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잠......

문★성 2008.09.16 22:52 조회 수 : 229

어릴 때 흔히 듣던 말로 ‘우주선 타고 달나라도 가는 시대인데’라는 게 있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발전했다는 소린데
닐 암스트롱이 말 그대로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간 게 1969년이니까
이것도 어언 40년 전 일이니 요즘에도 같은 용도로 쓰기엔 좀
고리타분하다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21세기 접어들면서 우주선과 달나라 이야기를 대체할 만한
어엿한 신규 스토리가 국회 정족수 과반수 이상 찬성 등의 절차를 통해
제정된 거도 아니라서 이런 식의 얘기를 전개해나갈 땐 가끔은 좀 아쉽기도 하다.
내가 ‘휴대폰으로 화상전화도 하는 시대인데” 라든가
‘KTX타면 서울 대구를 99분만에 가는 시대인데’ 라는 식으로
제창해서 만백성에게 우겨댈 입장도 아니잖은가.

아무튼 때는 바야흐로 2008년,
굳이 구태의연한 예제를 늘어놓으며 ‘봐 내 말 맞지?’식의 주장을 펼치어
보는 이들 황급히 스크롤 내리게끔 할 필요 없이도
작금은 10년 전, 5년 전에 비해서도 어마어마하게 발전된 시대임이 분명하다.  
가끔은 깜짝깜짝 놀라기까지 한다니까.

하지만 아직 무척이나 미흡하다.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이 너무도 많다.
정부나 대기업 위주의 묵직한 연구가 진행되고
혁혁한 연구성과가 속출해야 마땅할 분야들이 너무 도외시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 있어 드는 여러 가지 질문, 난제들을
속 시원히 해결해줄 수 있는 연구가 좀 더 진행되어줬으면 좋겠는데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은 너무 어려운 분야에만 정진하시는 듯하다.

2007년 노벨 물리학상을 탄 프랑스의 알베르 페르씨와 독일의 페터 그륀베르크씨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정보를 저장하는 것과 관련한
‘거대자기저항’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노벨 화학상은 독일의 게르하르트 에르틀씨가 받았는데 주 연구분야는
‘표면화학’으로 공기 중에 추출된 질소를 화학비료에 포함하는
‘하버-보슈법’의 연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자동차의 촉매가 작용하는 방식 등을
이해하는데 지대하게 공헌한 연구라고 한다.

뭔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벨상 받았으니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한, 혹은 이바지할 아주 훌륭한 연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런 ‘거대자기저항’이나 ‘표면화학분야’가
대전시 유성구 송강동에 살고 있는 내 삶에 와 닿으려면
얼마의 세월을 뛰어넘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거쳐야 할까.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연구들도 인류의 영구한 발전과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한 미래를 위해
쉼 없이 계속되어야 함은 당연지사겠으나 앞서 말했듯
우리의 삶에 좀 더 밀접한 연구, 우리의 인생에 보다 직접적이고
강렬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연구들이 깊이 있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컨대 ‘잠’ 같은 것 말이다.
우리가 하루 3분의 1을 몽땅 들여 바치는 것이 잠이고
하루 일과 중 인간의 그 어느 행태보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 잠일진대
이에 대한 연구라고 해 봤자 맨즈헬스 같은 잡지나 네이버 뉴스에 가끔 나오는
‘당근을 먹는 사람이 숙면을 취한다’ 정도의 수준 낮고
별로 믿음직스럽지도 않은 연구가 태반 아니었던가.
끽해야 몇 명 안 되는 패널을 대상으로,
그것도 특정 인터넷 사이트 가입자나 잡지 정기구독자 등
이미 걸러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조사하여
‘성인 몇 명 중 몇은 이러저러하다’ 는 식의 가십용 결론만 보여주고 있거니와
그 결과들도 상반되기가 십상이라
어떤 사람들은 8시간이 최적의 취침시간이라고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6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들은 아침형 인간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저녁형 인간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하는 등
연구마다 결론이 제 각각이다.

잠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연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거대자기저항’이나 ‘표면화학’ 정도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예컨대,
어떤 자세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온도와 습도에서 자야 피로가 빨리 풀리는 지,
성별, 연령별로 권장되는 취침시각과 수면시간은 어떠한지,
아무리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자는 것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자는 것에 차이가 있는지
잘 자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등등
‘잠’ 하나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질문들이 산재해있는지,
이런 게 인류에 인생에 있어 그리 하찮은 주제는 아닐 텐데 말이다.

나만 하더라도
어떤 날에는 낮잠까지 잤음에도 불구하고 초저녁에 곯아 떨어지는데 비해
어떤 날은 밤새도록 놀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눈에서 초롱초롱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고,
푹 잘 자야 건강하다는 말은 십만 번 정도 들어왔지만
어떻게 자야 푹 잘 자는 것인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푹 잘 자면 진짜 건강해지긴 하는 것인지
아침에 푹 잘 잤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날 내내 피곤한 것은 왜인지 등
궁금한게 한 둘이 아니지만 어디에서도 쉬이 그 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수면이나 잠, 불면증에 대한 책들이나 연구도 적지 않고
'세 시간 수면법'과 같은 과감하고 혁신적인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런 연구들이 우리네 삶에 절대적인 기준으로
전혀 작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 결과물들이 그다지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시 말해 아직까지 깊이가 일천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아냐’라 꾸짖으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하긴, 투자비용에 비해 남는 게 없는 연구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
없던 필요를 창출해내어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니 말이다.
잠의 경우도 그 원리를 파악하고 분석한 후
이에 대해 문제를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약을 만든다던가
상담을 해준다던가, 강연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수입으로 연결할 여지는 상당할 것이다.
충분히 해볼만한 연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연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뭔가 깜짝 놀랄만한 연구결과가 9시 뉴스를 통해 발표될 때까진
지금은 그저 졸리면 자고 안 졸리면 깨어 있고, 그러는 수밖에 없겠다.

