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자의 패션이란
1편을 군입대로 끝을 맺었으니 오늘은 복학생 얘기로 시작해볼까한다.
다들 아시다시피 복학생은 대부분 옷을 못 입는다. ‘복학생 패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옷차림은 촌스럽고 오래된 티가 나며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 흐름에 저항하고자 하는 몇몇 복학생들이 자신만은 예외임을 주장하며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보기도 하지만 ‘복학생 패션’의 굴레는 기실 너무나 강력하고 그 범주는 실로 방대하여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다시 말해 복학생은 군대 가기 전에 입었던 물 빠진 청바지와 늘어난 라운드 티를 입고 학교에 가면 ‘어휴. 촌스러워. 복학생 티 내네, 정말’ 이란 소리를 듣기 마련이고, 머리를 짙은 브라운으로 염색한 후 샤기컷을 치고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고가도 ‘어휴, 촌스러워. 복학생 티 내고 있네, 정말’이란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이러니 여자들은 이십 대 초 중반 가장 아름답게 빛나지만 남자들은 그 나이 때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게 된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복학생의 멍에를 내려놓고 졸업생, 회사원이 되면 크게 달라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복학생 패션’에서 ‘아저씨 패션’으로 곧장 전이되기 때문이다. 고로 아무리 여자친구가 도와줘도, 새로 장만한 신용카드를 백화점에서 마구 긁어대도 ‘옷 잘 입는다’는 소리는 학생회관 매점 앞 처음 보는 여자아이의 ‘오빠. 사실 오빠를 너무너무 간절히 사모해왔어요. 제발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라는 고백보다 더 듣기 힘들다. 그것이 대한민국 남성 패션의 한계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사람들을 분류하는 수많은 기준 중 하나겠지만, 패션에 관한 한 남자들은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양분될 수 있다. 요즘에는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패션이나 그루밍 쪽에 관심이 많아져서 어떤 이들은 나처럼 스무 살 때부터 패션잡지를 사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평생 자기 손으로 옷 한 번 골라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의 부족은 시간의 흐름과 공진하여 우리를 패션계의 안드로메다 성운으로 잔잔히 모셔가는 것이다.
반대로 옷을 정말 잘 입는 사람들이 있다. 싼 옷을 입어도, 옷이 많지 않아도 입었을 때 참 잘 어울린다, 제대로 입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 말이다. 자기 스타일을 잘 찾았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날 때부터 그렇게 입고 다녔을까. 아니다. 걔네들도 태어날 땐 발가벗고 나왔다. 패션의 세계라는 것은 철저히 귀납적으로 추구해야 할 진리인지라 스스로 경험해보면서 깨닫지 않으면 절대 그 참된 이치를 득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은 남자들은 관심부족으로 인해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다 하더라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 스무 살 때나 서른 살 때나 수준이 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여자들은 그나마 좀 낫다. 스무 살, 스물 한 살 때 다소간의 실수와 실패를 거쳐 이십 대 초 중반에 접어들면 대략 감을 잡기 때문이다. 웬만한 여자들은 대부분 스물 다섯 되기 전에 생머리, 단발머리, 파마머리, 커트 머리 등을 한 번씩은 다 경험해보며 가끔은 과감한, 혹은 멍청한 시도도 해보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얼굴과 몸매에는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를 깨닫게 되고 그 이후에는 그 스타일에 약간의 변형을 꾀하거나 이를 강화/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패션라이프를 구가해 나가는 것이다. 고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여자들은 대부분 제법 괜찮은 수준의 패션감각을 보여주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어떤가. 2년, 혹은 3년 가까이 군복만 입고 다니고 속옷은 아래 위로 TBM(The Brave Man) 한 브랜드로 버텨왔지 않은가. 말인 즉슨 강제적으로 패션에 대한 관심을 끊어야만 했다는 소리다. 옷이나 구두 따위는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깨끗하게 지운 채 몇 년을 살아가는 것인데, 제대한다고, 혹은 졸업해서 돈이 생긴다고 500위가 10위 권 내로 진입할 리가 만무하다. 그나마 여자친구나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벌 걸쳐보기도 하지만 빨래도 귀찮고 다림질도 귀찮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옷이나 저 옷이나 그게 그거 같고 다 똑같아 보인다. 옷에 돈 쓰는 인간들이 이해가 안 간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옷을 잘 입고 다닌다면 패션으로서는 정말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아까 복학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패션에 신경을 쓰느냐 아니냐가 패션의 수준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좀 더 냉혹하게 말하자면,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돈 더 투자하여 촌스러운 옷을 몇 벌 더 가지게 될 뿐이라는 거다.
