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어느 회식 자리.
남자들이 여럿 모여 갓 결혼한 친구녀석에게 소감을 묻는다.
“결혼 생활이 어떠냐고? 아 물론 좋지…… 근데 말야……”
놈은 잠시 주위를 살핀 후 말을 잇는다.
“결혼 전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다 좋았거든? 근데 이젠 달라졌어.”
“오오. 녀석, 변했네. 역시 사랑의 힘이구나! 그래서, 이젠 구체적으로 어떤대?”
대답이 걸작.
“여전히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다 좋아. 딱 한 명만 빼고.”
--------------------------------------------------------------------
결혼식이 있어 부산에 다녀왔다. 학교도서관에서 주고받은 쪽지의 인연으로
대학동창 옥모군이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이로써 또 한 녀석이 ‘유부’의 세계로 휘익 건너가 버렸다.
난 결혼으로 가는 긴 레이스의 중간 반환점을 이제 겨우 돈 것 같은데,
결혼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를 이제서야 조금씩 생각해보기 시작했는데,
먼저 달려간 사람들이 환호를 받으며 하나 둘씩 결승선 테잎을 끊어내는 모습이 속속 보이기 시작한다.
애아빠, 애엄마가 된 사람도 한 둘이 아니고 사공모양 같은 경우에는 벌써 두 아이의 엄마다.
하기야 선배들도, 동창들도, 동문들도, 동기들도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삼십 대니
아직은 남은 사람들이 더 많다 하더라도 결혼하는 것이, 그리고 아빠 엄마가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특히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
작년까지만 해도 별 말씀 없으시던 주위 어른들이 올해는 결혼 언제하냐는 질문을
수시로 투척하시는 것만해도 그렇다. 그 분들 보기엔 서른 살 먹은 사내녀석이
허벅지 꽉 끼는 청바지에 애들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자전거 타고 나대며
헬레레 팔렐레 거리는 꼬락서니가 영 가당치 않으실 테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결혼이 가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밤새워 웨딩사진을 찍고 청첩장을 돌리고 식장을 잡는 등 갖은 마음고생 몸고생 다하다가
마침내 그 날이 오면 말쑥한 턱시도를 빼 입고 식장에 입장하여
싱글벙글거리는 자신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마치 입시를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고등학교 2학년처럼,
군대문제는 꿈에서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스무 살 남자애처럼
목전에 이미 차르르 펼쳐져 있는 현실을 직면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다지 반항적이지 못한 얌전한 성격상 물이 목 밑에 차 오르듯 때가 차면
남들처럼 제법 잘 맞닥뜨리겠지만 아직은 멀리 두고만 싶다.
그러니 이봐요. 결혼씨. 몇 년만 날, 좀 놔둬줘요. 때 되면 어련히 찾아뵙지 않겠습니까.
작년 말인가 회사 동갑내기 여직원의 아들 돌잔치를 갔었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부부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소감을 말하고,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애기한테 물건을 쥐어주는 등
실로 부모다운 몸짓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꽉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다.
돌잔치가 끝난 밤 혼자 거리 벤치에 멍하니 앉아 한참 동안이나 얹힌 마음을
식혀야 했던 것은 동갑이란 이유로 함부로 그 부부의 자리에 내가 서면 어떨까 하는
망령된 상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완연한 아저씨 및 아버지의 행색으로 돌잔치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당한 싱크로의 부작용으로 인해
내부신경 전체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그만큼이나 아직은 결혼이, 아버지가 되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
(사실 돌잔치는 그것만으로도 더 끔찍하다. 나중에 내 아들이 땅을 치며 원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돌잔치만은 안 하고 싶다)
무엇보다 아직 난,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만한 좋은 사람은 아니다.
정신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면 모두 부족하여 누구를 책임질만한 어른이라
자신을 규정지을 수 없다.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 거라는 자신감과 확신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기에, 조금 더 성장하고 싶다. 좀 더 매력적이고 멋진 사람이 된 후에
나를 예비되었다라 자랑스레 내세우고 싶은 것이다.
