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 이어 계속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1편을 쓴 후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고, 내 생각의 호수에 새로이 추가된 것도 없지만, 머리 속에 뿌연 먼지처럼 떠도는 생각을 글이라는 포장으로 묶어내는 것만으로도 좀 더 구체적인 자기확신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글로 표현하지 않는 생각은 완성된 생각이 아니다. 덜 익혀진 삼겹살 같다고나 할까. 적어도 내겐 그렇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대학입학 때부터 취업할 때까지 자기소개서 등에 뻔질나게 적어야 했던 것이 바로 ‘취미’와 취미가 진화된 형태인 ‘특기’ 항목이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목명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악기 이름을 적으면 그만이었지만 나처럼 평범하고 튀지 않게 사는 사람에게 이 란을 채우는 것은 그 공간의 크기에 비해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도 취업시즌 막판에는 취미에 ‘권투’, 특기에 ‘세벌식 자판’이라는 보기 드문 내용들을 적음으로써 면접관들의 궁금증을 끌어내는, 다분히 정치적인 술수를 쓰기도 했었는데, 어쨌거나 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남들에게 공인될만한 취미나 특기를 달리 가지고 있지 않은 편이다.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춰질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일 듯하다. TV를 잘 보지 않으니 남들이 ‘그바보’니 ‘분장실 강선생님’ 갈은 얘기를 할 땐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고, 운동도 혼자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자전거 타기 정도만 즐길 뿐 수영, 골프, 스키, 테니스 등 인기있는 운동은 하나같이 할 줄 모르며, 악기 역시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게 없다. 여행은 귀찮아서 예전부터 싫어했고 사진 찍기나 드라이브, 와인 등 또래(서른이 넘으니 또래라는 표현쓰기가 상당히 어색하지만)의 남자들이 즐길만한 여가생활에도 거의 관심이 없는 편이다.
시간날 때 즐기는 거라곤 데이트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책 읽기와 글 쓰기뿐인데 응용이래 봤자 책 읽은 다음 글 쓰기 혹은 글 쓴 다음 책 읽기가 전부다. 홈페이지에 영화감상문 잔뜩 올려놓고 있긴 하지만, 누차 말했듯 이 역시 영화가 재미있어서 라기보다는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다. 자기소개서의 취미란에 '글쓰기'나 ‘독서’를 적어놓은 사람, 척 보기에도 고리타분해 보이고, 따분해 보이지 않는가? 예전의 내가 그랬고, 지금의 내가 그렇다.
자, 이제 본론을 시작해보자. 우리는 흔히 좋아하는 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을 하곤 하다. 그렇다면 취미나 특기 하나 제대로 가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나처럼 남들 보기에 엄청 재미없고 답답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해도 말이다. ‘잘 키워놓은 취미생활이 행복을 보장한다’ 오늘은 이 명제에 대해 좀 더 파고 들어가보도록 하자.
앞에서 참 따분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내게도 무작정 쉬고 싶을 때, 무작정 놀고 싶을 때가 있고 그 때마다 붙잡는 것들이 있다. 취미생활이라 명명하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한 놀이들 말이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니 올 봄까지만 해도 내 여가생활의 중심은 WWE였다. WWE는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의 약자로 헐크 호건, 얼티밋 워리어 등이 등장하던 그 옛날 WWF의 바뀐 이름이며, 미국에서 매주 방영되는 일종의 프로레슬링 쇼를 말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건 초등학생들도 아는 터이고, 중학생만 되어도 유치하다고 싫어할 프로레슬링을 이 나이에 즐긴다는 게 한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내겐 재밌기만 했다.
한 번 빠지면 또 바닥을 칠 때까지 깊게 잠수해가는 내 성격상, 숙제하듯 매주 한 펀 정도의 쇼를 다운받아서 영어공부도 된다는 핑계 하에 열심히 시청하였으며 웬만한 선수들의 이름과 나이, 그들의 히스토리까지 꿰고 있었다. 짜고 친다는 구조적인 한계는 드라마나 영화와 다를 바 없다는 이유로 맑게 희석되었고,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릴 때 발을 굴러서 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거나 상대를 바닥에 내리꽂을 때도 아프지 않게 배려해주는 기술적인 가식은 애써 못 본 척 해주었다. 뻔질나게 되풀이 되는 권선징악적 스토리와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똑같은 선수들간의 리매치까지도 일단은 재밌으니까라는 이유로 이해해버리는, 마음 넓은 나였다.