10년 전, HOT의 캔디가 유행할 때 걔네들이 입고 나오는 빨간색 벙거지 모자와 벙어리 장갑을 끼고 다니던 형이 있었다. 그 형, 나중에는 신해철을 따라 두꺼운 은반지만 양 손에 여덟 개 정도 끼고 다니더라. 분명 패션에 관심이 있고 투자도 적잖게 한 케이스다. 하지만 결과는 많은 이들에게 웃음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하기에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앎'의 문제다. 많은 남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아예 잘못 알고 있다. 이것이 더 큰 문제다. 예를 들어 청바지 위에 청자켓을 입는다거나 수트에 흰 양말을 신는 것은 홍록기나 노홍철 정도는 돼야 시도해 봄직한 코디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렇게 한다. 수트 바지에 청바지용 벨트를 멘다거나(혹은 반대로 청바지에 정장 벨트를 멘다거나) 드레스셔츠를 밖으로 빼서 입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낯부끄러워할 일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한다. 드리클로나 데오드란트 처리 없이 블루셔츠를 입어 겨드랑이가 흠뻑 젖고 입냄새와 비듬을 들이대는 것은 여자들로서는 식겁할 일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한다.
그들이 사회에 무슨 억한 감정이 있어서일까. 사회전복이라도 꾀한단 말인가. 아니다, 그냥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았거나 물어봤는데 잘못 답해줬거나, 누군가 그렇게 입지말라고 지적해줘야 하는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분 상할까봐. 아니면 자기도 잘 모르고 확신이 없으니까. 혹은 말해줘도 전혀 안 들으니까.
나 역시 지금까지 입었던 옷 중에서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토마토처럼 발갛게 달아오르는 놈들이 몇몇 있다. 그렇지만 그 때는 몰랐기 때문에 좋다고 닳도록, 늘어나도록 입었다. 모르는 놈이 철인 3종 경기 풀코스로 신청한다는 옛 격언이 있잖은가. 나를 보고 일컫는 말이다.
또한 꼭 이렇게 관심은 있으되 아는 건 없는 남자들이 TV에서 구준표가 굵은 파마머리로 나오면 아, 저게 트렌드인가보다, 하며 사진 뽑아서 동네 미용실로 달려가 아줌마 전용 뽀글이 파마를 하고 나오며, 샤이니가 스키니진을 흰색 스니커즈 안에 구겨 넣고 나오면 아 저게 유행인가보다 하며 오래 신어 누래진 나이키 운동화에 십년 된 잠뱅이 청바지를 구겨 넣고 거리를 활개한다. 물론 이건 내 얘기는 아니다. 정말.
남자들이 주로 여자들이 골라 준 옷을 입는다는 것도 같은 논리에서 생각해 볼 때 하나의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남자들이 옷을 못 입는다는 것은 여자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다. 그렇지? 그런데 패션을 모르는 남자나 자신이 없는 남자들, 전혀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남자들은 자기 혼자 고르기보단 가족이나 여자친구, 아내가 사주는 옷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 그렇다면 뭐야. 여자들은 저마다 자기 기준대로,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대로 남자들을 입히지만 결국 자기 눈에만 좋을 뿐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 역시 수준 이하란 소리 아닌가.
자기 옷은 그렇게 멋들어지게 잘 챙겨 입는 여자들이지만 남자패션의 정석을 전혀 모르거나 당사자와 객관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패션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예쁘다고 입혀놓은 빤짝이는 은갈치 원버튼 슬림수트가 전자의 대표적인 예이며, 예쁘다고 입혀놓은 얼굴 크고 시커먼 아저씨의 핫핑크 니트 가디건이 후자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니 답은 뚜렷하다. 괜찮은 패션감각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관심을 가지긴 가지되 제대로 알아야 하며 주위 사람들 말에 휩쓸리기 보다는 정석대로 가면서 자기 스타일을 차츰차츰 찾아가야 한다. 그래야 기본도 튼튼하고 개성있으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스타일이 움터 나오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GQ도 좋고 에스콰이어도 좋으니 마구 읽어봐야 한다. 주위에 물어보진 말고. 그 사람도 어차피 모른다. 경험상 잡지보다는 제대로 쓴 패션서적이 낫긴하다. 물론 읽어봐도 내가 아직 요 모양 요 꼴인 걸 보면 효과는 의심이 되긴 하다만 말이다.
P.S 글의 신빙성이나 신뢰성은 저자의 인생이 증명하는 것일텐데 아직 내 꼬라지는 패션에 대한 글을 쓰기엔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굳이 업데이트 해본다.
