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 또한 K와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딸의 남자친구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앉아 있는,
그 희멀건 녀석의 뇌 속에 ‘제발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라는 메시지를 심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난 딸을 한참 바라본 후 그 옆에 앉아있는 녀석을 또 한참 바라보았다.
길게 생각해볼 것도 없이 이건 아니었다. 생긴 것부터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갑이라고는 하지만 무슨 고생을 했는지 딸보다 대여섯 살은 더 들어 보였고,
잔뜩 말라있어 흐느적거리는 몸 놀림에 이목구비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얼굴은
바라보고 있자니 미간의 주름만 깊어졌다.
이런 내 생각 따윈 안중에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녀석은 날 보자마자 아버님이라느니, 앞으로 자주 만나 뵙겠다느니 하는
낯 뜨거운 말을 잘도 해댔다. 그 옆에서 딸은 말리기는커녕,
입을 가린 채 쿡쿡 웃어댈 뿐이었다.
만남을 주선한 것은 딸이었다.
요즘 몇 개월 째 만나고 있는 남자를 꼭 좀 보여주고 싶다며,
없는 시간이라도 꼭 만들어내라고 며칠씩 안달이길래,
마침 궁금하기도 하던 차라 기꺼운 마음으로 약속을 잡았다.
이십 대 중반을 훌쩍 넘겼지만 남자를 통 만나지 않던 딸이었다.
어릴 적에는 꽤나 활발한 애였지만 내가 아내와 이혼한 후부터는 말수도 많이 잃었고
성격도 침울해져 친구도 많이 사귀지 않았고, 남자친구는 더더욱 없었다.
일종의 결손 가정이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잘 자라준 거야 너무 고맙지만,
남들처럼 연애도 실컷 하고, 늦게까지 놀러도 다녀 줬으면 하는 바람도 늘 있었다.
가정의 행복을 무너뜨린 장본인으로서,
가슴 한 켠에 묶어놓을 수 밖에 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에서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얘기에 내가 반색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수준 미달이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집안도 그렇게 좋지 못한 것 같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대학교를 졸업한데다가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임시로 물류센터에서 박스나 나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땐 눈앞이 캄캄하기까지 했다.
결혼하면 넉넉지 못한 살림에 딸이 고생할 것이 눈에 선했다.
물론 내 딸이라 해서 딱히 명문 대학을 나왔다거나
남들 부러워할 좋은 직장을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혼가정의 딸이라 핸디캡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잘 안다.
하지만 엄마를 닮아 예쁜 얼굴에,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성격 때문에
평균 이상은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적어도 이런 남자에게 선뜻 내줄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심사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난 바로 그 날 저녁 집에 돌아오자마자 딸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수현아. 솔직히 얘기하마. 아빠는 그 남자가 썩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구나.
성격이 밝고 너한테 잘해주는 거는 잘 알겠는데,
왠지 결혼하거나 하면 네가 너무 고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딸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침묵했다. 심각한 얘기를 나눌 때의 습관이었다.
절대 크게 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웬만하면 내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것도 피하는 아이였다.
이렇게 차분하게 대화를 열어가면 충분히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응. 아까 아빠 눈치 보니까 크게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이긴 해요. 직장도 좋지 않고 집안도 별로지만
보시다시피 자신감도 넘치고 에너지도 넘치는 사람이라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고 생각해요.
게다가 정말 착하고 나한테 잘 해준단 말이에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요?”
“네 말도 맞다. 하지만 너한테 잘 해주는 그 성격이 얼마나 오래가겠니?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앞으로 겪어야 할 어려움이 한 둘이 아닐 텐데
너한테 계속 잘 해줄 것 같니? 난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수입이 좋지 않다는 말은 늘 쪼들리며 살아야 한다는 건데,
그런 상황을 네가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물론 아빠가 여러모로 도와줄 수는 있겠지마는, 내 상황도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잘 알잖냐.
솔직한 생각엔, 네가 나이가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고 하니
결혼을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다.
넌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충분히 있는 애니까.”
딸은 다시 침묵했다. 머리가 복잡한 모양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 강하게 치고 나가야 한다.
“아빠 말 잘 생각해보렴. 이건 네 인생이 걸린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명심하고.”
은근히 재촉하는 내 뜻을 알아챘는지 딸은 나지막이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좀 더 생각해볼게요.”
못내 섭섭한 말투였다. 방을 나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난 딸의 인생까지도 판단하는 심사자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명확한 일이었다. 딸이 행복하게끔 이끌어주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다.
따라서 나는 말리는 것이 옳고, 딸은 내 말을 듣는 것이 옳다.
딸의 뒷모습을 잘라먹은 방문을 쳐다보며 나는 스스로의 확신을 더욱 더 다지고 있었다.
