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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안타깝지만 - 제2부

문★성 2009.09.22 21:32 조회 수 : 150

   요즘 들어 이번 건처럼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다.
그만큼 매장 개설 신청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 웬만한 장소에는 커피 전문점들이 이미 다 들어차 있어
새로 끼어 넣을만한 여지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은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창업이 가능한데다가 마진도 많이 남으며,
고깃집처럼 종업원을 많이 고용하거나 힘들게 불판을 닦을 일도,
호프집처럼 술 취한 손님을 상대하거나
화장실에 잔뜩 뱉어놓은 토사물을 치울 필요도 없고 하니
장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어 커피 전문점은 분명 매력적인 유혹이다.
하지만 이미 코엑스, 명동, 강남역 등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대학가 주변은 대여섯 개가 넘는 커피 전문점들을
한 자리에 모두 셀 수 있을 정도로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던 지방도시에서조차 ‘심을 곳’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경쟁력이 떨어지는 매장부터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할 것이고
시장에서 퇴출되는 브랜드도 속출할 것이 뻔하다.

   그러다 보니 신규매장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더 신중하고 까다롭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년이 그리 멀지 않은 나이에
회사에서 점점 입지가 좁아져 가는 지금의 내 입장에서
기껏 허가해줬다가 영업이 잘 되지 않아 폐쇄하는 매장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었다.
그러니 한 사거리에 각기 다른 커피 전문점이 네 개나 위치하고 있는 상권에
매장을 들여놓기를 원하는 K의 신청건과 같은 경우는
더더욱 합격 판정을 내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K는 다른 신청자들과는 달리 커피 전문점 사업에 대해서,
아니 커피 자체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도 없었다.
본사에서 만나 간단히 서류심사를 하고 몇 가지를 물어봤었는데,
그는 아메리카노와 에스프레소를 구분하지 못했고,
테이크 아웃을 알아듣지 못했다.
커피에 대한 교육이라면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한 아무런 공부나 관심조차 없이
무턱대고 뛰어들고자 하는 그의 접근방식은 나로서는 고깝게만 느껴졌다.

   하다못해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라도 좀 괜찮았다면 달리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K의 외모에서는 커피와 연결시킬 수 있는 그 어떤 고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광대뼈가 도드라지는 마른 얼굴은 커피보다는 독한 소주에 어울릴 법 했고,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빛 바랜 베이지색 자켓에,
그 못지 않게 촌스런 초록색 넥타이는
시골의 어느 다방에서 시간을 죽이는 어르신들을 연상케 했다.
결정적으로, 새치가 잔뜩 솟아있는 관리되지 않은 머리 모양과
제대로 깎지도 않은 덥수룩한 수염은
고급스럽고 수준 높은 이미지를 추구하는 회사의 정책과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님으로라도 매장 안에 들여놓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상이었다.
회사 직원을 뽑는 것이 아닌 것쯤은 알고 있지만
젊은 층, 특히 민감한 여성들의 마음을 공략해야 하는
커피 전문점을 운영할 만한 이미지는 분명 아니었다.

   “확인이 필요하겠습니다만, 썩 좋은 위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상권이 좀 쇠퇴하면서 예전보다 유동인구도 많이 줄었고요,
또 이미 다른 커피 전문점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류를 검토하는 동안 아무 말 없이 날 보고만 있던 K는 바로 내 말을 받아쳤다.
  
“그렇더라도 한 번 검토해주십시오. 제가 보기엔 분명 대목자리입니다.
저도 장사만 이십 년 넘게 해온 사람입니다. 감이라는 게 있어요.
아마 분명히 대박을 치고도 남을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검토를 하긴 하겠습니다만,
좋은 대답을 드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심사기간은 3주입니다. 다시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내 말 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여진
내가 건네준 명함을 흘깃 훔쳐본 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하고픈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박 부장님이라 하셨죠? 저도 그 동네 몇 번이나 가봤습니다.
가봤는데, 여기다, 하는 생각이 갈수록 더 강하게 들더란 말입니다.
아, 그러니까 지난 주, 지난 주 토요일엔 말입니다. 아예 길거리에 나앉았어요.
지하철 입구 아시죠? 제가 아까 말씀 드린 4번 출구 앞 말입니다.
거기에 아예 딱 앉아 가지고 하루 종일 어떤 사람들이 지나가나,
사람들이 뭘 하나, 계속 쳐다보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놀랍게도 커피 얘기를 마구 하는 겁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커피 마시고 싶다. 이 근처에 커피숍 어디 없을까?
이러는데, 그게 한두 명이면 제가 말도 안 합니다.
한 오십 명은 그런 소릴 했을 겁니다.
그 날 그 추운 날씨에 벌벌 떨면서 기다리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있자 하니, 이거다, 이건 된다, 하는 생각이
머리를 두들기더라고요.
근처에 다른 매장들이 있다고는 하나
제가 찍은 그 자리만큼 좋은 자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장님도 가보시면 금방 아실 겁니다. 확실합니다. 그렇고 말고요.”

   그는 말을 할 때 양 손을 들고 마주 휘젓는, 아주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눈은, 한 번 깜박거리지 않고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이마를 뚫고 뇌에 엄지손가락 길이만한 구멍을 파낸 후
자기 생각을 심어버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그런 눈이었다.
심사업무를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그렇게 불쾌하면서도 강한 눈빛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마치,
농도 조절을 잘못한,
에스프레소에 한없이 가까운 아메리카노 같았다.
절대 마시고 싶지 않은 아메리카노 말이다.



(--> 3부는 다음 주내 업뎃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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