누구나 부족한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또 배우자를 통해 그 부족을 채우는 것이 결혼임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가 보기에도 못나고 텅 빈 자신을 상대방에게 던지듯 맡긴 후
네 인생을 희생하여 이를 채우라고 하는 것은 실로 무책임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무책임함을 감수하면서 사는 듯,
결혼 몇 년만 지나면 남편이나 아내나 할 것 없이 ‘애 때문에 산다’ 혹은
‘어쩌지 못해 산다’라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된다.
사귈 때나 신혼 때의 흥분이 완연히 가신 상태에서는 다른 방면에서 서로를
끊임없이 채워줘야 함이 부부생활의 근본이 될진 데 서로에게 부어주기는커녕
상대가 부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으니 ‘결혼 생활 어때요?’란 질문에
너나 할 것 없이 한숨부터 나오는게 당연지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당연히 결혼 후의 노력도 중요겠지만 결혼식 이후엔 삶의 바퀴가 두 배는 더 빨리 돌기에,
신경써야할 것이 훨씬 더 많아지기에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기가,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에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위기를 짐작하고 노력을 시작한대도 현실적 어려움에, 무관심한 상대방의 핀잔에 이내 지쳐버리기 일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전에 평생 동안 배우자에게 바닥 없이 퍼부어줄 수 있는
성품과 지혜와 같은 금싸라기 혼수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준비해두어야 할 것 같다.
황금알을 낳는 닭 한 마리 마련하는 셈 치고 말이다.
이를 위해 작년부터 계속 하고 있는, 그래서 언젠간 이 홈페이지에도 연재할
‘사랑의 정의’에 대한 공부. 참사랑의 실현에 대한, 연구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연구 아닌 연구 등을 자기 수양과 더불어 꾸준히 진행해볼 생각이다.
실제 결혼 생활에서 효과가 있을지는 자신 없지만 말이다.
짧으면 2년, 늦으면 5~6년이다. 회사에서 모 여자후배가
대뜸 ‘선배는 평생 혼자 살아도 어울릴 것 같아요’라 칭찬과 독설이 교묘히 섞인
질시를 쏘아붙이기도 했지만 나도 언젠간 결혼을 하긴 할 것이다.
독신주의? 10년째 여덟아홉 번은 넘게 집을 바꿔가며 하고 있는 혼자만의 생활을
죽을 때까지 영위하고 싶은 생각 전혀 없다.
아마도 내가 결혼이란 것을 하게 될 때쯤엔 문성닷컴도 웨딩 분위기를 띨 것이다.
대문엔 대문짝하게 ‘우리 결혼해요♥’라 광고를 써 붙여 놓을 것이고
사진란에는 웨딩사진 몇 장 샘플로 올려놓을 것이며 화요단상엔 결혼준비에 정신없다는
푸념을 늘어놓은 후 신혼여행 다녀와선 한 여자의 남편 된 소감을 길게
난설란에 늘어놓게 될 것이다.
아침으로 과일을 갈아 마시거나 굶기 십상인 내가 누군가가 준비한,
혹은 그 누군가를 위해 내가 준비한 밥을 꼭꼭 씹어먹고 출근을 하고,
퇴근해서는 아기 돌보느라, 아내와 얘기하느라 정신없는 저녁을 보내게 될 것이다.
장모님, 장인어른이란 생소한 단어가 입에 달라붙을 것이고 문서방이란
지금 생각하면 키득 웃음만 나는 또 하나의 호칭으로 불리기도 할 것이다.
(이쯤에서 호칭에 대한 옛날 글 - 클릭클릭)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어렵고, 거리껴지지만 늦게 하는 것만큼
잘 준비해볼 생각이다. 이제까지의 짧은 인생이 내게 친절히 설명해주듯
준비된 무언가는 준비되지 않은 무언가보다 나쁠래야 나쁠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 다 똑같애. 너도 해보면 알게될거야’라는 우울을 전하는 많은 사람들 틈에
결혼한지 수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결혼은 다르다. 특별하다라 증명해준
몇몇 멋진 형, 누나, 선배들에게서 희망을 느끼며,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 또한 그런 희망을 제시할 수 있길 깊이 꿈꿔본다.