그래도 몇 년 전 내가 내비게이션이란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나 같은 길치는 나중에 차 몰고 다니면 엄청 고생할거야’하며
고심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 역시 얼마 안 있으면 시원하게 해결될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좋다, 그건.
다만 그런 날들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하면 빨리 누리기 시작했으면 싶으니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93 [화요단상] 대통령의 어려움 [2] 문★성 2009.06.02
192 [논설] 죽음의 이유 문★성 2009.05.30
191 노무현 前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file 문★성 2009.05.24
190 [화요단상] 독설 [2] 문★성 2009.05.19
189 [화요단상] 여자의 마음은 중국어와 같다 [6] 문★성 2009.05.12
188 [화요단상] 자전거 도둑 맞다 [5] 문★성 2009.05.05
187 [소설] 부둣가 문★성 2009.05.05
186 [수필] 패션 - 3. 패션의 권력성 문★성 2009.04.30
185 [화요단상] 신해철 건을 보며 문★성 2009.04.28
184 [소설] 사이다를 좋아합니다 [2] 문★성 2009.04.16
183 [화요단상] 불공평 [9] 문★성 2009.04.14
182 [화요단상] God will make a way 문★성 2009.04.09
181 [화요단상] Gone 문★성 2009.04.01
180 [수필] 함부로 말합니다 – 8편 라스트 원 문★성 2009.03.28
179 [화요단상] 공 하나의 아쉬움 문★성 2009.03.25
178 [소설] 핫싼씨에게 빠져듭니다 ep3 [2] 문★성 2009.03.19
177 [화요단상] 분실 [4] 문★성 2009.03.17
176 [화요단상] 정다빈 file 문★성 2009.03.11
175 [화요단상] 소녀시대 [4] 문★성 2009.03.03
174 [수필] 함부로 말합니다 – 7편 그녀의 대답 [4] 문★성 2009.02.25
173 [화요단상] 꽃보다 남자 문★성 2009.02.24
172 [화요단상] You're wrong [2] 문★성 2009.02.17
171 [수필] 패션 - 2. 남자의 패션이란 [4] 문★성 2009.02.16
170 [화요단상] 게슈탈트 붕괴 문★성 2009.02.10
169 [화요단상] 대체 몇 시간을 자야 [4] 문★성 2009.02.04
168 [화요단상] 휘어엉처어엉 [3] 문★성 2009.01.24
167 [수필] 함부로 말합니다 - 6편 두 가지 문제 [6] 문★성 2009.01.17
166 [화요단상] 미네르바 체포사태 #2 문★성 2009.01.12
165 [화요단상] 미네르바 체포사태 #1 문★성 2009.01.10
164 [수필] 함부로 말합니다 - 5편 번외소설 "원위치" #2 문★성 2009.01.03
163 [화요단상] 새해에는!!!!!! 문★성 2009.01.03
162 [특집] 2008년, 책을 읽다 [2] 문★성 2008.12.26
161 [화요단상] 문성닷컴 5주년 기념! [2] 문★성 2008.12.17
160 [수필] 패션 - 1. 누구나 촌스러운 시절은 있다 [5] 문★성 2008.12.12
159 [화요단상] Farewell To... 문★성 2008.12.04
158 [수필] 함부로 말합니다 - 4편 번외소설 "원위치" #1 [8] 문★성 2008.11.28
157 [논설] 술 마시는 것은 죄인가? 문★성 2008.11.16
156 [수필] 함부로 말합니다 - 3편 잘 사는 것 [2] 문★성 2008.11.12
155 [화요단상] 커피향 문★성 2008.11.12
154 [수필] 함부로 말합니다 - 2편 그의 이유 [7] 문★성 2008.10.23
153 [화요단상] 순살치킨 [11] 문★성 2008.10.22
152 [수필] 함부로 말합니다 - 1편 가치 문★성 2008.10.17
151 [화요단상] 엔꼬 문★성 2008.10.14
150 [일기] 2002.9.15 - 나도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12] 문★성 2008.10.12
149 [화요단상] 멜라민 [2] 문★성 2008.09.30
148 [수필] 터놓고 얘기합시다 - '자기계발서' 2편 문★성 2008.09.30
147 [화요단상] 이천수 file 문★성 2008.09.17
» [수필] 잠...... [1] 문★성 2008.09.16
145 [화요단상] 지금 중국에 와 있는데요. 근데요... 문★성 2008.09.09
144 [수필] IN 5 YEARS... [6] 문★성 200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