1편을 군입대로 끝을 맺었으니 오늘은 복학생 얘기로 시작해볼까한다.
다들 아시다시피 복학생은 대부분 옷을 못 입는다. ‘복학생 패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옷차림은 촌스럽고 오래된 티가 나며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 흐름에 저항하고자 하는 몇몇 복학생들이 자신만은 예외임을 주장하며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보기도 하지만 ‘복학생 패션’의 굴레는 기실 너무나 강력하고 그 범주는 실로 방대하여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다시 말해 복학생은 군대 가기 전에 입었던 물 빠진 청바지와 늘어난 라운드 티를 입고 학교에 가면 ‘어휴. 촌스러워. 복학생 티 내네, 정말’ 이란 소리를 듣기 마련이고, 머리를 짙은 브라운으로 염색한 후 샤기컷을 치고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고가도 ‘어휴, 촌스러워. 복학생 티 내고 있네, 정말’이란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이러니 여자들은 이십 대 초 중반 가장 아름답게 빛나지만 남자들은 그 나이 때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게 된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복학생의 멍에를 내려놓고 졸업생, 회사원이 되면 크게 달라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복학생 패션’에서 ‘아저씨 패션’으로 곧장 전이되기 때문이다. 고로 아무리 여자친구가 도와줘도, 새로 장만한 신용카드를 백화점에서 마구 긁어대도 ‘옷 잘 입는다’는 소리는 학생회관 매점 앞 처음 보는 여자아이의 ‘오빠. 사실 오빠를 너무너무 간절히 사모해왔어요. 제발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라는 고백보다 더 듣기 힘들다. 그것이 대한민국 남성 패션의 한계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사람들을 분류하는 수많은 기준 중 하나겠지만, 패션에 관한 한 남자들은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양분될 수 있다. 요즘에는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패션이나 그루밍 쪽에 관심이 많아져서 어떤 이들은 나처럼 스무 살 때부터 패션잡지를 사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평생 자기 손으로 옷 한 번 골라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의 부족은 시간의 흐름과 공진하여 우리를 패션계의 안드로메다 성운으로 잔잔히 모셔가는 것이다.
반대로 옷을 정말 잘 입는 사람들이 있다. 싼 옷을 입어도, 옷이 많지 않아도 입었을 때 참 잘 어울린다, 제대로 입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 말이다. 자기 스타일을 잘 찾았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날 때부터 그렇게 입고 다녔을까. 아니다. 걔네들도 태어날 땐 발가벗고 나왔다. 패션의 세계라는 것은 철저히 귀납적으로 추구해야 할 진리인지라 스스로 경험해보면서 깨닫지 않으면 절대 그 참된 이치를 득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은 남자들은 관심부족으로 인해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다 하더라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 스무 살 때나 서른 살 때나 수준이 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여자들은 그나마 좀 낫다. 스무 살, 스물 한 살 때 다소간의 실수와 실패를 거쳐 이십 대 초 중반에 접어들면 대략 감을 잡기 때문이다. 웬만한 여자들은 대부분 스물 다섯 되기 전에 생머리, 단발머리, 파마머리, 커트 머리 등을 한 번씩은 다 경험해보며 가끔은 과감한, 혹은 멍청한 시도도 해보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얼굴과 몸매에는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를 깨닫게 되고 그 이후에는 그 스타일에 약간의 변형을 꾀하거나 이를 강화/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패션라이프를 구가해 나가는 것이다. 고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여자들은 대부분 제법 괜찮은 수준의 패션감각을 보여주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어떤가. 2년, 혹은 3년 가까이 군복만 입고 다니고 속옷은 아래 위로 TBM(The Brave Man) 한 브랜드로 버텨왔지 않은가. 말인 즉슨 강제적으로 패션에 대한 관심을 끊어야만 했다는 소리다. 옷이나 구두 따위는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깨끗하게 지운 채 몇 년을 살아가는 것인데, 제대한다고, 혹은 졸업해서 돈이 생긴다고 500위가 10위 권 내로 진입할 리가 만무하다. 그나마 여자친구나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벌 걸쳐보기도 하지만 빨래도 귀찮고 다림질도 귀찮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옷이나 저 옷이나 그게 그거 같고 다 똑같아 보인다. 옷에 돈 쓰는 인간들이 이해가 안 간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옷을 잘 입고 다닌다면 패션으로서는 정말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아까 복학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패션에 신경을 쓰느냐 아니냐가 패션의 수준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좀 더 냉혹하게 말하자면,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돈 더 투자하여 촌스러운 옷을 몇 벌 더 가지게 될 뿐이라는 거다.
