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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말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하였지만 또 그리 ‘함부로’ 말하지는 못하고 있는 지지부진한 시리즈의 일곱 번째 이야기. 변함없이 너무 진지한 얘기라 봐주시는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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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며)

태희: 저기..... 여기가 무릎이 닿기도 전에 모든 걸 꿰뚫어본다는.......

문성: 네?

태희: 아. 죄송합니다. 막상 적어보니 하나도 안 웃기네요. 저예요. 오래간에 왔어요.

문성: 어, 왔어요? 이야. 이거 얼마만이에요? 기다렸어요!

태희: 네……. 그동안 잘 지내셨죠?

문성: 그럼요. 그런데 왜 이렇게 간만에 나타나신 거예요. 혹 지난 번에 제가 드린 숙제 때문인가요?

태희: ……

문성: 그런 모양이네요. 음…… 이거 왠지 미안한데요?

태희: 흥, 너무 어려웠다구요.

문성: 미안해요. 그래도 답이 나왔으니까 이렇게 오신 거겠죠? 자아. 말씀해주세요. 태희씨가 정말 좋아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되고 싶은 것이 뭔지 말이에요.

태희: 그게 말이죠. 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더라구요.

문성: 물론이죠. 절대 하루 이틀 생각해서 나올 답은 아니죠.

태희: 그래서 말인데요. 아…… 이거 정말 어떻게 말해야 될지.

문성: 저기, 태희씨. 너무 질질 끄시면 사람들 다 뒤로가기 버튼 누른단 말예요. 요즘 사람들 성질이 얼마나 급한데요. 속도감 있는 전개를 위해서 어서 말해봐요. 아니, 것보다 뭐가 그리 말하기 어려운 건데요.

태희: 말하기 부끄러워서 그래요. 실망하실까봐요. 아니면 된장녀 같다고 막 꾸짖으실까봐요. 그래도, 말씀 드려야겠죠?

문성: 괜찮아요. 구박 안 할 테니 말해봐요.

태희: 사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요, 제가 정말정말 하기 원하는 거는요, 그냥 현재를 즐기는 거예요. 여러 가지 보기를 주셨지만 그 중에서 어떤 모습도 꼭 되고 싶고 그러진 않아요. 박근혜든 김주하든 윤송이든 다 멋있어 보이고 본받고 싶기는 한데요. 솔직히 그 사람들처럼 어떤 대단한 것을 이루기 위해 고생 고생하면서,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면서 아등바등 살고 싶지는 않거든요.

지금의 이 시기가 제게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아요. 몇 년 있으면 피부도 거칠해지고 주름도 엄청 늘어 나이든 티도 많이 날 테니 지금처럼 예쁘다는 소리 듣기도 힘들겠죠? 젊음이란 게 영원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그래요. 지금 이 젊은 날을 몽땅 들이붓고 투자할 엄두가 안 나요. 더군다나 실패하면 어떡해요? 꽃같은 이십 대를 잘 놀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바쳤는데 그 결과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으면 어떡해요? 그건 너무 끔찍한 형벌이잖아요. 평생을 후회할 일 아닌가요?

지난 시간에 ‘꿈에 대한 대가를 치르라’라고 하셨잖아요. 생각해봤는데 전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가끔은 미래가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지만 미래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 저를 더 두렵게 하는 것 같아요.

문성: 음.....이해가요.

태희: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좀 있다가 확 안색을 확 바꾸시고 갈굼 개시하실 거죠? 어쨌든 말 나온 김에 계속 얘기해볼게요.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전 지금의 제 모습이 너무 좋아요. 만족스러워요. 친구들 자주 만나서 재밌게 놀고 집에 오면 좋아하는 드라마도 보고 가끔씩 큰 돈 써서 비싼 옷이나 백, 화장품도 질러보고 주말엔 여행도 가끔씩 다니고 주위에 남자들도 적잖게 있고…… 영원히 이렇게 살 순 없겠지만 굳이 미래의 무언가를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것 같아요. 이런 생각,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시죠?

문성: 우선 정리를 하자면, 첫째,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가 두렵고, 둘째,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가 아깝다. 대략 맞나요?

태희: 정리 하나는 잘 하시네요.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 정말 별로죠? 제가 2류, 아니, 3류 같죠?

문성: 절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태희씨 생각은 그 하나가 또 나름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가치관이에요.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까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잖아요. 보헤미안이 연상되기도 하는데요?

태희: 그런가요? 그럼 이걸로 된 건가요? 전 혼날 거 각오하고 왔는데, 여차하면 한 바탕 싸우고 당신 관절 몇 개 꺾어놓고 갈 생각도 했단 말예요. 이렇게 끝나면 왠지 시시한데…….