(프로레슬링에 빠진 건 국민학교 6학년 이후 오래간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프로레슬링의 모든 것이 정말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올해 레슬매니아(매년 1회 방영되는 WWE 최고의 쇼, 미식축구의 슈퍼볼과 유사하다)가 끝난 다음부터이지 싶은데 매주 보던 쇼도 슬슬 정말 지루하게 보다가 아예 끊어버렸고 거의 매일 방문하여 글을 읽던 관련 사이트나 블로그도 더 이상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프로레슬링이 재밌어진 것이 그 이유를 알 수 없든 싫어진 데에도 딱히 이유가 없었다. 아마 내년 레슬매니아 정도 때나 굵직한 선수들이 컴백하게 되면 다시 관심을 가질 것도 같은데 그것도 잠깐일뿐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레슬매니아와 이별하면서 만나게 된 것이 진삼국무쌍이라는 게임이었다. 삼국지의 인물들을 컨트롤하게 되는 액션게임이었는데 이게 또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삼국지를 열 번 이상 읽고, 비평서, 만화책 등 관련 서적만 열 종이 넘게 읽은 삼국지 매니아인 내게, 삼국지의 인물과 스토리를 적절히 이식한 액션게임은 어마어마한 유혹이었다. 게다가 이 게임은 조작성과 같은 게임성도 좋고 그래픽과 음악, 캐릭터성에 이르기까지 단점이 별로 없는데다가, 진행하면 할수록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점점 늘어나 수십 명에 이르기 때문에 도중에 손을 놓기가 매우 어려웠다. 아예 중독이 될 수밖에 없게끔, 질리지 않게끔 설계를 해놓은 것이다.
덕분에 매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몇 번씩은 플레이했던 것 같다. 밤 10시만 되면 눈물이 저절로 흐를 만큼 피곤해지곤 하는데, 그때마다 이 게임을 하게 되면 잠이 확 달아났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흠을 잡기 힘든 게임, 진삼국무쌍5)
그런데 웬걸, 그것도 3주가 고작이었다. 중독성이 상당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약한 삼국지라는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딱 3주 지나니까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라는 결론이 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봉인된 상태며, 세이브한 파일이 아까워서 언인스톨하지는 않았는데 아마 컴퓨터 용량이 가득차게 되면 필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게 뻔하다.
이렇듯 올해만 하더라도 WWE와 진삼국무쌍, 두 가지 취미가 내 삶 밖으로 사라졌다. 검색범위를 넓힌다면 더 많은 항목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테다. 먼저 앞에서 말한 권투만 하더라도 2년 넘게 내게 큰 즐거움을 줬지만 내 삶에서 비껴간 지 5년이 넘었다. 야구, 배구, 농구, 유럽축구 등의 스포츠 경기 관람의 즐거움도 한 때 나를 뜨겁게 지피다가 어디론가 가버렸고 프라모델 조립, 붉은악마 활동, 노래방 죽돌이 생활 등 열거하자만 끝도 없을 수많은 취미생활들이 더이상 내게 속해 있지 않다. 내가 토해낸 것도 아닌데, 어느새 내 안에서 모두 사라진 것이다.