딸의 남자친구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앉아 있는,
그 희멀건 녀석의 뇌 속에 ‘제발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라는 메시지를 심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난 딸을 한참 바라본 후 그 옆에 앉아있는 녀석을 또 한참 바라보았다.
길게 생각해볼 것도 없이 이건 아니었다. 생긴 것부터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갑이라고는 하지만 무슨 고생을 했는지 딸보다 대여섯 살은 더 들어 보였고,
잔뜩 말라있어 흐느적거리는 몸 놀림에 이목구비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얼굴은
바라보고 있자니 미간의 주름만 깊어졌다.
이런 내 생각 따윈 안중에 없는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녀석은 날 보자마자 아버님이라느니, 앞으로 자주 만나 뵙겠다느니 하는
낯 뜨거운 말을 잘도 해댔다. 그 옆에서 딸은 말리기는커녕,
입을 가린 채 쿡쿡 웃어댈 뿐이었다.
만남을 주선한 것은 딸이었다.
요즘 몇 개월 째 만나고 있는 남자를 꼭 좀 보여주고 싶다며,
없는 시간이라도 꼭 만들어내라고 며칠씩 안달이길래,
마침 궁금하기도 하던 차라 기꺼운 마음으로 약속을 잡았다.
이십 대 중반을 훌쩍 넘겼지만 남자를 통 만나지 않던 딸이었다.
어릴 적에는 꽤나 활발한 애였지만 내가 아내와 이혼한 후부터는 말수도 많이 잃었고
성격도 침울해져 친구도 많이 사귀지 않았고, 남자친구는 더더욱 없었다.
일종의 결손 가정이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잘 자라준 거야 너무 고맙지만,
남들처럼 연애도 실컷 하고, 늦게까지 놀러도 다녀 줬으면 하는 바람도 늘 있었다.
가정의 행복을 무너뜨린 장본인으로서,
가슴 한 켠에 묶어놓을 수 밖에 없는 죄책감과 미안함에서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얘기에 내가 반색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수준 미달이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집안도 그렇게 좋지 못한 것 같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대학교를 졸업한데다가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임시로 물류센터에서 박스나 나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땐 눈앞이 캄캄하기까지 했다.
결혼하면 넉넉지 못한 살림에 딸이 고생할 것이 눈에 선했다.
물론 내 딸이라 해서 딱히 명문 대학을 나왔다거나
남들 부러워할 좋은 직장을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혼가정의 딸이라 핸디캡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잘 안다.
하지만 엄마를 닮아 예쁜 얼굴에,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성격 때문에
평균 이상은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적어도 이런 남자에게 선뜻 내줄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심사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난 바로 그 날 저녁 집에 돌아오자마자 딸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수현아. 솔직히 얘기하마. 아빠는 그 남자가 썩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구나.
성격이 밝고 너한테 잘해주는 거는 잘 알겠는데,
왠지 결혼하거나 하면 네가 너무 고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딸은 눈을 내리깔고 잠시 침묵했다. 심각한 얘기를 나눌 때의 습관이었다.
절대 크게 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웬만하면 내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것도 피하는 아이였다.
이렇게 차분하게 대화를 열어가면 충분히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응. 아까 아빠 눈치 보니까 크게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이긴 해요. 직장도 좋지 않고 집안도 별로지만
보시다시피 자신감도 넘치고 에너지도 넘치는 사람이라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고 생각해요.
게다가 정말 착하고 나한테 잘 해준단 말이에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요?”
“네 말도 맞다. 하지만 너한테 잘 해주는 그 성격이 얼마나 오래가겠니?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앞으로 겪어야 할 어려움이 한 둘이 아닐 텐데
너한테 계속 잘 해줄 것 같니? 난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수입이 좋지 않다는 말은 늘 쪼들리며 살아야 한다는 건데,
그런 상황을 네가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물론 아빠가 여러모로 도와줄 수는 있겠지마는, 내 상황도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잘 알잖냐.
솔직한 생각엔, 네가 나이가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고 하니
결혼을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다.
넌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충분히 있는 애니까.”
딸은 다시 침묵했다. 머리가 복잡한 모양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 강하게 치고 나가야 한다.
“아빠 말 잘 생각해보렴. 이건 네 인생이 걸린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명심하고.”
은근히 재촉하는 내 뜻을 알아챘는지 딸은 나지막이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좀 더 생각해볼게요.”
못내 섭섭한 말투였다. 방을 나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난 딸의 인생까지도 판단하는 심사자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명확한 일이었다. 딸이 행복하게끔 이끌어주는 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다.
따라서 나는 말리는 것이 옳고, 딸은 내 말을 듣는 것이 옳다.
딸의 뒷모습을 잘라먹은 방문을 쳐다보며 나는 스스로의 확신을 더욱 더 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