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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IN 5 YEARS...

문★성 2008.08.31 16:53 조회 수 : 158

2003년 여름,
그러니까 5년 전쯤 삼성그룹 여름 인턴쉽에 합격하여 며칠 동안 교육 받을 때
5년 뒤, 10년 뒤의 목표를 세우고 그에 대한 Action Plan을 작성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 만들어놓은 페이퍼는 잃어 버린지 오래지만 이를 찍어놓은 사진을 얼마 전에 발견했다.
한참 좋았던 내 나이 스물 다섯. 그 때 생각했던 서른 살 내가 되어야 할 모습은 아래와 같았다.
네 개 분야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나름의 고충을 겪은 후 원하던 대로, 바라던 대로 취업에 성공했고
적었듯 약 3년 6개월을 유한킴벌리에서 잘 버텨왔다.
그동안 자리도 제법 잡고 인정도 어느 정도 받고 사고도 많이 쳤으니
이 정도면 그 때 생각했던 모습에 근사한 것 같다.

단 취미/운동은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권투/배드민턴 두 가지 운동을 대학교 때 제법 배웠지만
회사 다니면서 고이 접어 나빌레었고,
지금은 조깅, 웨이트 트레이닝, 자전거 같은 기본 운동만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취미생활도 오히리 대학생 때보다 더 적게 하고 있는데,
나이가 드니 한 두 가지에 더 집중하게 되고
자연스레 영역확장에는 주력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저 당시에는 운동 많이 배워보고 싶은 욕망이 제법 강했었다.




5년 전과는 달리 지금 보건대, 29~31살에 내가 결혼할 확률은 매우 낮다.  
'하고 싶지 않을 뿐'라 쿨하게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하기 어렵다' 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재정적인 독립은 어느 정도 달성하였지만 원하는 만큼 많이 저축하지 못한 점은 영 탐탁지 않다. 유한킴벌리는 업무시간 대비 임금은 괜찮은 편이지만 절대적인 임금은 40kg 몸무게의 중학생 종아리 마냥 허약하기 짝이 없다. 다시 말해
"일은 많지 않은데 월급도 많지 않다."
물론 더 허리 졸라매지 않은 내 소비 자체가 더 큰 문제지만 말이다.




영어의 경우 우연찮게 유한킴벌리에 오게 되면서 많이 늘었다.
요즘은 외국 사람 만날 일이 많이 줄어 실력도 덩달아 줄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저 때 목표한 향상은 어느 정도 이룬 것도 같다.
그러고보니 2005년/2006년에는 영어 원없이 했다.

상식이야 꾸준히 책 많이 보고 있으니까 계획대로 잘 되고 있는 것일테고.




당시 교회를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제대로 자리를 못 잡고 있었는데
바로 다음 달인 8월에 삼일교회에 정착하기 시작해서 몇 년 동안 잘 다녔다.
문제는 지금 또 다시 배회하고 있다는 것.
어디 쉽게 뿌리 내리기가 힘든 타입인가보다. 나는.

관계에 있어서는,
성격이 예전보다 원만해지고 둥글둥글해졌으며
문제라고 생각했던 독설이나 편협 또한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전반적인 인간관계는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기 보단 친구들과 내가 다들 나이가 들면서
쉽게 만나고 어울리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가까운 친구들도 일 년에 몇 번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
그만큼 서로에게 공을 들이지 않게 되니 조금씩 멀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항력이었다.
게다가 난 친구들이 주로 있는 대구와 서울이 아닌
어중간한 대전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예전 일기를 보면 하루에 친구들 100명에게 문자를 돌렸다느니
회식 자리에 동기 수십 명이 모여서 새벽까지 놀았다느니 하는
얘기들을 많이 적어놓았는데, 이제는 다소 어려워진 일이다.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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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 세운 5년 계획과 달성 여부를 분야(?) 별로 살펴보았다.
이 정도면 목표는 대충 달성해 보인다. 5년 동안 제법 잘 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이건 절대 잘 했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목표가 너무 낮았다. 목표설정 자체도 너무나 희미했다.
여러 가지 희망사항들을 줄줄이 적어놓긴 했으나
가슴에 손을 얹고 정직히 말하자면
큰 노력 없이 달성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그나마의 목표들도 내가 그것을 왜 달성해야 하는지,
그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거의 담기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뭘 했으면 좋겠다, 정도의 소년스러운 바람만 있을 뿐
자극이 될 만한 High Goal도, 측정 가능한 Measurable Goal도
전혀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이런 목표설정 아래서는 아무리 열심을 기울어봤자,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자 뼛가루로 미숫가루를 만들어 마신다고 할지라도
허무하고 허탈한 기분만 보상받을 뿐이다.
5년 동안 그 때 바랬던 것을 제법 성취하긴 했으나
그 어느 것도 뚜렷한 획을 그을 만큼 멋들어 보이지 않는 것은,
뿌듯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이십 대의 동생들을 만나면 늘 입버릇처럼 목표 이야기를 하는거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강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고
나름의 똑똑함과 나름의 열심과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방향만 제대로 잡고 거기에 이르는 효과적인 방법론을 깨달은 후
충분한 시간과 노력만 꾸준히 부어준다면
이십 대, 혹은 삼십 대의 나이에 이룰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MAX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가만 있기 불안해서 영어공부도 해봤다가 일본어 공부도 해봤다가
수영교습도 다녀보고 기타도 배워보면서 이것저것 건드려보지만
그건 좀 잔인하게 말하자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과 다름없는
잉여자원의 어쩔 수 없는 사용일 뿐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본인에게 그리 득 될 것이 없다.
실컷 시간쓰고 돈을 쓰고 고생했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는 셈이다.

무턱대고 공무원 시험이나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낫다.
적어도 집에서 뭐할지 몰라 빈둥대며 TV 리모컨을 놀려대거나
의미없는 취미생활에 정열을 퍼부어대는 것이 아니라
어쨌거나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일에 전심전력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깊은 생각없이 발 담갔다면
나중에 '이 길이 아닌가벼'하며 후회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나의 경우, 이십 대 후반에 비로소 조금은 방향을 잡아서
조금은 좁은 범위의 목표를 타겟으로 삼아 집중을 하고 있지만
스물 다섯에 이전에 좀 더 소수의 한정된 목표를 잡아내었다면,
그래서 저 5년 후 계획에 ‘난 XX가 될 것이다’, ‘난 XX를 이룰 것이다.’
와 같은 좀 더 명확하고 높은 목표를 적을 수 있었다면,
서른 살의 나는 분명 지금보다는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서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장기목표가 그래서 중요하다.
노력, 최선, 열정, 시간관리, 의지력, 방법론 등을 아무리 잘 갖춘다 할지라도
방향이 잘못 잡히면 괜히 고생만 실컷 해놓고선 두 손은 말갛게 비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내가 서른 다섯, 마흔을 바라보면서 가지고 있는 장기목표도
완전히 개다리 헛짚은 것으로 판명날지 모른다.
그렇기에 늘 스스로의 가치를 재점검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
조금씩 궤도를 바로잡아 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 같다.
일단은,
5년 뒤에 두고보자.


참고로 인턴쉽 중 찍은 사진 추가.
그 때는 썬크림이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얼굴이 저렇게 타는 것을 어찌 막아보지도 못했다.
웃기는 것은 다 같이 야외활동을 같은 시간 동안 했음에도
나만 저 모양 저 꼴이 되었다는 거다. 피부 정말 민감하다.
(그러고보니 저 중에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다. 나머지는 다 스물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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