다시 아까의 명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아주 당연하게 믿고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본다. 올해 레슬매니아에서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의 가슴 설레는 명승부를 보면서, 진삼국무쌍에서 하후돈으로 유비를 물리치면서 내 얼굴에는 주름 가득한 미소가 번졌다. 그 일순의 순간을 행복이라 부르는 것이 오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배어나온 행복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이켜보면, 종류에 따라 길고 짧을 순 있겠지만 그 어떤 취미생활도 영속적인 행복을 주지는 않았다. WWE와 진삼국무쌍처럼 종래엔 다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쉽게 질리고, 쉽게 변심하며, 늘 다른 자극, 혹은 더 강한 자극을 바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속 취미를 바꿔가면 어떨까? 와인이 지겨워지면 커피로 취향을 바꾸고, 유럽축구가 재미없어지면 미국 프로야구로 관심을 옮기며, 삼국지가 심심해지면 수호지를 보고, 늘 재미있는 일을 찾아 직장이나 직업도 바꾸고 사는 곳도 옮긴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재미있을 수 있고, 계속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행복이라는 건, 그렇게 찔끔찔끔, 마치 여기저기 물 새는 댐을 막기 위해 땜질을 반복하듯 하여 얻어지는 것인가? 자극이 떨어지면 얼른 다른 자극으로 교체해가며, 더 강하고, 더 새로운 자극을 찾기 위해 아둥바둥 안간힘을 써야 하는 그런 것이었나?

(이런 행복이었나?)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행복은 그런 자극들의 반복으로 애써 유지되는 것이 아닌, 시간의 경과나 개인의 변덕과는 상관없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혹은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가는 것, 자신만의 행복이 아니라 가족을 위시한 다른 사람들의 행복까지 추구하며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는 것, 인생에서의 보다 높은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거, 아닌가?)
연거푸 헛걸음만 해댄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행복을 찾아 떠난 문성은 적어도, WWE와 진삼국무쌍에서는 파랑새를 찾을 수 없었다. 아직 시간은 많기에 마음의 여유를 갖고, 다시 생각의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이 이야기는 삼 편에서 계속된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대학입학 때부터 취업할 때까지 자기소개서 등에 뻔질나게 적어야 했던 것이 바로 ‘취미’와 취미가 진화된 형태인 ‘특기’ 항목이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목명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악기 이름을 적으면 그만이었지만 나처럼 평범하고 튀지 않게 사는 사람에게 이 란을 채우는 것은 그 공간의 크기에 비해 꽤나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도 취업시즌 막판에는 취미에 ‘권투’, 특기에 ‘세벌식 자판’이라는 보기 드문 내용들을 적음으로써 면접관들의 궁금증을 끌어내는, 다분히 정치적인 술수를 쓰기도 했었는데, 어쨌거나 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남들에게 공인될만한 취미나 특기를 달리 가지고 있지 않은 편이다.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춰질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일 듯하다. TV를 잘 보지 않으니 남들이 ‘그바보’니 ‘분장실 강선생님’ 갈은 얘기를 할 땐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고, 운동도 혼자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자전거 타기 정도만 즐길 뿐 수영, 골프, 스키, 테니스 등 인기있는 운동은 하나같이 할 줄 모르며, 악기 역시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게 없다. 여행은 귀찮아서 예전부터 싫어했고 사진 찍기나 드라이브, 와인 등 또래(서른이 넘으니 또래라는 표현쓰기가 상당히 어색하지만)의 남자들이 즐길만한 여가생활에도 거의 관심이 없는 편이다.
시간날 때 즐기는 거라곤 데이트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책 읽기와 글 쓰기뿐인데 응용이래 봤자 책 읽은 다음 글 쓰기 혹은 글 쓴 다음 책 읽기가 전부다. 홈페이지에 영화감상문 잔뜩 올려놓고 있긴 하지만, 누차 말했듯 이 역시 영화가 재미있어서 라기보다는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다. 자기소개서의 취미란에 '글쓰기'나 ‘독서’를 적어놓은 사람, 척 보기에도 고리타분해 보이고, 따분해 보이지 않는가? 예전의 내가 그랬고, 지금의 내가 그렇다.
자, 이제 본론을 시작해보자. 우리는 흔히 좋아하는 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을 하곤 하다. 그렇다면 취미나 특기 하나 제대로 가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나처럼 남들 보기에 엄청 재미없고 답답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해도 말이다. ‘잘 키워놓은 취미생활이 행복을 보장한다’ 오늘은 이 명제에 대해 좀 더 파고 들어가보도록 하자.
