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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사진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패션 관련한 유명한 블로그에서 불펌한 사진이긴 한데, 상업적인 용도가 아니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실지 모르겠다. 일단 이 분은 틀림없는 멋쟁이다. 유명 고급 수트 브랜드의 브랜드 매니저답게 정도를 따르면서도 개성을 부담스럽지 않게 잘 표출해내고 있는데, 바지나 자켓의 통, 길이 모두 정통복식의 기준 그대로이며, 자켓과 타이의 색상도 아주 보기 좋게 잘 매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은 시도하기도 힘든 포켓치프도 멀티포인티드 폴드 방식으로 멋스럽게 연출해내었으며, 사진 상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밝은 베이지색 양말을 착용한 센스 또한 남다르다. 실제로 이 분의 옷에 대한 지식이나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수준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라 이 분의 블로그는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추종한다고 자청하는 이들도 쉬이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솔직히 얘기 좀 해보자. 당신은 어떻게 느껴지는가? 이 분의 사진을 보고 한 눈에 반해 버릴 정도로, 보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매력을 전해 받았는가? 본받고 싶다거나 부럽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는가? 판정을 돕기 위해 하나의 대조군을 선정해보았다.



자. 잘 아시는 대로 조인성이다. 보시다시피 크게 멋부리지 않고 흰 티에 청바지 하나 입었을 뿐이다. 거리의 젊은 남자애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패션이다. 하지만 앞의 신사분과 비교해보라. 당신에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누구인가? 두 사람이 저런 차림으로 미팅 자리에 나왔다면 당신의 선택은 누가 될 것인가?

이번엔 여자 예를 한 번 들어볼까. 사진은 제법 오래된 영화 ‘와니와 준하’에 등장한 김희선이다.



악세서리 하나 없이 정말 편하고 소박하게 차려 입은 모습이다. 루이비통 백도, 티파니 목걸이도, 고데기로 두 시간 동안 고생해서 만든 머리도, 디젤 청바지와 프라다 킬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한 때 대한민국 최고미인으로 꼽혔던 김희선인지라 패션 점수는 제로일지 몰라도 누구도 그녀에게 '아름답지 않다'라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패션의 한계다. 아무리 꾸며봤자, 아무리 투자해봤자 타고난 차이는 쉽게 극복할 수 없다. 60점짜리인 내가 아무리 보스에서 나온 슈트를 입고, 처치스 구두를 신고, 태그호이어 시계를 찬다 할지라도 타고난 게 100점인 남자를 외모에서 이기는 것은, 딱 잘라 말해 절대로 불가능하다. ‘절대로’라는, 글에서 좀처럼 써서는 안 될 무리한 용어를 씀에 있어서도 하등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정도다.  

물론 꾸미는 것을 통해 어느 정도 플러스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투자대비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기에 천 만원을 투자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멋을 부려본다 할지라도 플러스 10점도 얻기 힘들 것이다. ‘멋쟁이’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과 동의어도 아닐뿐더러 그 멋쟁이가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노력과 투자는 너무도 크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 패션의 한계다.

미안하지만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좋은 백을 산다 한들, 아무리 좋은 구두를 신는다 한들 세간의 당신에 대한 평가는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어떠한 패션아이템도 ‘그냥 그럭저럭’인 당신을 ‘너무 아름답다’, ‘너무 멋있다’로 바꿔주지는 않는다. 물론 여자의 경우는 지난 편에서 주장한 것처럼 패션이 권력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는 있겠다.

하지만 ‘촌스럽게 옷을 입는 사람’과 ‘그냥 그럭저럭 입는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우리는 옷을 잘 입는 사람들에게는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는 반면 옷을 못 입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까다롭고 잔인하기 때문이다. 흰 양말에 샌들을 신은 남자, 한물간 메이커가 커다랗게 쓰인 목 늘어난 티를 입고 있는 남자, 짝퉁 티가 확 나는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자들이 놀림 거리가 되고 뒷담화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즉, 적어도 평균 이하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패션에 투자를 해야 하는 게 맞으며 이 때 패션은 상당한 효용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볼 때,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 패션 정책은 자신을 ‘그냥 그럭저럭 입는 사람’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 정도만 투자하고, 남는 돈은 다른 곳에 쓰는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몇 천 만원을 들여 오메가 시계나 보테가 베네타 백을 사봤자 별 효과는 없다.

이쯤 되며 패션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추구하는 것이다 라는 반박이 나올 만도 하다. 실제로 패션에 투자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자기만족 운운이다. 주위 사람들, 특히 젊은 여자애들로부터 많이 듣기도 했고, 또 내 스스로도 몇 십 만원씩 돈 들여 옷이나 액세서리를 살 때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해준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기만족이라는 게 과연 얼마만큼 순수하게 ‘자기의 만족’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자기만족을 말하는 사람들이 구입하는 패션아이템은 남들로부터 객관적으로 인정된, 혹은 남들이 보고 인정하고 알아주고 부러워해줄 제품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기만족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자기만족은 결국 남들의 시선의 결과물, 혹은 객관성에 의해 지지될 인정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이 세상에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혹은 당신의 패션을 전혀 이해 못해줄 아이들과 부시맨들로만 가득 차 있다면 지금처럼 꾸미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백이라 불릴 정도로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의 백을 사기 위해 남자친구를 조르고, 카드할부에 끙끙대는 여자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며, 적절한 길이를 내기 위해 몇 번씩 넥타이를 고쳐 매는 남자들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좀 세게 말해보자면 자기만족, 그거 순 자기 변명, 논리성 부족한 자기 합리화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아래의 노홍철 정도 되면, 남의 시선과는 상관없는 순수한 자기만족을 추구한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생각해보면 이 역시 '이렇게 입으면 소녀들이 멋있다고 난리나겠지?'와 같은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매한가지일 수도 있겠다.



사진으로 시작했으니 사진으로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아래 사진은 오래된 차를 튜닝한 것으로, 상당한 돈과 노력이 들어간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느끼다시피, 멋있다,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아무리 꾸며봤자 고급차로 보여지지 않으며, 누구도 차 뒤에 붙인 '혼다' 엠블럼을 보고 외제차라고 환호하지 않는다. 차라리 세차와 광택 말끔히 하는 것이 단정해보이고 훨씬 좋아 보일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패션의 한계, 패션의 비효용성을 인지하고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투자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패션에 투자하는 백 만원, 천 만원의 돈보다 당신의 외모를 더 돋보이게 만들 것들 – 이를테면 운동으로 인해 잘 다져진 몸매라던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미소와 목소리, 단정한 몸가짐과 예의, 입냄새나 삐져나온 코털을 제거하기 – 을 갖춰가는 것이 휠씬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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