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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술 마시는 것은 죄인가?

문★성 2008.11.16 23:46 조회 수 : 141

“술 마시는 것을 죄라고 생각해?”

여름쯤이었나, 난데 없이 날아온 질문 하나에 며칠을 고심해야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도 한 번 고민했었던 질문인데, 그 때는 어려서인지, 지식이 모자라서인지 결론을 못 내리고 그냥 주위 사람들의 말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생각하다가 나름의 대답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선 질문했던 분에게 쪼르르 달려가 답안을 제출했는데, 반응은 예상 외로 썩 좋지 않았다. 바라고 원했던 대답이 아니었기도 했겠지만 일단 타이밍이 늦어서였을 것이다. 원래 궁금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 사그라지기 마련이니 자연스레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얼마 전 다시 한 번 이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좀 갑작스럽긴 했지만 몇 달 전 가지고 있었던 기억을 얼른 소환해서 주섬주섬 답변을 하였는데, 두서가 없었던 터라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이번 참에 홈페이지에 한 번 정리해서 옮겨볼까 한다. 아마 여기 들어오시는 분들께서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는 아니겠지만, 어떠한 주제에 대해 내 생각과 논리를 정리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하기에 흥행참패를 뻔히 내다보며 영화를 만드는 3류감독의 심정으로 글을 써보기로 한다.

귀무가설: 술 마시는 것은 죄이다.

위의 가설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명제부터 분석해야 하는데 ‘술 마시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 일단 ‘죄’라는 단어에서부터 물고 늘어져보기로 하자. 물론 여기서 말하는 ‘죄’는 법적 개념은 아니다. 법대로 따져본 다면 술 마시는 것은 이러쿵저러쿵 말할 것 없이 대한민국 어느 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금주령이 시행되었던 20세기 초 미국이라면 또 모를까, 눈치들 채셨겠지만 이 글에서 다루는 것은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죄이다.

당연히 교회에서는 술 마시는 것을 죄악시 하고 있지 않느냐, 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이게 좀 애매모호하긴 하다. 사실 성경에는 ‘술 마시는 것 = 죄’라고 명시된 구절은 없다. 십계명에 들어가 있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사람에 따라 어떤 사람은 문제가 없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엄연히 죄에 속한다고 보는 등 생각이 분분한데, 다소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듣기로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음주 자체를 그리 문제시 삼지 않는다고 하고, 유독 우리 나라를 포함한 몇몇 나라에서만 담배나 마약 하는 것을 포함하여 멀리 해야 할 죄 중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기원을 찾아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옛날 선교사들이 처음 한국에서 천주교, 개신교를 전할 때 워낙 당시 사람들이 술 문화에 쩔어 있었고 한 번 마셨다 하면 인사불성이 되기 십상이라 도저히 이를 통제하지 않을 수 없어 술 마시지 마라, 그건 죄악이다, 라 가르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 가르침과 전통에 따르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따를 수도 있는데, 문제는 성경에서는 포도주를 마시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나오는 포도주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행한 첫 번째 기사에 등장하는 포도주는 애석하지만 델몬트 포도쥬스도 아니고 웰치스도 아니고 술이 맞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마신 술을 왜 무조건 나쁘다고 보느냐는 항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 논리를 내세우며 술은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여럿 봐 왔다.

하지만 성경을 잘 찾아보면 술에 대해 경고하는 구절이 분명히 있다.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로마서 13:13)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 5:18)

즉, 술 마시는 것 자체를 죄악시 하지는 않지만 술에 취하는 것은 분명한 죄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술에 취하는 것은 음란이나 방탕한 문화로 이어지기 쉽고 이는 분명히 경계시되는 죄악이 맞다. 술 취한 뒤 도서관 가는 사람 있던가? 단란주점에서 놀고 불륜을 저지르고 치고 받고 싸우고 강간하고 살인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술 취한 사람들 아니던가. 다시 말해 술에 취하는 것은 분명 죄가 맞으며, 또 다른 죄로 분명히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술 취하는 것  = 죄
        술 마시는 것  =??

술에 취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냥 술을 마시는 것은 어떨까? 예컨대 저녁에 와인 한 잔으로 목을 적신다던가, 운동 후 맥주 한 캔으로 갈증을 푼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런 것 또한 죄로 볼 수 있을까? 이는 아래의 논리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책이나 설교 등에 영향을 받긴 하였겠지만 어디에서 따오지 않은 내 생각이다.  

