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들로부터 홈페이지 글이 너무 어둡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만나서 얘기하거나 겉으로 보면 실없는 소릴 곧잘 해대는 밝은 녀석이 써대는 글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말 해 주신 분이 한 다섯 명쯤 되니 그 객관성 앞에선 두 손 들 수밖에 없겠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난설란에 쓴 글 중에 밝은 글이 거의 없기도 한데, 시기를 따져보자면 아마 이 ‘여성과 남성’ 시리즈가 시작일 것이다. 글은 쓰는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기 마련이니까, 고개 숙이고 반성할 수밖에.
어쨌거나 오늘은 네 분류 중 마지막, 자본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4. 대안제시 – 높은 자본의 남성의 경우
능력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대변되는 남성의 자본은 간단하게는, 그리고 가장 일반적으로는 부의 세습을 통해서 확립되곤 한다. 물론 로또 당첨과 같은 행운을 통해,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니만큼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도 확보될 수 있지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쉽게 주어지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리 애를 써도 주어지지 않는 다는 측면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비슷하지만 일단 갖게 된다면 크게 걱정할게 없으리만큼 엄청난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가지기도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남성의 자본은 유통기한이 없다.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자본은 시간이 지나면서 감가상각이 된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1, 2년의 시간으로는 크게 티가 날 만한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지 몰라도 5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생각해본다면 그 기울기는 꽤나 분명하고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남성의 자본은 여성의 경우와 달리 자연적인 퇴화에 역행하는 경향을 띤다. 부익부 빈익빈이라 하지 않는가. 돈이 많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은 돈을 가지는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어릴 때는 겨우 옷의 브랜드나 소지품의 수준 정도로 겨우 가늠할 수 있었던 다른 남성과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차의 종류, 집의 크기, 유학여부, 금융소득 등으로 좀 더 분명하면서도 따라잡을 수 없는 현격한 수준으로 벌어지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보통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할 땐 현재 상태 못지 않게 앞으로의 가능성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가능성은 평강공주가 아닌 이상 아무래도 남성의 현재 상태에 비례하여 추정되기가 십상이므로 자본이 많은 이들은 보너스 포인트까지 획득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자본 50점인 맹달이는 앞으로도 별 볼 일 없이 그냥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전락할 것 같으니 가능성 점수도 20점 점도 얻을 뿐이지만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100점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 제임스 박은 몇 년 뒤엔 더 잘 나갈 것 같고 재산도 물러 받을 테니 100점의 보너스를 추가로 받아 맹달이와 현격한 차이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1편에서 밝혔다시피 남성의 능력은 곧 지금까지의 번 돈 + 앞으로 벌 돈의 합으로 산출되므로 맹달이와 제임스박의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능력의 차이’는 3~4배로 벌어지게 된다. 실제로도 한 10년 뒤에 맹달이와 제임스 박을 다시 비교한다면 어떨까. 특별한 예외가 개입된 상황이 아니라면 자본의 차이는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나. 자본이 많은 남성은 다른 강점도 많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편견 중 하나는 있는 집에서 곱게 자란 남자애들은 싸가지가 없으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재수 없는 놈들이다 라는 것인데. 글쎄. 그리 정확하지는 않다. 졸부의 아들이 아닌 제법 뼈대 있는 집안에서 남 부러울 것이 없이 자란 남자들이 과연 성격에 더 문제가 많을지 상식적으로 한 번 생각해보자. 이들은 우선 교육 하나는 제대로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좋은 집안에서 좋은 학교를 다니며 양질의 교육을 받은 것은 건전한 바탕이 깔려졌음을 의미한다. 그 와중에 매너나 예절에 대한 훈련도 적절히 받았을 것이고, 어려서부터 해외연수, 여행, 독서, 수준 높은 문화 체험 등을 수월하게 경험할 수 있었기에 삶의 견문 역시 일반인들보다 높을 것이다. 기품있고 뼈대있는 집안에서 자랐다면 돈 있다고 하여 다른 사람들을 천대하거나 잘난 체 해서는 안 된다라는 교육을 철저히 받았을 것이니 있는 척 가진 척 하지 않으려 오히려 노력할 테고, 가난한 애들에 비해 크게 몸 고생, 마음 고생도 안 해봤을 것이니 부모님이나 사회에 대한 불평이나 분노, 한숨도 덜할 테니 분명 밝을 것이다. 긍정적일 것이다. 또한 사람은 어쨌거나 같이 다니는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아무래도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리고 불량기 있는 애들로부터 안 좋은 영향을 받지도 않았을 테니 악의 소용돌이에 쉬이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편견과는 달리 높은 자본의 남성은 좋은 성격과 성품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되레 높다는 것이다. 능력 있는데다가 예의 바르고, 밝고 긍정적이며 똑똑하기까지 한 이런 남성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가 사람 망쳐놓는다는 얘기 많이들 하지만 트렌디 드라마에서 나오는 돈 많고 똑똑하면서도 자상한 재벌2세들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만한 캐릭터이다. 고생을 해봐야 인생을 안다는 말도 자명한 진리이지만 고생을 모르고도 인생을 알 수 있다면 더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고생을 많이 한 이들도 인생을 안다라기 보다는 불평과 한숨, 원망으로 점철된 트라우마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 남성의 자본은 교환가치 또한 높다.