10년 전, HOT의 캔디가 유행할 때 걔네들이 입고 나오는 빨간색 벙거지 모자와 벙어리 장갑을 끼고 다니던 형이 있었다. 그 형, 나중에는 신해철을 따라 두꺼운 은반지만 양 손에 여덟 개 정도 끼고 다니더라. 분명 패션에 관심이 있고 투자도 적잖게 한 케이스다. 하지만 결과는 많은 이들에게 웃음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하기에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앎'의 문제다. 많은 남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아예 잘못 알고 있다. 이것이 더 큰 문제다. 예를 들어 청바지 위에 청자켓을 입는다거나 수트에 흰 양말을 신는 것은 홍록기나 노홍철 정도는 돼야 시도해 봄직한 코디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렇게 한다. 수트 바지에 청바지용 벨트를 멘다거나(혹은 반대로 청바지에 정장 벨트를 멘다거나) 드레스셔츠를 밖으로 빼서 입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낯부끄러워할 일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한다. 드리클로나 데오드란트 처리 없이 블루셔츠를 입어 겨드랑이가 흠뻑 젖고 입냄새와 비듬을 들이대는 것은 여자들로서는 식겁할 일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게 한다.
그들이 사회에 무슨 억한 감정이 있어서일까. 사회전복이라도 꾀한단 말인가. 아니다, 그냥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았거나 물어봤는데 잘못 답해줬거나, 누군가 그렇게 입지말라고 지적해줘야 하는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분 상할까봐. 아니면 자기도 잘 모르고 확신이 없으니까. 혹은 말해줘도 전혀 안 들으니까.
나 역시 지금까지 입었던 옷 중에서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토마토처럼 발갛게 달아오르는 놈들이 몇몇 있다. 그렇지만 그 때는 몰랐기 때문에 좋다고 닳도록, 늘어나도록 입었다. 모르는 놈이 철인 3종 경기 풀코스로 신청한다는 옛 격언이 있잖은가. 나를 보고 일컫는 말이다.
또한 꼭 이렇게 관심은 있으되 아는 건 없는 남자들이 TV에서 구준표가 굵은 파마머리로 나오면 아, 저게 트렌드인가보다, 하며 사진 뽑아서 동네 미용실로 달려가 아줌마 전용 뽀글이 파마를 하고 나오며, 샤이니가 스키니진을 흰색 스니커즈 안에 구겨 넣고 나오면 아 저게 유행인가보다 하며 오래 신어 누래진 나이키 운동화에 십년 된 잠뱅이 청바지를 구겨 넣고 거리를 활개한다. 물론 이건 내 얘기는 아니다. 정말.
남자들이 주로 여자들이 골라 준 옷을 입는다는 것도 같은 논리에서 생각해 볼 때 하나의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남자들이 옷을 못 입는다는 것은 여자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다. 그렇지? 그런데 패션을 모르는 남자나 자신이 없는 남자들, 전혀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남자들은 자기 혼자 고르기보단 가족이나 여자친구, 아내가 사주는 옷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 그렇다면 뭐야. 여자들은 저마다 자기 기준대로,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대로 남자들을 입히지만 결국 자기 눈에만 좋을 뿐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 역시 수준 이하란 소리 아닌가.
자기 옷은 그렇게 멋들어지게 잘 챙겨 입는 여자들이지만 남자패션의 정석을 전혀 모르거나 당사자와 객관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패션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예쁘다고 입혀놓은 빤짝이는 은갈치 원버튼 슬림수트가 전자의 대표적인 예이며, 예쁘다고 입혀놓은 얼굴 크고 시커먼 아저씨의 핫핑크 니트 가디건이 후자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니 답은 뚜렷하다. 괜찮은 패션감각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관심을 가지긴 가지되 제대로 알아야 하며 주위 사람들 말에 휩쓸리기 보다는 정석대로 가면서 자기 스타일을 차츰차츰 찾아가야 한다. 그래야 기본도 튼튼하고 개성있으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스타일이 움터 나오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GQ도 좋고 에스콰이어도 좋으니 마구 읽어봐야 한다. 주위에 물어보진 말고. 그 사람도 어차피 모른다. 경험상 잡지보다는 제대로 쓴 패션서적이 낫긴하다. 물론 읽어봐도 내가 아직 요 모양 요 꼴인 걸 보면 효과는 의심이 되긴 하다만 말이다.
P.S 글의 신빙성이나 신뢰성은 저자의 인생이 증명하는 것일텐데 아직 내 꼬라지는 패션에 대한 글을 쓰기엔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래도 굳이 업데이트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