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게재된 한 뉴스기사에 따르면
2007년 대한해운이라는 회사의 ‘직원 1인당 영업이익’이 10억 원을 넘어
울나라 100대 기업 중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뒤를 고려아연, SK 텔레콤, 에쓰오일 등이 따르고 있는데
이들 회사들 역시 직원 한 명이 회사에 4~5억원의 영업이익을 턱 하니 안겨주었다고 한다.
많이 버네. 좋은 회사다. 소수정예랄까. 효율이 높은가 보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고액 연봉의 신수 좋은 총각처럼 번듯한 회사들로 보인다.
물론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 현대사회는 ‘분업’이 경제의 원동력이 되었기 땜시
실질적으로 직원 1명이 회사에 얼만큼 기여하는지를 파악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긴 하다.
몇몇 예외도 있겠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물질이나 서비스 생산에 있어
극히 작은 일부분만을 담당하기에 전반적인 과정에서 정확히 얼마 정도의 포션을 담당하는지
각이 안 나온다는 말이다.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세계 초일류(!) 기저귀 생산업체인 우리 회사를 예로 들어, 분업이란게 없다는 것을 상상해보자.
공장이 필요할까? 굳이 그렇지도 않다. 강당 같은 거 대따 크게 하나 지어놓고
직원 수 천명 쪼르륵 앉혀놓은 후 부직포에 풀칠해서 제품 만들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책상하고 풀과 가위 정도만 있으면 준비는 끝,
사람들은 저마다의 재량에 걸맞게 그저 열심히 만들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생산과정 하에서는 하루에 기저귀 4,000개 만들어내는 장인과
40개 만드는 초짜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게 되고
그 못지 않게 각각이 회사에 얼마만큼 기여하는지도 제법 클리어하게 산출이 될 것이다.
기저귀 4,000개 만드는 장인의 1인당 매출액 이꼬르 (4,000) x (개당 판매가격).
거참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네 그려.
하지만 산업사회가 자아낸 이노무 분업적 업무형태는 놀라운 생산력의 증대를
이루어내긴 했으되 누가 정확히 얼마 정도의 일을 하고 얼마만큼의 이익을 창출해내는지를
며느리도 모르고 시아버지도 모르고 아무튼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 놓았다.
기저귀만 하더라도 기계가 있고 그 기계의 각 파트를 조종하는 사람, 고장나면 고치는 사람,
제품을 검사하는 사람, 장비를 구입해주는 사람, 자재를 관리하는 사람,
이걸 들고 시장에 나가 파는 사람, 시장에 물건을 들고 나갈 때 버쩍 들어주는 사람,
운반해주는 사람, 계산해주는 사람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일,
그것두 수치로 산정되지 않는 일들을 해대고 있다.
도무지 얼마만큼 이익에 기여하는지를 알래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맨날 골프만 치러 다니는 사장님은 말단부장보다 회사에 기여를 많이 하는가?
맨날 칼퇴근을 일삼는 대머리 부장은 허구한 날 야근인 삼십대 대리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는가?
모르잖아. 모른단 말이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앞에서 말한 직원 1인당 영업이익은 결국 (총영업이익) ÷ (직원 수)라는
상당히 담대하고 모호하고, 얼핏 불공평해 보이기까지 하는 수식으로 얼버무려질 뿐이다.
좀 미심쩍지 않은가? 그래도 잠시만 참아주시라.
사실 여기까지가 서론이었고 이 다음부터 이어지는 불량스러운 내용은 어쨌거나
저 수식 하나 붙잡고 늘어지는 심순애가 될 터이니까 말이다.
자. 이쯤에서 오른손을 버쩍 들고 아래와 같이 외쳐본다.
“질문있습니다! 과연, 저 회사들의 ‘직원 1인’은 연봉을 얼마나 받습니까?”
자문자답. 인터넷 정보 검색사 2급에 빛나는 문성. 얼른 찾아보았다.
1등 먹은 대한해운만 확인해봤는데 평균연봉이, 꺼억. 5300만원이란다.
동종 업계에서는 오히려 낮은 액수라는데, 기세 등등 위풍 당당 배 몰고 다니는게 아니라
대한민국 선진 위생문화창달에 기여하고자 바둥거리는 나로서는
그 ‘낮은 액수’에도 감탄사가 나오더라.