그런 결혼 생활이라면,
돌잔치라도 참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남자들이 여럿 모여 갓 결혼한 친구녀석에게 소감을 묻는다.
“결혼 생활이 어떠냐고? 아 물론 좋지…… 근데 말야……”
놈은 잠시 주위를 살핀 후 말을 잇는다.
“결혼 전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다 좋았거든? 근데 이젠 달라졌어.”
“오오. 녀석, 변했네. 역시 사랑의 힘이구나! 그래서, 이젠 구체적으로 어떤대?”
대답이 걸작.
“여전히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다 좋아. 딱 한 명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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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있어 부산에 다녀왔다. 학교도서관에서 주고받은 쪽지의 인연으로
대학동창 옥모군이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이로써 또 한 녀석이 ‘유부’의 세계로 휘익 건너가 버렸다.
난 결혼으로 가는 긴 레이스의 중간 반환점을 이제 겨우 돈 것 같은데,
결혼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를 이제서야 조금씩 생각해보기 시작했는데,
먼저 달려간 사람들이 환호를 받으며 하나 둘씩 결승선 테잎을 끊어내는 모습이 속속 보이기 시작한다.
애아빠, 애엄마가 된 사람도 한 둘이 아니고 사공모양 같은 경우에는 벌써 두 아이의 엄마다.
하기야 선배들도, 동창들도, 동문들도, 동기들도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삼십 대니
아직은 남은 사람들이 더 많다 하더라도 결혼하는 것이, 그리고 아빠 엄마가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특히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
작년까지만 해도 별 말씀 없으시던 주위 어른들이 올해는 결혼 언제하냐는 질문을
수시로 투척하시는 것만해도 그렇다. 그 분들 보기엔 서른 살 먹은 사내녀석이
허벅지 꽉 끼는 청바지에 애들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자전거 타고 나대며
헬레레 팔렐레 거리는 꼬락서니가 영 가당치 않으실 테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결혼이 가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밤새워 웨딩사진을 찍고 청첩장을 돌리고 식장을 잡는 등 갖은 마음고생 몸고생 다하다가
마침내 그 날이 오면 말쑥한 턱시도를 빼 입고 식장에 입장하여
싱글벙글거리는 자신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마치 입시를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고등학교 2학년처럼,
군대문제는 꿈에서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스무 살 남자애처럼
목전에 이미 차르르 펼쳐져 있는 현실을 직면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다지 반항적이지 못한 얌전한 성격상 물이 목 밑에 차 오르듯 때가 차면
남들처럼 제법 잘 맞닥뜨리겠지만 아직은 멀리 두고만 싶다.
그러니 이봐요. 결혼씨. 몇 년만 날, 좀 놔둬줘요. 때 되면 어련히 찾아뵙지 않겠습니까.
작년 말인가 회사 동갑내기 여직원의 아들 돌잔치를 갔었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부부가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소감을 말하고,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애기한테 물건을 쥐어주는 등
실로 부모다운 몸짓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꽉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다.
돌잔치가 끝난 밤 혼자 거리 벤치에 멍하니 앉아 한참 동안이나 얹힌 마음을
식혀야 했던 것은 동갑이란 이유로 함부로 그 부부의 자리에 내가 서면 어떨까 하는
망령된 상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완연한 아저씨 및 아버지의 행색으로 돌잔치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당한 싱크로의 부작용으로 인해
내부신경 전체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그만큼이나 아직은 결혼이, 아버지가 되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
(사실 돌잔치는 그것만으로도 더 끔찍하다. 나중에 내 아들이 땅을 치며 원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돌잔치만은 안 하고 싶다)
무엇보다 아직 난,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만한 좋은 사람은 아니다.
정신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면 모두 부족하여 누구를 책임질만한 어른이라
자신을 규정지을 수 없다.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 거라는 자신감과 확신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기에, 조금 더 성장하고 싶다. 좀 더 매력적이고 멋진 사람이 된 후에
나를 예비되었다라 자랑스레 내세우고 싶은 것이다.
