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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죽음의 이유

문★성 2009.05.30 13:54 조회 수 : 107

조금 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제 동영상을 봤다.
사람들이 꼭 보라고 말하던 한명숙 공동장례위원장의 절절한 조사도 보았고,
많은 이들을 울게끔 만들었던 고인의 생전 동영상과
노란색 풍선과 모자가 해변가의 모래처럼 가득히 박혀있는
시청광장에서의 노제에 이르기까지,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하나씩 내 가슴에 담아보았다.

나는 노사모도 아니고, 민주당원도 아니며
좌파나 진보와 같은 수식어를 달기에도 부끄러운,
그냥 제 자신만 알고 자기 것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소시민에 불과하다.
미선이 효순이가 죽었을 때도, 미국소 수입 파동으로 촛불집회가 일어났을 때도
거리에 한 번 나가본 적 없는 게으른 젊음이며,
여태껏 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리거나 분연히 소리 한 번 질러본 적 없는 졸렬한 청년이다.
그런 나이기에 그 분의 죽음을 거창한 정치적 의미로 해석한다거나
감정적인 분노나 슬픔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뻔뻔함을 과시하기 보단
외려 차분히 그 분의 가심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번 생각해보았다.
그는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이룩하기 위해?
정치인으로서 꿈꿀 수 있는 가장 큰 목표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
거액의 부와 커다란 명예를 손에 쥐고
그로 인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소외받고 헐벗은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권리를 바로 잡아주며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그는 무엇을 위해 죽었을까?

하나 남은 도덕성마저 훼손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기의 죽음으로 인해 측근과 가족이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대로 있다간 ‘죄인’의 이름으로 감옥에 갈 것 같으니 그 불명예와 치욕을 피하기 위해?
사실확인도 되지 않은 내용으로 숨통을 조여드는 검찰과
언론의 압박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모르겠다.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없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의 죽음에 앞에 선 우리 모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신문을 봐도, TV를 틀어도 갖은 추측만 난무할 뿐이며,
남겨진 유서도 뒷일에 대한 당부가 주를 이룰 뿐 자신이 왜 죽어야 했는지,
왜 단단한 바위들 위로 머리부터 떨어져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답은 지금은 화장되어 가루가 된 고인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죽음의 이유는 고인 못지 않게 살아 남은 자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추모든 비난이든, 정치적 공격이든 수비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목소리 큰 사람들과 언론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왜 죽었는지를
마치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말하듯 선포하기 시작하였고,
뚜렷하게 자신만의 결론을 내지 못한 사람들은
공중에 무수히 떠다니는 의견 중 하나를 택하여 공명하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그 생각들이, 그 죽음의 이유들이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많이 다르고
때로는 격렬하게 상충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생각과 민주당의 생각이 다르고
검찰의 생각과 노사모의 생각이 다르며
진중권과 조갑제의 생각이 다르며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과 김대중 전대통령의 생각이 다르다는 말이다.
심지어 어제 서울시청앞 광장에 모이 수십 만의 사람들도 애도하는 마음은 비슷하겠지만
죽음의 이유에 대한 해석에 따라 헤쳐 모인다면 필시 사분오열 되었을 것이다.
모범답안이 없는, 하지만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수학문제를 앞에 두고
학자마다 생각이 분분하듯 국민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해,
아니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죽음의 이유로 인해 분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죽음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지금껏 살아온 모든 것을 잃고 잊고 버린 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가는 것이기에 그렇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처럼 힘들고 외로운 상황에서의 죽음은
어떤 관점에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될 수 없다.
때문에 앞서 말한 ‘죽음의 이유’는 또 하나의 진통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바로 누가 그 이유를 만들었냐는 문제,
그 이유를 만든 이들이 책임을 지라는 문제이다.
하기에 들끓는 여론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조중동에게 그 죄를 묻기 시작했고
공격대상들은 지금처럼 고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자기도 마치 같은 편인 양
양가죽을 덮어쓰거나, 되려 대대적인 반격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도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죽음의 이유와 그로 인한 책임의 문제가
한동안 한국사회를 휘감을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기에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지 사뭇 궁금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민심은 어디를 향할지, 이명박 정부의 정치는 일말의 변화를 모색할지
아니면 불붙는 민중들과 한판 겨루기를 자청할지,
민주당은 각성하고 제자리를 찾을지 아니면 정처 없는 은하여행을 계속할지,
주식은 오를지 떨어질지, 갑자기 끼어둔 북한 문제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쉽게 짐작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것이든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전국각지의 분향소와 시청 앞으로 모이게 한,
한 커다란 인물의 죽음을 이제 막 지나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 사람마다 정답이 다른 문제를 안고 가기에
한동안 그 발걸음은 비틀거릴 것이며, 휘청거릴 테지만
지금까지 그러하였듯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그 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그제서야 고인의 삶과 죽음은
더욱 크고 깊은 의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서
내가 찾아낼 수 있는 아주 작은,
희망의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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