앞에서 참 따분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내게도 무작정 쉬고 싶을 때, 무작정 놀고 싶을 때가 있고 그 때마다 붙잡는 것들이 있다. 취미생활이라 명명하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한 놀이들 말이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니 올 봄까지만 해도 내 여가생활의 중심은 WWE였다. WWE는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의 약자로 헐크 호건, 얼티밋 워리어 등이 등장하던 그 옛날 WWF의 바뀐 이름이며, 미국에서 매주 방영되는 일종의 프로레슬링 쇼를 말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건 초등학생들도 아는 터이고, 중학생만 되어도 유치하다고 싫어할 프로레슬링을 이 나이에 즐긴다는 게 한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내겐 재밌기만 했다.
한 번 빠지면 또 바닥을 칠 때까지 깊게 잠수해가는 내 성격상, 숙제하듯 매주 한 펀 정도의 쇼를 다운받아서 영어공부도 된다는 핑계 하에 열심히 시청하였으며 웬만한 선수들의 이름과 나이, 그들의 히스토리까지 꿰고 있었다. 짜고 친다는 구조적인 한계는 드라마나 영화와 다를 바 없다는 이유로 맑게 희석되었고,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릴 때 발을 굴러서 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거나 상대를 바닥에 내리꽂을 때도 아프지 않게 배려해주는 기술적인 가식은 애써 못 본 척 해주었다. 뻔질나게 되풀이 되는 권선징악적 스토리와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똑같은 선수들간의 리매치까지도 일단은 재밌으니까라는 이유로 이해해버리는, 마음 넓은 나였다.

(프로레슬링에 빠진 건 국민학교 6학년 이후 오래간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프로레슬링의 모든 것이 정말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올해 레슬매니아(매년 1회 방영되는 WWE 최고의 쇼, 미식축구의 슈퍼볼과 유사하다)가 끝난 다음부터이지 싶은데 매주 보던 쇼도 슬슬 정말 지루하게 보다가 아예 끊어버렸고 거의 매일 방문하여 글을 읽던 관련 사이트나 블로그도 더 이상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프로레슬링이 재밌어진 것이 그 이유를 알 수 없든 싫어진 데에도 딱히 이유가 없었다. 아마 내년 레슬매니아 정도 때나 굵직한 선수들이 컴백하게 되면 다시 관심을 가질 것도 같은데 그것도 잠깐일뿐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레슬매니아와 이별하면서 만나게 된 것이 진삼국무쌍이라는 게임이었다. 삼국지의 인물들을 컨트롤하게 되는 액션게임이었는데 이게 또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삼국지를 열 번 이상 읽고, 비평서, 만화책 등 관련 서적만 열 종이 넘게 읽은 삼국지 매니아인 내게, 삼국지의 인물과 스토리를 적절히 이식한 액션게임은 어마어마한 유혹이었다. 게다가 이 게임은 조작성과 같은 게임성도 좋고 그래픽과 음악, 캐릭터성에 이르기까지 단점이 별로 없는데다가, 진행하면 할수록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점점 늘어나 수십 명에 이르기 때문에 도중에 손을 놓기가 매우 어려웠다. 아예 중독이 될 수밖에 없게끔, 질리지 않게끔 설계를 해놓은 것이다.
덕분에 매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몇 번씩은 플레이했던 것 같다. 밤 10시만 되면 눈물이 저절로 흐를 만큼 피곤해지곤 하는데, 그때마다 이 게임을 하게 되면 잠이 확 달아났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흠을 잡기 힘든 게임, 진삼국무쌍5)
그런데 웬걸, 그것도 3주가 고작이었다. 중독성이 상당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약한 삼국지라는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딱 3주 지나니까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라는 결론이 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봉인된 상태며, 세이브한 파일이 아까워서 언인스톨하지는 않았는데 아마 컴퓨터 용량이 가득차게 되면 필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게 뻔하다.
이렇듯 올해만 하더라도 WWE와 진삼국무쌍, 두 가지 취미가 내 삶 밖으로 사라졌다. 검색범위를 넓힌다면 더 많은 항목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테다. 먼저 앞에서 말한 권투만 하더라도 2년 넘게 내게 큰 즐거움을 줬지만 내 삶에서 비껴간 지 5년이 넘었다. 야구, 배구, 농구, 유럽축구 등의 스포츠 경기 관람의 즐거움도 한 때 나를 뜨겁게 지피다가 어디론가 가버렸고 프라모델 조립, 붉은악마 활동, 노래방 죽돌이 생활 등 열거하자만 끝도 없을 수많은 취미생활들이 더이상 내게 속해 있지 않다. 내가 토해낸 것도 아닌데, 어느새 내 안에서 모두 사라진 것이다.