문성: 이걸로 끝날 리가 있겠습니까? 조금 더 이야기 해야죠.

태희: ……그럼 그렇지.

문성: 자, 들어봐요. 좀 전에 말한 대로 전 태희씨 생각 존중합니다. 충분히 공감가구요. 저도 두렵거든요. 저도 아깝거든요. 저 또한 인생을 즐기는 다른 방법들, 이를테면 악기를 배운다던가 스포츠를 배운다던가 해서 신나게 즐기고, 퇴근하고 집에 가면 편하게 누워서 좋아하는 피자조각 질겅여가며 6시부터 새벽1시까지 TV 프로그램 몽땅 챙겨보고 싶기도 해요. 참, 저 옛날에는 컴퓨터 게임 참 많이 했거든요. 주말에 15시간씩 한 적도 있었어요. 손 끊은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이라고 해서 못 할 건 없겠죠.

태희: 그치만, 지금은 그렇게 안 살잖아요?

문성: 그렇죠. 하지만 그건 제가 숙제로 내 드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의 대답이 태희씨와 달랐기 때문이에요. 전 제가 낸 대답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고, 태희씨는 태희씨의 답을 따르면 되는 거잖아요.

태희: 그런...... 것인가요?

문성: 그렇죠. 그리고 인생 너무 복잡하게 사는 거, 안 좋아요. 사람은 이것저것 알면 알수록, 생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진지하고 우울하고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삶을 살기 마련이잖아요. 그냥 육체가 원하는 대로, 내 감성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도 절대 나쁘지 않단 말이죠. 그런 사람들이 외려 더 밝고 긍정적으로 살잖아요.

태희: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저희 과 친구 중에도 학생운동이니 뭐니 해서 매일 사회과학책 쌓아놓고 보는 애 있거든요. 걔는 아는 것은 정말 많은데요, 말만 하면 부정적인 얘기뿐이에요. 세상이 뒤틀렸다느니 너희들은 다 인생 엉망으로 살고 있는 거라느니…… 아무도 대꾸나 반박을 못하긴 하지만 다들 걔 피해요. 같이 있는 게 싫거든요.

문성: 좋은 예네요. 반대로 무턱대고 밝은 친구들 있죠?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 말예요. 그 친구들 고민이나 진지한 생각같은 것 많이 안 해요. 남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 얘기할 땐 ‘뭐,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 그런 답답한 얘기 관두고 신나게 놀자. 자. 건배! 원샷!!’하며 껄껄껄 웃어 넘긴단 말예요. 저처럼 만날 고민을 달고 다니는 사람으로선 부러울 정도예요.

태희: 재미있네요. 인생에 대해 고민을 더 많이 하고 생각을 더 많이 한 사람이 당연히 더 행복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시니까요.

문성: 네. 철학자 중에서 행복하게 산 사람 있을 것 같아요? 평생 고민만 하다가 죽은 사람이 대부분이죠. 그 사람들 초상화나 사진 찍은 것 보세요. 얼마나 인상들이 안 좋은지.

태희: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면 알수록 더 괴로워지는 인생이라……

문성: 하핫. 좋은 결론이네요.

태희: 그래도, 뭔가 저한테 해줄 얘기는 있으시죠? 충고나 조언 같은 거 말예요. 그런 거 안 할 사람 아니잖아, 당신.

문성: 은근슬쩍 말 놓으시네. 아무튼 맞아요.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태희: 뭔데요?

문성: 태희씨 좋으실 대로 하시되, 그러니까 지금 하고 싶은 것 후회 없이 마음껏 하고 진지한 상념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도 얻긴 하되.....

태희: 하되?

문성: 이건 다음 편에 얘기해드릴게요.

태희: 엥?

문성: 그러니까, 다음 편에요.

태희: ….. 뭐예요. 8편까지 간 다는 말씀이세요? 이거 인기 드라마 연장방송하는 것도 아니고, 인기도 없는 시리즈 왜 이렇게 질질 끌어요?

문성: 요까지 쓰는데 한 시간 넘게 걸렸단 말예요. 저도 좀 편하게 삽시다.

태희: 와, 정말 너무하다. 이렇게 쓸데없는 대사 몇 줄 더 넣는 것도 분량 채우기 위해서죠?

문성: 정답. 완전 똑똑하셔.

태희: 좋아요. 참을게요. 대신 다음 편에 좋은 얘기 안 해주시면, 알아서 하세요. 홈페이지 포맷 시켜버릴 지도 몰라요.

문성: 아, 그건 좀 그런데……


(8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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