여기서의 교환가치는 단순히 가치의 크기뿐 아니라 교환의 용이성이라든가 파급력, 도덕적, 양심적 제약에서부터의 자유까지 포함한다고 해두자. 여성의 자본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로 인한 여러 다른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실제적, 실용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직접적으로 다른 가치와 교환되지는 않는다. 물론 아름다움을 대함에 있어 어떤 이들은 돈을, 어떤 이들은 인생을 내세우며 거래를 하기도 하지만 아름다움 하나와 다른 귀중한 가치 하나를 일대 일로 교환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플러스 알파를 요구한다는 것인데, 얼굴만 예쁘다고 바로 연예인이 되거나, 손쉽게 승진하거나 결혼할 수 없는 것이 그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남성의 자본은 다르다. 이는 자연스럽게 다른 가치와 쉽사리 교환되는데 여기에는 자동차, 집과 같은 물질적 가치나 여행, 교육, 문화체험과 같은 정신적 가치까지 포함한다. 하다못해 외적 아름다움이란 여성의 자본마저도 돈으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은가? 즉,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다른 가치들을 얼마든지 창출해낸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동시에 (가)에서 밝혔듯 자본 스스로를 재생산해낸다는 측면에서 남성의 자본은 매우 강력하고 매력적이다.
위와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남성의 자본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자본을 하대하고 무시, 혹은 경계하는 사람이 꽤나 많은데 비해 남성의 자본을 폄하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음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조심해야 할 것인 있으니, 자본이 관계에 있어 주 목적, 핵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에만 목을 메고 달려드는 남성들을 적절히 견제하고 쳐내야 하는 만큼 남성들 또한 자신의 자본을 노리거나 이에 의지하려는 이들로부터 본인을 지켜야 한다. 자본이 있음으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게 된 사람과 연애하거나 결혼한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자본이 없으면 더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불안이 상존해 있기 때문이다. 내재된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자본의 발광에 묻히기 일쑤라 본인이 진정으로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어하는 면들이 전혀 부각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자기존중심, 자아만족은 요원한 일이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삶이지만 늘 항상 어딘가가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의 자본은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메인이 아닌 보너스나 옵션 정도로 작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본의 교환가치에 대해서 앞에서 언급하긴 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관계적인 가치들은 분명 자본으로 등가교환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자본 하나만으로 사랑을 쟁취했다고 한다면 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가장한 욕망과 욕심, 자기 과시에 다름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 그리고 자본을 제외한 다른 매력이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의 자본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자본을 쏙 빼버리더라도 상대방이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고, 반하고, 사랑의 감정을 갖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본이 크면 클 수록 여기에 파묻히거나 가리워지지 않을 수 있도록 내적인 매력을 더 크게 키워야 한다. 더군다나 앞서 말했듯 남성의 자본은 가만히 두면 더 커지기 마련이므로 일생에 걸쳐 자기 자본의 뒤쳐지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것이 자본이 많은 남성들에게 주어지는 제대로 된 '대안'이다.