그런데 말이다.
저 ‘저 직원 1인’이 회사에 벌어주는 영업이익이 10억원이잖아.
매출액도 아닌, 영업이익이 10억원이라구.
다시 말해 저 직원들은 회사에 인당 10억원의 이익을 안겨주고
그 대가로 꼴랑 5300만원 받는다는 건데, 이거 겨우 5% 남짓이잖수.
나머지 95%는 회사에게, 주주에게 바치는 거라구.
당연히 회사가 가진 자산이 벌어주는 돈도 있고 법인세부터 이리저리 뺄 것도 적잖겠지만
앞의 (총영업이익) ÷ (직원 수) = (직원 1인당 영업이익)라는 지나치게 간단한 등식만큼만
지나치게 간단히 생각해본다면 틀린 말도 아닐터이다.
자. 다시 말해 열심히 벌어서, 일주일에 40~80시간씩 일하여 번 것의 고작 5%를 받는다는 거다.
거기다가 탕수육에 따라온 군만두 마냥 쭐래쭐래 따라온 세금 및 국민연금에게
뒷통수까지 맞아버리니 좀 고깝게 생각해보자면 샐러리맨으로서의 우리의 모습이
옛날 소작농이랑 별 차이가 없는 것도 같고 포스트모던이니 정보화사회니를 주창하는
이 사회의 모습이 옛날 봉건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대다수의 우리는 이런 문제있는 현실을 지각조차 하지 못하고,
근본적으로 뭔가 잘 못 엉켜있는 듯한 구조를 인지하지 못하고
연봉 몇 %의 증감에 울고 웃을 뿐이다.
연봉 5% 올라봤자 버는 돈의 5%에서 조금 늘어 5.25%를 가져가는 것뿐인데 말이다.
어찌보면 우리는 너무 순진한 것인지도 모르고
맑시즘 같은 이론에 너무 무지한 것인지도 모르고
고분고분 사회의 물결에 너무 잘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 역시 사회주의, 잘 모른다. 아직 ‘자본론’같은 책은 읽어보지도 못하였다.
경제학도 모른다. 스테그플레이션이 어떻게 발생되는지 아직도 이해 못하겠다.
자본주의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귀에 전봇대 박듯 들어왔으나 그게 뭔지 5분도 설명 못하겠다.
하지만 말이다.
만약에.
만. 약. 에.
그냥 이 자본주의란 녀석이 첫발을 좀 다르게 딛었다면 말이다.
처음 자본의 힘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일을 시킨 이들이
생각을 통 크게, 후하게 해서, 회사에 10억을 벌어주는 직원은
한 5억쯤 받는 세상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주주가치는 떨어지겠지만,
주주로서의 삶은 지금보다 절반 정도 덜 풍족하겠지만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월급받고 사는 샐러리맨들은
지금보다 훨씬 여유롭고 즐거운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자본으로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세상이지만
자본보다는 지식과 경험, 지혜, 성실 등으로 대변되는 노동이
힘을 받는다면, 대다수의 자본없는 사람들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자본의 무모한 꿈에 사로잡혀
주식 홈트레이딩에 목을 매달지 않아도 되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물려받은 돈만 불리며 딩딩 거리는 애들이 조금은 줄지 않았을까.
공산주의처럼 누구나 다 똑 같은 것을 나눠받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기여를 많이 한 사람이 기여한 만큼 많이 받는다면은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고
종래는 회사 전체의 이익, 국가 전체의 이익을 더 키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잘은 몰라도 토마스 모어가 말한 유토피아는
아마 이런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재잘거려도 사회는 바뀌지 않을 터이니 그냥 열심히 벌어
얼른 ‘자본가’가 되는 것이 모범답안인 것 같다.
레지스탕스의 깃발을 휘날리며 장렬히 자신을 산화하여 세상을
바꿀 용기는 아무래도 내게는 없으니 말이다.
※ 경제학이니 사회학이니, 개뿔도 모르는 내가
그냥 머리 속 회전하는대로 사정없이 뱉어낸 말들이오니
전공자나 전문가께서는 오류가 있더라도 지긋이 눈감아 주시기 바래요.
