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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각종 자기계발서를 지겹도록 읽고 있다.

‘지겹도록’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냥 ‘지겹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재작년 부터인가 가볍게 시작한 것이 어느새 깊이 맛 들이게 되어

사무엘 스마일즈, 벤자민 프랭클린, 데일 카네기, 나폴레옹 힐, 스티븐 코비,

브라이언 트레이시, 하이럼 스미스, 앤소니 라빈스 등 대가들의 책을 두루 만나게 된 후

중가와 소가들의 책들도 신나게 접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정체된 상태이다.

실컷 질주하다 막다른 골목길에 접어들어 회색 빛의 크고 두꺼운 담을 마주하게 된 기분이랄까.

책을 읽는 만큼 자기계발이 진전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뚜렷하게 체감되는 문제는 책들끼리 내용이 상당히 겹치는데다가

개중에도 실제로 써먹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내용들이 허다하여 100을 읽어도

남는게 10도 채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1편에서도 비슷한 불만을 한 번 토로하기도 했었는데  ‘그 책이 그 책’, 똑같은 주장과 똑같은 예제,

똑같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책들이 너무도 많고, 그런 걸 억지로 읽는다고 썩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더 답답해져만 가는 기분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한 권을 통틀어 한 두 개 정도 자극과 깨달음을 받으면 그것만으로도

박수를 치며 잘 읽었다 만족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만큼 독특한 대안, 특별한 답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예로 들어보자. 인간의 긍정성이란 소재는 자기 계발에 있어 그 어떤 분야에

쓰여도 전혀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야기 거리다.

꿈을 이루는 것, 자기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것, 계획적으로 사는 것,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또 좋은 배우자가 되는 것 등등 인생과 관련된 각종 분야의 자기계발에 있어

어디에 끼워 넣든 딱 들어맞게 맞아 떨어지는 소재가 긍정성이다.

물론 좋은 말이긴 하다. 긍정적인 사람이 자기 인생에서 얻는 이득이란 분명히

부정적인 사람들보다는 월등히 많을 것이며 이는 자기계발서들이 여기저기서 애써 긁어 모은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증명되는 바 아니던가.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긍정성을

가지라는 것인지, 그들이 내놓은 해법은 주제의 당위성에 비해 왠지 맥이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예컨대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라, 무조건 긍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여라,

긍정적인 말을 버릇처럼 하라 등등의 답이 주어지고 우리는 고개 끄덕이며 인정하고

공감하게 되지만 막상 책을 덮고 난 뒤 딱히 더 긍정적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구체적인 방법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집안이 폭삭 주저앉고 아내는 바람을 펴대며

직장에서는 구조조정 일 순위로 자랑스럽게 인구에 회자되고, 자식들은 공부는 뒷전에

못된 친구들하고만 어울려 다니는 상황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란 말인가.

밥도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고 자리에 누우면 각종 근심에 한숨이 연발로 기어 나오는

현실인데, 대체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인가. 하지만 많은 책들이 그저 그렇게 하라고

앵앵거리고 있을 뿐이다. 두꺼운 하드타입의 표지와 글자가 차지한 영역보다 더 커 보이는 넉넉한 여백,

글 한 줄은 충분히 더 들어갈만한 줄 간격, 다섯 살 용 동화책에나 어울릴법한 큼직한 글씨와

유치한 그림들로 말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보이는 목차의 화려함과 서평에 속아

이런 책을 구입하게 되면 읽다가 확 잡아 찢고 싶은 분노심 까지 든다.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 따위의 주장을 펼치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나마 자기계발서의 고전, 명작이라 불리는 책들은 조금 더 구체적인 답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몇 단계로 된 질문법을 따르라던가, 고민의 내용을 특정한 형식에 맞게 글로 적어보라는 식으로

좀 더 구체적인 해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읽기 어렵고 량이 많아 판매량은 적을지 몰라도

이런 책들 몇몇 정도만 읽고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200페이지 안팎의 얄팍한 책들

쌓아놓고 읽는 것보다  훨씬 낫다. 여러 모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낫다.

다르게 말해, 다양한 방법론을 접한다고 해서 효과가 좋은 것은, 발전이 빠른 것은 분명히 아니다.


영어공부를 생각해보자. 오성식도 영어를 잘하고 곽영일도 영어를 잘하고 이보영도 영어를 잘하고

정찬용도 영어를 잘 한다. 이 사람은 이렇게 공부를 했고, 이 사람은 요렇게 영어를 배웠고,

이 사람은 저렇게 영어를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영어전문가’라 불릴 만큼 능숙히 영어를 하고

그걸로 먹고 산다. Only One Way는 아니라는 거다.

자기계발도 마찬가지, 이름을 다 댈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이론을 토대로

대단한 성장과 발전을 이뤘지 않냐는 말이다.

즉, 이런 방법론적인 책들은 무작정 많이 읽어댈 필요 없이 자기한테 딱 맞는

무언가를 찾을 때까지만 다독하고, 그 다음 독서부터는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채용하면서

자신의 방법을 강화, 보완하는 식으로 이끌어가면 될 것이다.

내 경우 샘 박의 방법론을 접하면서 ‘나는 이렇게 영어공부를 하면 되는구나’하는 감을 잡았는데,

그 이후에는 영어공부 방법론에 대한 책을 더 읽어볼 필요조차 못 느꼈다.

자기계발에 있어서도 이거다 싶은 아찔한 느낌을 받은 것은 역시 앤소니 라빈스와 데일 카네기의 책 뿐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마다 다를 것이다.

여러 권의 책을 똑같이 읽는다해도 읽는 순서에 따라서도 책마다 느끼는 감흥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그러니 딱 정해진 답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거다 싶은 느낌이 올 때까지 개개인이 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그 느낌이 오면, 다른 책들은 수건에 말아서 베개로 쓰고

'바로 그 책' 만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내 머리 속에 박혀지도록.

그리고 시키는 대로 한다. 이 때는 책의 내용 그대로도 해보고,

지금껏 알고 있는 다른 이론들과도 합쳐보면서 나름의 ‘실천공식’을 만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조금 정체되었다, 신물난다 싶으면 이미 많이 읽어 너덜너덜한 책을 다시 꺼내어

또 읽으며 머리 속을 리프레싱 시키고 혹 실천에 있어 나와는 잘 안 맞는 점이 있지는 않는지,

이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자기계발의 깊이를 더해가면 될 것이다.


이러한 단순한 진리를, 자기계발서들을 지겨울 정도까지 읽은 다음에 깨달았으니

나의 ‘계발’은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아직 한참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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