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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패션 - 3. 패션의 권력성

문★성 2009.04.30 22:32 조회 수 : 109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의복, 장신구, 이미용 등 패션과 관련한 지출이 2008년 전체 소비지출의 8.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명 작지 않은 수치인데, 대상 연령대를 젊은 층에 국한시키거나 패션이라는 개념을 옷가지뿐만이 아니라 피부관리, 악세서리, 핸드폰, 인테리어, 성형 등 여러 국면으로 넓게 확장시켜 본다면 이 비율은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돈 뿐만이 아니다. 패션에 드는 시간 역시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일일 평균 화장시간을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에서는 25분, 랑콤에서는 40분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여기에 옷 고르는 시간, 옷 빨고 다리는 시간, 머리 감고 드라이하고 고데기로 마는 시간, 손발톱 손질하는 시간, 코 털 및 다리/겨드랑이 털 손질하는 시간 등을 모조리 고려하면 패션을 위한 시간은 돈 이상으로 우리 삶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돈과 시간이라는,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양대 자원을 아낌없이 털어가며 패션에 신경을 쓰고 있다. 더 아름다워지고 더 멋있어지게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 원인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이 질문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패션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그 존재의 기본 전제로 삼는다.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지금과 동일한 돈과 시간을 패션에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린 나뭇잎으로 옷을 해입은 아담과 하와처럼 몸을 보호하고 부끄러운 곳을 감추기 위해서 패션을 활용하기도 하며, 속옷이나 잠옷을 살 때처럼 남이 아닌 자기의 만족을 위해 패션에 신경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의복이 단순한 보호용도에서 벗어난 지는 이미 수 천년이 지났으며, 패션의 자기만족적 속성 또한 현 시대에서는 그리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패션은 보호성, 탐미성이라는 태곳적 가치를 초월하여 완연한 자본주의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권력’이다.

패션의 권력적 속성은 여성들에게 있어 더 크게 발현된다. 그들에게 있어 더 예쁘고 비싼 옷을 입고, 더 날씬하고 보기 좋은 몸매를 가지는 것은 마치 멋진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뽐내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과시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요건에 다름 아니다. 반대로 허름한 옷을 입었거나 썩 자랑할만한 하지 않은 몸매를 가진 여자는 외제차 주인을 바라보는 20년 된 엑셀 승용차의 차주처럼 자기도 모르게 움츠려 들거나, 질투하거나, 또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는데, 이러한 양태는 권력의 유무에 따라 갈라지는 강자와 약자의 대칭되는 모습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이는 패션이 부의 상징으로, 품위의 상징으로,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자산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부터 시작된 현상으로 패션에서 앞서가는 자가 마치 다른 모든 지수에서 앞서 가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돋아난 일종의 사회적 문제라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등장한, 아침마다 졸린 눈으로 억지로 화장하고 월급을 통째로 털어 명품백을 사며, 얼굴을 수 차례 뜯어고치고 다이어트에 목을 매는 여성들의 모습은 권력을 향한 애달픈 목마름에 건강과 가족, 자신의 행복을 모조리 헌납하고 마는 불쌍한 남성들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 아름다움을 표방하는 패션이 오히려 사회의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쯤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실 분도 계실 것 같다. 패션에 대한 갈망은 순수한 자기만족 때문이라고, 당신 너무 세상 삐딱하게 본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만족의 기준은 무엇인가? 결국 내가 더 괜찮아졌는가 아닌가에 달려있지 않은가? 그 판단의 기준이 나를 넘어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데에 이른다면 이는 권력의 문제로 변질될 수 있다. 내가 가진 촌스런 옷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자기만족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입은 촌스런 옷을 보고 경멸감이 든다거나 자신에 대한 우월감이 느껴진다면 이는 분명 패션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며, 이 때 패션은 분명한 권력의 모양새를 띤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자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스키니진을 입는 이유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는 일부 마초맨들의 주장은 완전히 틀려 먹었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몰래 여자들의 사진을 찍거나 흘깃흘깃 쳐다보면서 ‘어차피 보라고 입고 나온 건데 뭐 어떠냐’는 일부 남정네들의 뻔치는 그야말로 무식의 소산이다. 여성의 패션은 ‘남자’를 위한 것은 아니며, ‘모든 남자’를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나 잘 보이고 싶은 남자가 있을 때 더욱 패션에 신경을 쓰기도 하며, 남성들의 뜨거운 시선을 은근히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길거리의 노숙자 아저씨와 변태 바바리맨을 포함한 모든 남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부자도 자신의 재력을 비슷한 등급의 사람들 앞에서 자동차나 시계, 수트 등으로 은근히 뽐내고 싶어하지, 동네 거지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지는 않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남성들만을 고려한다면 이 문제는 훨씬 간단해진다. 적어도 여성의 외모를 보고 권력의 대소를 절감하는 남성은 없으니까 말이다. 여성들이 30만 원 더 비싼 옷을 입는다고 해서, 화장 30분을 더 한다고 해서 그걸 인식할 수 있는 남자는 극히 많지 않다. 매일 보는 여자친구가 머리 스타일을 바꿔와도 깨닫지 못하는게 남자 아니던가. 이들 앞에서 패션의 권력적 속성은 제대로 작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패션의 주타겟층은 어디까지나 여성이다. 패션에 돈을 많이 쓰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패션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 또한 여성이다. 패션에 있어서 남성은 어디까지나 sub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옷에 튄 김치국물 한 방울에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떡진 머리스타일 때문에 내내 인상이 찡그려지며,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멀쩡히 보이는 옷을 갖다 버리곤 하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이름만 가득 새겨진 가방이나 옷을 최고의 패션 아이템으로 인정해주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시대가 발전되면 발전될수록 사람의 내재된 장점과 특징들에 주목을 해야 할 터인데 이 정보화사회, 현대산업사회란 놈은 어찌된 것인지 더욱 더 인간의 사악하고 간악한 면만을 부각시켜놓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갈수록 돈, 외모와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집착하고 이런 기준들로 상대방을 판단해가고 있다. 패션 또한 이런 몹쓸 현대화의 희생양인 셈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사람들은 계속해서 많은 돈과 시간을 패션에 쏟아부을 것이며, 그로 인한 권력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그런 사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자기만족적 욕구충족을 위해서만 패션을 활용하는 사람이 진정한 패셔니스트로 인정받아야 될 것이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시대가 도래할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핵전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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