어요? 설마 ‘난 원숭이의 후예니까. 거창한 의미 따윈 없이 그냥 먹고 자고 싸고 뒹굴 거리다가, 돈 뼈빠지게 벌어 아파트 사고 애들 과외 시켜주다가 죽는 거겠지’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혹, 자신이 데스크탑인지 노트북인지, 넷북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시겠다면 이번 '나는 누구인가' 시리즈와 함께 해주세요. 아마 우리 주인이 뭔가의 답을 준비한 모양입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인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아, 넷북이 뭔지 잘 모르시는 분도 계실 것 같네요. 넷북은 영어로 Net Book이라고 쓰구요, 말 그대로 Network 활동에 적합한 미니 컴퓨터다, 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크기가 작아서 여기저기 들고 다니기 좋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쉽게 꺼내 사용할 수 있거든요. 일반 노트북의 사이즈가 보통 14인치에서 18인치 정도 하잖아요? 저희 넷북은 커 봐야 12인치고 작은 애들은 7, 8인치까지 내려가기도 한답니다. 저는 딱 중간인 10인치구요.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작은 만큼 성능은 좀 떨어집니다. 어쩔 수 없죠. 부품도 다 작은 걸 써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전자제품은 작은 만큼 비싸다 보니 아무래도 커다란 컴퓨터보다는 좀 싼 부품을 쓸 수밖에 없고, 기능도 따라서 떨어지게 되는 거죠. 뭐, 하는 수 없는게 어치피 우리는 메인으로 쓰여지는 컴퓨터가 아닌, 넷북이니까요.
근데 말이죠. 저는 요즘 항상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답니다. 주인이 총애하던 데스크탑 형아가 맛이 가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거든요. 지난 달로 기억하는데요, 속도도 빠르고 용량도 엄청나 제가 늘 존경해오던 데스크탑 형아가 한참 잘 일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답니다. 다행히 곧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증상은 반복되었고, 점점 더 안 좋아졌구요. 처음에는 부팅된 지 한 삼십 분, 한 시간 뒤쯤에 꺼지곤 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부팅 되다가 꺼져버리더라고요. 지켜보던 제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요.
그래도 한 때 프로그래머를 꿈꿨다는 주인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데스크탑 형아의 배를 몇 번씩 뜯어내어 연구를 하다가 불연듯 'CPU를 냉각시켜주는 오일이 떨어져 과열이 된 것 같다'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더니 어디서 이상한 액 같은 것을 하나 구해와 덕지덕지 바르는 수술을 직접 진행하더라고요. 아, 이젠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말이죠. 이 사람, 바보 같이 CPU를 다시 메인보드에 끼우다가 핀을 부러뜨려 버렸지 뭐예요. CPU에 달린 핀은 수백 개가 넘지만 하나라도 부러지면 제대로 장착될 수조차 없거든요. 그런데 주인은 무식하게 힘으로 우겨넣다가 핀을 한 오십 개는 꺾어버렸답니다. 참으로 마뜩찮은 사람이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네요. 한 일주일쯤 뒤에는 아예 CPU를 새로 사왔거든요. 비싸지는 않지만 예전 것보다는 더 좋은 것 같긴 했어요. 주인은 지난 실패를 거울 삼아서인지 조심스레 CPU를 데스크탑 형아의 심장에 끼워넣었고, 다행히도 데스크탑 형아는 부활한 옵티머스 프라임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언제 아팠냐는 듯 왱왱 소리를 내며 기염을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예전보다 훨씬 빨라진 채로요! 주인과 저는 모두 한참 동안 감격에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답니다.
그간 느리디 느린 저한테 짜증내고 답답해하던 주인은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빠른 속도에 흐믓해져 계속 싱글벙글이었습니다. 하루 사이에 책상 위에서 물려나 찬밥이 된 터라 조금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 넷북이니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새로운 CPU는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데스크탑 형아는 갑자기 컥 소리를 내며 쓰러지더니 사지를 죽 뻗고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인 말에 따르면 메인보드가 CPU를 읽지 못하게 된 것 같아요. 주인은 또 컴퓨터를 뜯어보고 메인보드의 건전지를 빼 초기화를 시킨다던가, 점퍼셋팅을 새로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애를 써보는 모양이던데, 데스크탑 형아는 아직까지도 전혀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계속 다른 방안을 모색해보는 눈치지만 전 알 것 같아요. 데스크탑 형아는 영원한 나라, 디지털 세계로 영영 가버렸다는 걸요.
하는 수 없이 주인은 다시금 저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다 놓고는 메인 컴퓨터 역할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글도 제가 대신 받아적고 있는 거든요. 요즘 출장이 많아져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이 없다보니, 그냥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저한테 이 일을 시킬 것 같네요.
그것까진 좋다 이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부팅이 왜 이리 느리냐, 인터넷이 또 왜 이렇냐. 소음은 왜 이리 많냐. USB 꽂을 구멍이 왜 두 개 밖에 없냐, 메모리 카드 꽂은 구멍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구나, 어떻게 모니터에 연결할 수도 없게 만들어져 있냐 등등……
사실 좀 억울합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전 넷북이거든요. 10인치의 사이즈에 1.3kg의 무게로 설계되었고, 커피전문점의 테이블 위에서나 지하철/버스/기차에서의 무릎 위에서 가장 멋들어지게 돌아가게끔 만들어졌단 말예요. 그런데 왜 주인은 저한테 데스크탑의 역할을 바라고, 원하고, 그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저리 분개하는 걸까요. 데스크탑 형아가 수명을 다 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제 역할은, 제 사명은 그와는 다른 것이거든요. 주인이 빨리 이 사실을 좀 깨달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저한테 맞는 자리로, 다시 돌려보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참, 생각해보니 이건 비단 제 얘기만은 아니네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나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나요? 무엇을 할 때 가장 빛을 발하도록 설계 되었냐는 말예요.
그런 것 없다고요? 에이, 왜 그러실까. 우리 데스크탑 형아처럼 이년도 못쓰고 퍼져버릴 컴퓨터들도 뚜렷한 목적과 설계도를 가지고 조립되는데, 우리를 발명해내고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위대한 존재가 아무 의도도 없이, 가능성도 없이 그냥 태어났겠어요? 설마 ‘난 원숭이의 후예니까. 거창한 의미 따윈 없이 그냥 먹고 자고 싸고 뒹굴 거리다가, 돈 뼈빠지게 벌어 아파트 사고 애들 과외 시켜주다가 죽는 거겠지’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혹, 자신이 데스크탑인지 노트북인지, 넷북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시겠다면 이번 '나는 누구인가' 시리즈와 함께 해주세요. 아마 우리 주인이 뭔가의 답을 준비한 모양입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인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