사람의 행위를 평가할 때는 그 행위 자체만 보기보다는 행위의 의도와 결과를 모두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예전에 군대 있을 때 알고 지낸 어떤 분이 좋은 거짓말이든 나쁜 거짓말이든 거짓말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죄라고 주장하여 조금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는데, 당시에 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좋은 거짓말은 나쁘지 않다라 반박했었다. 실패해서 풀이 죽은 아이에게 넌 잘 한 거다. 넌 똑똑하고 성실하니까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다라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여, 아이로 하여금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했다고 치자. 행위는 거짓말이 맞다만 그 의도와 결과는 분명 선한 쪽이다. 애써 네 머리는 순도 99%의 돌로 이루어진 것 같구나, 그 머리면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나가도 되겠구나, 하며 솔직히 말해서 아이로 하여금 절망의 심연 속에 익사케 한다면, 그게 더 문제가 아니겠냐는 거다. 행위에 대해 판단할 때는 무슨 의도로 그 일을 하였으며, 그 결과가 어떠했냐를 두루 감찰해야 한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좋은 의도로 사용하셨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이를 통해 곤란에 처한 사람을 돕고, 공생애의 시작을 알리셨으며 최후의 만찬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기념하게 하고 성만찬의 예식을 제정하는데 사용하셨다. 취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가? 취하려고 마시지 않는가? (행위의 의도) 취하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도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에 결국은 취해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 – 죄가 분명한 – 을 하게끔 되지 않는가? (행위의 결과) 이런 면에 있어서 취하기 위해 마시거나, 취하도록 마시는 것은 분명 죄이며, 반면에 저녁에 잠깐 기분 좋고자 와인 한 잔, 맥주 한 캔 마시고, 그 뒤를 이은 행동이 전혀 문제가 없었다면 죄가 아니다라고 볼 수 있다. 그것마저도 죄의 범주에 속한다면, 기존의 죄악시 되지 않는 인간의 행위 중에서 죄로 편입될 행동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질 것이다만 여기서 이 주제까지는 굳이 다루지는 않겠다. (가뜩이나 글 엄청 길어지고 있으니)

두 번째 논리는, 그래도 술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도식을 생각해보자. 오른쪽은 유죄의 영역이고, 왼쪽은 무죄의 영역이다. 인간의 행동이나 생각은 이 영역 중 어딘가에 위치하게 된다.




술 마시는 것은 아까 말한 것처럼 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죄로 인식되는 경우는 취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따져보자. 취하려고 마시는 사람들은 분명 취한다. 그리고 취하지 않으려고 마시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취하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전반적으로 취하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도식은 아래와 같이 수정될 수 있다.




숫자가 없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위의 ‘술의 세계’ 중 20%는 취하지 않는 무죄의 범위에, 80%는 유죄의 범위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숫자는 내 마음대로다. 그런 다음에 당신이 이 술의 세계에 빠져든다고 보자.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든,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든, 풀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든, 바에서 양주를 마시든,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든 상관없이 아래와 같이 술의 세계에 첫발을 들이민 것이다.




자. 여전히 당신은 무죄의 Area에 속해 있긴 하다. 하지만 어떤가. 상대적으로 유죄 라인에 근접해 있지 않은가? 아슬아슬하고 간당간당하다. 게다가 언제든지 오른쪽으로 넘어갈 가능성 또한 있다. 와인 한 잔으로는 안 취하겠지만 기분 좋아서 석 잔 더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취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다음엔? 그냥 엎어져 자면 그만이겠지만 폭력성, 음란성, 도박성 등 인간의 악한 속성이 대폭 증폭될 수 있다. 죄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다분히 문성식 논리긴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는 가능하다면 술은 안 마시는 게 어쨌거나 좋다. 안전하다. 전라남도 보성에서 놀아도 되는데 왜 굳이 휴전선 근방 비무장지대에서 캠핑을 한다는 말인가. 그러다가 자칫하면 지뢰밟거나 월북해버리면 어쩌려고 말이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저 20%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절대 조금도 오른쪽으로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사람이나, 자신의 경우는 같은 술의 세계라도 왼쪽이 99.9%고 오른쪽이 0.1%라 안전하다고 보는 사람일 경우에는 크게 상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선험적으로든 경험적으로든 쉽사리 알코올의 힘에 휩쓸려 자기도 모르는 새 월동(越東)한 적이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술 마시는 것 = 죄’의 명제가 참이 아니다 하더라도 이를 기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잠언 23:31)

내 경우는 술 마시는 자체는 죄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는 논리로 근 십 년을 버텨왔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수도 없이 오른쪽으로 넘어갔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취한 적도 제법 있었고 그리함으로써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거나, 스스로에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가능한 저 Area에 안 들어가려고 부던히 노력하고 있다.  

사실, 죄의 문제를 떠나서도 술에 취한 다음 날만큼 기분 나쁜 게 또 있던가? 뒤통수의 쓰라린 아픔과 물만 마셔도 토할 것만 같은 메스꺼움. 입에서 하루 종일 풍기는 악취. 돌 하나 삼킨 듯 지근대는 배. 1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얼굴. 내 인생에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들이다. 술을 마시는 날이야 앞으로도 가끔씩은 있겠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땀 흘려 자전거 탄 다음 시원하게 맥주 한 모금 들이키는 즐거움을 버리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그래도 다시는, 술에 취하고 싶지 않다. 죄의 Area에 나를 쑤셔놓고 싶지는 않다. 분명한 죄의 영역에 구태여 소중한 나를 착불로 보낼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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