누구나 부족한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또 배우자를 통해 그 부족을 채우는 것이 결혼임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가 보기에도 못나고 텅 빈 자신을 상대방에게 던지듯 맡긴 후
네 인생을 희생하여 이를 채우라고 하는 것은 실로 무책임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무책임함을 감수하면서 사는 듯,
결혼 몇 년만 지나면 남편이나 아내나 할 것 없이 ‘애 때문에 산다’ 혹은
‘어쩌지 못해 산다’라는 무시무시한 얘기를 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된다.
사귈 때나 신혼 때의 흥분이 완연히 가신 상태에서는 다른 방면에서 서로를
끊임없이 채워줘야 함이 부부생활의 근본이 될진 데 서로에게 부어주기는커녕
상대가 부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으니 ‘결혼 생활 어때요?’란 질문에
너나 할 것 없이 한숨부터 나오는게 당연지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당연히 결혼 후의 노력도 중요겠지만 결혼식 이후엔 삶의 바퀴가 두 배는 더 빨리 돌기에,
신경써야할 것이 훨씬 더 많아지기에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기가,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에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위기를 짐작하고 노력을 시작한대도 현실적 어려움에, 무관심한 상대방의 핀잔에 이내 지쳐버리기 일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전에 평생 동안 배우자에게 바닥 없이 퍼부어줄 수 있는
성품과 지혜와 같은 금싸라기 혼수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준비해두어야 할 것 같다.
황금알을 낳는 닭 한 마리 마련하는 셈 치고 말이다.
이를 위해 작년부터 계속 하고 있는, 그래서 언젠간 이 홈페이지에도 연재할
‘사랑의 정의’에 대한 공부. 참사랑의 실현에 대한, 연구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연구 아닌 연구 등을 자기 수양과 더불어 꾸준히 진행해볼 생각이다.
실제 결혼 생활에서 효과가 있을지는 자신 없지만 말이다.
짧으면 2년, 늦으면 5~6년이다. 회사에서 모 여자후배가
대뜸 ‘선배는 평생 혼자 살아도 어울릴 것 같아요’라 칭찬과 독설이 교묘히 섞인
질시를 쏘아붙이기도 했지만 나도 언젠간 결혼을 하긴 할 것이다.
독신주의? 10년째 여덟아홉 번은 넘게 집을 바꿔가며 하고 있는 혼자만의 생활을
죽을 때까지 영위하고 싶은 생각 전혀 없다.
아마도 내가 결혼이란 것을 하게 될 때쯤엔 문성닷컴도 웨딩 분위기를 띨 것이다.
대문엔 대문짝하게 ‘우리 결혼해요♥’라 광고를 써 붙여 놓을 것이고
사진란에는 웨딩사진 몇 장 샘플로 올려놓을 것이며 화요단상엔 결혼준비에 정신없다는
푸념을 늘어놓은 후 신혼여행 다녀와선 한 여자의 남편 된 소감을 길게
난설란에 늘어놓게 될 것이다.
아침으로 과일을 갈아 마시거나 굶기 십상인 내가 누군가가 준비한,
혹은 그 누군가를 위해 내가 준비한 밥을 꼭꼭 씹어먹고 출근을 하고,
퇴근해서는 아기 돌보느라, 아내와 얘기하느라 정신없는 저녁을 보내게 될 것이다.
장모님, 장인어른이란 생소한 단어가 입에 달라붙을 것이고 문서방이란
지금 생각하면 키득 웃음만 나는 또 하나의 호칭으로 불리기도 할 것이다.
(이쯤에서 호칭에 대한 옛날 글 - 클릭클릭)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어렵고, 거리껴지지만 늦게 하는 것만큼
잘 준비해볼 생각이다. 이제까지의 짧은 인생이 내게 친절히 설명해주듯
준비된 무언가는 준비되지 않은 무언가보다 나쁠래야 나쁠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 다 똑같애. 너도 해보면 알게될거야’라는 우울을 전하는 많은 사람들 틈에
결혼한지 수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결혼은 다르다. 특별하다라 증명해준
몇몇 멋진 형, 누나, 선배들에게서 희망을 느끼며,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 또한 그런 희망을 제시할 수 있길 깊이 꿈꿔본다.
그런 결혼 생활이라면,
돌잔치라도 참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