자본이 없는 남성에 비해 이 과정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주어진 조건이 편하고 장애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류의 남성들은 무언가를 향한 목마름, 갈급함이라든가 어딘가에 미친듯이 몰두하게 만드는 독한 에너지, 사람을 활활 불타오르게 하는 부정적 에너지가 바닥에 근접하기 때문에 내적인 매력을 배가시키는 것이, 자기 자신을 한 단계 넘어서는 것이 그리 녹록치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있으면서 그에 못지 않은 매력을 가진 남성들이 우리를 그토록 감동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오늘은 네 분류 중 마지막, 자본을 가지고 있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4. 대안제시 – 높은 자본의 남성의 경우
능력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대변되는 남성의 자본은 간단하게는, 그리고 가장 일반적으로는 부의 세습을 통해서 확립되곤 한다. 물론 로또 당첨과 같은 행운을 통해,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니만큼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도 확보될 수 있지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쉽게 주어지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리 애를 써도 주어지지 않는 다는 측면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비슷하지만 일단 갖게 된다면 크게 걱정할게 없으리만큼 엄청난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가지기도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남성의 자본은 유통기한이 없다.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자본은 시간이 지나면서 감가상각이 된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1, 2년의 시간으로는 크게 티가 날 만한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지 몰라도 5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생각해본다면 그 기울기는 꽤나 분명하고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남성의 자본은 여성의 경우와 달리 자연적인 퇴화에 역행하는 경향을 띤다. 부익부 빈익빈이라 하지 않는가. 돈이 많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은 돈을 가지는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어릴 때는 겨우 옷의 브랜드나 소지품의 수준 정도로 겨우 가늠할 수 있었던 다른 남성과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차의 종류, 집의 크기, 유학여부, 금융소득 등으로 좀 더 분명하면서도 따라잡을 수 없는 현격한 수준으로 벌어지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보통 여성들이 남성들을 대할 땐 현재 상태 못지 않게 앞으로의 가능성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가능성은 평강공주가 아닌 이상 아무래도 남성의 현재 상태에 비례하여 추정되기가 십상이므로 자본이 많은 이들은 보너스 포인트까지 획득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 자본 50점인 맹달이는 앞으로도 별 볼 일 없이 그냥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전락할 것 같으니 가능성 점수도 20점 점도 얻을 뿐이지만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100점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 제임스 박은 몇 년 뒤엔 더 잘 나갈 것 같고 재산도 물러 받을 테니 100점의 보너스를 추가로 받아 맹달이와 현격한 차이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1편에서 밝혔다시피 남성의 능력은 곧 지금까지의 번 돈 + 앞으로 벌 돈의 합으로 산출되므로 맹달이와 제임스박의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능력의 차이’는 3~4배로 벌어지게 된다. 실제로도 한 10년 뒤에 맹달이와 제임스 박을 다시 비교한다면 어떨까. 특별한 예외가 개입된 상황이 아니라면 자본의 차이는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나. 자본이 많은 남성은 다른 강점도 많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편견 중 하나는 있는 집에서 곱게 자란 남자애들은 싸가지가 없으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재수 없는 놈들이다 라는 것인데. 글쎄. 그리 정확하지는 않다. 졸부의 아들이 아닌 제법 뼈대 있는 집안에서 남 부러울 것이 없이 자란 남자들이 과연 성격에 더 문제가 많을지 상식적으로 한 번 생각해보자. 이들은 우선 교육 하나는 제대로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좋은 집안에서 좋은 학교를 다니며 양질의 교육을 받은 것은 건전한 바탕이 깔려졌음을 의미한다. 그 와중에 매너나 예절에 대한 훈련도 적절히 받았을 것이고, 어려서부터 해외연수, 여행, 독서, 수준 높은 문화 체험 등을 수월하게 경험할 수 있었기에 삶의 견문 역시 일반인들보다 높을 것이다. 기품있고 뼈대있는 집안에서 자랐다면 돈 있다고 하여 다른 사람들을 천대하거나 잘난 체 해서는 안 된다라는 교육을 철저히 받았을 것이니 있는 척 가진 척 하지 않으려 오히려 노력할 테고, 가난한 애들에 비해 크게 몸 고생, 마음 고생도 안 해봤을 것이니 부모님이나 사회에 대한 불평이나 분노, 한숨도 덜할 테니 분명 밝을 것이다. 긍정적일 것이다. 또한 사람은 어쨌거나 같이 다니는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아무래도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리고 불량기 있는 애들로부터 안 좋은 영향을 받지도 않았을 테니 악의 소용돌이에 쉬이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편견과는 달리 높은 자본의 남성은 좋은 성격과 성품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되레 높다는 것이다. 능력 있는데다가 예의 바르고, 밝고 긍정적이며 똑똑하기까지 한 이런 남성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가 사람 망쳐놓는다는 얘기 많이들 하지만 트렌디 드라마에서 나오는 돈 많고 똑똑하면서도 자상한 재벌2세들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만한 캐릭터이다. 고생을 해봐야 인생을 안다는 말도 자명한 진리이지만 고생을 모르고도 인생을 알 수 있다면 더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고생을 많이 한 이들도 인생을 안다라기 보다는 불평과 한숨, 원망으로 점철된 트라우마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 남성의 자본은 교환가치 또한 높다.