다시 아까의 명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아주 당연하게 믿고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본다. 올해 레슬매니아에서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의 가슴 설레는 명승부를 보면서, 진삼국무쌍에서 하후돈으로 유비를 물리치면서 내 얼굴에는 주름 가득한 미소가 번졌다. 그 일순의 순간을 행복이라 부르는 것이 오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배어나온 행복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이켜보면, 종류에 따라 길고 짧을 순 있겠지만 그 어떤 취미생활도 영속적인 행복을 주지는 않았다. WWE와 진삼국무쌍처럼 종래엔 다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쉽게 질리고, 쉽게 변심하며, 늘 다른 자극, 혹은 더 강한 자극을 바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속 취미를 바꿔가면 어떨까? 와인이 지겨워지면 커피로 취향을 바꾸고, 유럽축구가 재미없어지면 미국 프로야구로 관심을 옮기며, 삼국지가 심심해지면 수호지를 보고, 늘 재미있는 일을 찾아 직장이나 직업도 바꾸고 사는 곳도 옮긴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재미있을 수 있고, 계속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행복이라는 건, 그렇게 찔끔찔끔, 마치 여기저기 물 새는 댐을 막기 위해 땜질을 반복하듯 하여 얻어지는 것인가? 자극이 떨어지면 얼른 다른 자극으로 교체해가며, 더 강하고, 더 새로운 자극을 찾기 위해 아둥바둥 안간힘을 써야 하는 그런 것이었나?

(이런 행복이었나?)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행복은 그런 자극들의 반복으로 애써 유지되는 것이 아닌, 시간의 경과나 개인의 변덕과는 상관없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혹은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가는 것, 자신만의 행복이 아니라 가족을 위시한 다른 사람들의 행복까지 추구하며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는 것, 인생에서의 보다 높은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거, 아닌가?)
연거푸 헛걸음만 해댄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행복을 찾아 떠난 문성은 적어도, WWE와 진삼국무쌍에서는 파랑새를 찾을 수 없었다. 아직 시간은 많기에 마음의 여유를 갖고, 다시 생각의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이 이야기는 삼 편에서 계속된다.
댓글 6
-
미영
2009.07.01 16:17
난 요즘 스도쿠에 빠져서 hard 문제를 풀어낼 때 행복함을 느끼고 있지.ㅎㅎ -
문★성
2009.07.02 17:32
어 잘하고 있는거다. 스도쿠는 미영이의 파랑새가 맞느냐?! (엥?) -
wonjo
2009.07.03 02:06
와와... 나 진삼5... 구할수 있는 방법 없나?
진삼은 딱 3주... 그 이상은 오타쿠의 영역인듯..
3편에서는 '기억' 이라는 요소를 추가 해보면 어떻까?
행복은 항상 존재와 동시간에만 있을수 있는 것일까?
지나가 버린것은 무의미해지는 건가? -
문★성
2009.07.03 22:57
- P2P 프로그램으로 검색해봐랏. 금방 나온다. 1.5기가나 되는지라 내가 메일로 줄 수는 없고;;;
- 암튼 자네는 안 해본 게 없구려. 진삼도 해보고. 다방면행복추구형인물이로다.
- '기억' 얘기는 자네 말대로 좋은 주제인 것 같은데, 자네가 직접 한 번 써봄이 어떨까? 쓴 다음 주면 내가 여기 올리겠네! -
wonjo
2009.07.06 23:00
이거 내 무덤을 판건가? ㅋㅋ
써보려고 하는데, 잘 안써지네.. ㅋ
시간좀 걸리게 생겻다.
난설의 위대함을 체감하는 중이다.
근데 행복은 현재에만 존재하는 것인것 같다... -
문★성
2009.07.07 12:30
생각을 글로 뱉어보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있겠나. 기다리고 있겠네. 히히
sung.moon@y-k.co.kr 로 보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