2007년 대한해운이라는 회사의 ‘직원 1인당 영업이익’이 10억 원을 넘어
울나라 100대 기업 중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뒤를 고려아연, SK 텔레콤, 에쓰오일 등이 따르고 있는데
이들 회사들 역시 직원 한 명이 회사에 4~5억원의 영업이익을 턱 하니 안겨주었다고 한다.
많이 버네. 좋은 회사다. 소수정예랄까. 효율이 높은가 보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고액 연봉의 신수 좋은 총각처럼 번듯한 회사들로 보인다.
물론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말대로 현대사회는 ‘분업’이 경제의 원동력이 되었기 땜시
실질적으로 직원 1명이 회사에 얼만큼 기여하는지를 파악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긴 하다.
몇몇 예외도 있겠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물질이나 서비스 생산에 있어
극히 작은 일부분만을 담당하기에 전반적인 과정에서 정확히 얼마 정도의 포션을 담당하는지
각이 안 나온다는 말이다.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세계 초일류(!) 기저귀 생산업체인 우리 회사를 예로 들어, 분업이란게 없다는 것을 상상해보자.
공장이 필요할까? 굳이 그렇지도 않다. 강당 같은 거 대따 크게 하나 지어놓고
직원 수 천명 쪼르륵 앉혀놓은 후 부직포에 풀칠해서 제품 만들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책상하고 풀과 가위 정도만 있으면 준비는 끝,
사람들은 저마다의 재량에 걸맞게 그저 열심히 만들기만 하면 된다.
이런 생산과정 하에서는 하루에 기저귀 4,000개 만들어내는 장인과
40개 만드는 초짜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게 되고
그 못지 않게 각각이 회사에 얼마만큼 기여하는지도 제법 클리어하게 산출이 될 것이다.
기저귀 4,000개 만드는 장인의 1인당 매출액 이꼬르 (4,000) x (개당 판매가격).
거참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네 그려.
하지만 산업사회가 자아낸 이노무 분업적 업무형태는 놀라운 생산력의 증대를
이루어내긴 했으되 누가 정확히 얼마 정도의 일을 하고 얼마만큼의 이익을 창출해내는지를
며느리도 모르고 시아버지도 모르고 아무튼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 놓았다.
기저귀만 하더라도 기계가 있고 그 기계의 각 파트를 조종하는 사람, 고장나면 고치는 사람,
제품을 검사하는 사람, 장비를 구입해주는 사람, 자재를 관리하는 사람,
이걸 들고 시장에 나가 파는 사람, 시장에 물건을 들고 나갈 때 버쩍 들어주는 사람,
운반해주는 사람, 계산해주는 사람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일,
그것두 수치로 산정되지 않는 일들을 해대고 있다.
도무지 얼마만큼 이익에 기여하는지를 알래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맨날 골프만 치러 다니는 사장님은 말단부장보다 회사에 기여를 많이 하는가?
맨날 칼퇴근을 일삼는 대머리 부장은 허구한 날 야근인 삼십대 대리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는가?
모르잖아. 모른단 말이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앞에서 말한 직원 1인당 영업이익은 결국 (총영업이익) ÷ (직원 수)라는
상당히 담대하고 모호하고, 얼핏 불공평해 보이기까지 하는 수식으로 얼버무려질 뿐이다.
좀 미심쩍지 않은가? 그래도 잠시만 참아주시라.
사실 여기까지가 서론이었고 이 다음부터 이어지는 불량스러운 내용은 어쨌거나
저 수식 하나 붙잡고 늘어지는 심순애가 될 터이니까 말이다.
자. 이쯤에서 오른손을 버쩍 들고 아래와 같이 외쳐본다.
“질문있습니다! 과연, 저 회사들의 ‘직원 1인’은 연봉을 얼마나 받습니까?”
자문자답. 인터넷 정보 검색사 2급에 빛나는 문성. 얼른 찾아보았다.
1등 먹은 대한해운만 확인해봤는데 평균연봉이, 꺼억. 5300만원이란다.
동종 업계에서는 오히려 낮은 액수라는데, 기세 등등 위풍 당당 배 몰고 다니는게 아니라
대한민국 선진 위생문화창달에 기여하고자 바둥거리는 나로서는
그 ‘낮은 액수’에도 감탄사가 나오더라.