여기서의 교환가치는 단순히 가치의 크기뿐 아니라 교환의 용이성이라든가 파급력, 도덕적, 양심적 제약에서부터의 자유까지 포함한다고 해두자. 여성의 자본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로 인한 여러 다른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실제적, 실용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직접적으로 다른 가치와 교환되지는 않는다. 물론 아름다움을 대함에 있어 어떤 이들은 돈을, 어떤 이들은 인생을 내세우며 거래를 하기도 하지만 아름다움 하나와 다른 귀중한 가치 하나를 일대 일로 교환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플러스 알파를 요구한다는 것인데, 얼굴만 예쁘다고 바로 연예인이 되거나, 손쉽게 승진하거나 결혼할 수 없는 것이 그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남성의 자본은 다르다. 이는 자연스럽게 다른 가치와 쉽사리 교환되는데 여기에는 자동차, 집과 같은 물질적 가치나 여행, 교육, 문화체험과 같은 정신적 가치까지 포함한다. 하다못해 외적 아름다움이란 여성의 자본마저도 돈으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은가? 즉,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다른 가치들을 얼마든지 창출해낸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동시에 (가)에서 밝혔듯 자본 스스로를 재생산해낸다는 측면에서 남성의 자본은 매우 강력하고 매력적이다.
위와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남성의 자본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자본을 하대하고 무시, 혹은 경계하는 사람이 꽤나 많은데 비해 남성의 자본을 폄하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음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조심해야 할 것인 있으니, 자본이 관계에 있어 주 목적, 핵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아름다움에만 목을 메고 달려드는 남성들을 적절히 견제하고 쳐내야 하는 만큼 남성들 또한 자신의 자본을 노리거나 이에 의지하려는 이들로부터 본인을 지켜야 한다. 자본이 있음으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게 된 사람과 연애하거나 결혼한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자본이 없으면 더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불안이 상존해 있기 때문이다. 내재된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자본의 발광에 묻히기 일쑤라 본인이 진정으로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어하는 면들이 전혀 부각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자기존중심, 자아만족은 요원한 일이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삶이지만 늘 항상 어딘가가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의 자본은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메인이 아닌 보너스나 옵션 정도로 작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본의 교환가치에 대해서 앞에서 언급하긴 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관계적인 가치들은 분명 자본으로 등가교환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자본 하나만으로 사랑을 쟁취했다고 한다면 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가장한 욕망과 욕심, 자기 과시에 다름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 그리고 자본을 제외한 다른 매력이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의 자본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자본을 쏙 빼버리더라도 상대방이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고, 반하고, 사랑의 감정을 갖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본이 크면 클 수록 여기에 파묻히거나 가리워지지 않을 수 있도록 내적인 매력을 더 크게 키워야 한다. 더군다나 앞서 말했듯 남성의 자본은 가만히 두면 더 커지기 마련이므로 일생에 걸쳐 자기 자본의 뒤쳐지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것이 자본이 많은 남성들에게 주어지는 제대로 된 '대안'이다.
자본이 없는 남성에 비해 이 과정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주어진 조건이 편하고 장애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류의 남성들은 무언가를 향한 목마름, 갈급함이라든가 어딘가에 미친듯이 몰두하게 만드는 독한 에너지, 사람을 활활 불타오르게 하는 부정적 에너지가 바닥에 근접하기 때문에 내적인 매력을 배가시키는 것이, 자기 자신을 한 단계 넘어서는 것이 그리 녹록치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있으면서 그에 못지 않은 매력을 가진 남성들이 우리를 그토록 감동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