그런데 말이다.
저 ‘저 직원 1인’이 회사에 벌어주는 영업이익이 10억원이잖아.
매출액도 아닌, 영업이익이 10억원이라구.
다시 말해 저 직원들은 회사에 인당 10억원의 이익을 안겨주고
그 대가로 꼴랑 5300만원 받는다는 건데, 이거 겨우 5% 남짓이잖수.
나머지 95%는 회사에게, 주주에게 바치는 거라구.
당연히 회사가 가진 자산이 벌어주는 돈도 있고 법인세부터 이리저리 뺄 것도 적잖겠지만
앞의 (총영업이익) ÷ (직원 수) = (직원 1인당 영업이익)라는 지나치게 간단한 등식만큼만
지나치게 간단히 생각해본다면 틀린 말도 아닐터이다.
자. 다시 말해 열심히 벌어서, 일주일에 40~80시간씩 일하여 번 것의 고작 5%를 받는다는 거다.
거기다가 탕수육에 따라온 군만두 마냥 쭐래쭐래 따라온 세금 및 국민연금에게
뒷통수까지 맞아버리니 좀 고깝게 생각해보자면 샐러리맨으로서의 우리의 모습이
옛날 소작농이랑 별 차이가 없는 것도 같고 포스트모던이니 정보화사회니를 주창하는
이 사회의 모습이 옛날 봉건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대다수의 우리는 이런 문제있는 현실을 지각조차 하지 못하고,
근본적으로 뭔가 잘 못 엉켜있는 듯한 구조를 인지하지 못하고
연봉 몇 %의 증감에 울고 웃을 뿐이다.
연봉 5% 올라봤자 버는 돈의 5%에서 조금 늘어 5.25%를 가져가는 것뿐인데 말이다.
어찌보면 우리는 너무 순진한 것인지도 모르고
맑시즘 같은 이론에 너무 무지한 것인지도 모르고
고분고분 사회의 물결에 너무 잘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 역시 사회주의, 잘 모른다. 아직 ‘자본론’같은 책은 읽어보지도 못하였다.
경제학도 모른다. 스테그플레이션이 어떻게 발생되는지 아직도 이해 못하겠다.
자본주의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귀에 전봇대 박듯 들어왔으나 그게 뭔지 5분도 설명 못하겠다.
하지만 말이다.
만약에.
만. 약. 에.
그냥 이 자본주의란 녀석이 첫발을 좀 다르게 딛었다면 말이다.
처음 자본의 힘으로 사람을 고용해서 일을 시킨 이들이
생각을 통 크게, 후하게 해서, 회사에 10억을 벌어주는 직원은
한 5억쯤 받는 세상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주주가치는 떨어지겠지만,
주주로서의 삶은 지금보다 절반 정도 덜 풍족하겠지만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월급받고 사는 샐러리맨들은
지금보다 훨씬 여유롭고 즐거운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자본으로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세상이지만
자본보다는 지식과 경험, 지혜, 성실 등으로 대변되는 노동이
힘을 받는다면, 대다수의 자본없는 사람들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자본의 무모한 꿈에 사로잡혀
주식 홈트레이딩에 목을 매달지 않아도 되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물려받은 돈만 불리며 딩딩 거리는 애들이 조금은 줄지 않았을까.
공산주의처럼 누구나 다 똑 같은 것을 나눠받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기여를 많이 한 사람이 기여한 만큼 많이 받는다면은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고
종래는 회사 전체의 이익, 국가 전체의 이익을 더 키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잘은 몰라도 토마스 모어가 말한 유토피아는
아마 이런 모습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재잘거려도 사회는 바뀌지 않을 터이니 그냥 열심히 벌어
얼른 ‘자본가’가 되는 것이 모범답안인 것 같다.
레지스탕스의 깃발을 휘날리며 장렬히 자신을 산화하여 세상을
바꿀 용기는 아무래도 내게는 없으니 말이다.
※ 경제학이니 사회학이니, 개뿔도 모르는 내가
그냥 머리 속 회전하는대로 사정없이 뱉어낸 말들이오니
전공자나 전문가께서는 오류가 있더라도 지긋이 눈감아 주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