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오래간만에 다시 학교를 찾게 되었다.
입학 10주년.
반겨주는 사람은 물론 없었지만
여유롭게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나름의 홈커밍데이를 기념할 수 있었다.
주말인지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따라서 신입생들이 우글거리는 분주한 풍경 속에
나를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건 오히려 다행이었다.
나의 10년 전 모습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후배들을 보는 건
글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도 간간히 마주친
누가 봐도 신입생으로 보이는 어린 녀석들은
그 때의 나보다는
그래도 좋은 옷도 입고 있고
샤기컷이니 뿔테안경이니
딴엔 꾸민 테가 났지만
여전히 풋내가 물씬나고
촌티가 자욱하게 풍겨나오는
영락없이 스무살이었다.
영락없는 그 때의 나의 모습이었다.
10년 전
지금은 마흔 살이 되었을
어느 88학번 선배가 학교를 찾아와
어리버리한 모습을 한 나를 보고 느꼈을 생각을
이제 내가 물려받은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입학 후 3월의 첫 번째 토요일.
서울에 갓 올라와
어차피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룸메이트와는 아직 머쓱하고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던 지라
동문 친구들 몇이랑 학교 투어를 감행했던 기억이 난다.
대략 3시간이 넘게 걸렸을 만큼 만만찮은 여정이었는데
학교 정문을 지나 경영대학, 공과대학, 사회과학대, 음미대를
모조리 짚은 후 기숙사로 돌아와
부어오른 종아리를 두드리며
풀썩 쓰러진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리고 10년 뒤
우연찮게도
역시나 3월의 첫 번째 토요일에
똑 같은 투어를 하게 된 것이다.
무수히 다녔던 강의동들
수백 번 밥 먹었던 식당들
공부하느라 숙제하느라 밤 새기 일쑤였던 도서관과 전산실
기타 이런 저런 추억이 묻은 곳들을 지날 때마다
겨울잠을 자고 있던 묵은 기억들이
기지개를 피며 일어나
오래간만이다
싱긋 웃어주는 것만 같았다.
반갑다. 반가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서
98년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밤늦도록 알탕에 소주잔 기울어가며
남들이 알아먹지 못하는 사투리를
광속으로 나발거리며
캠퍼스를 발발 돌아다니던 내가
투명하지만 분명한 윤곽을 그리며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오래된 과가(科歌)라도 끄집어내
어깨걸고 목청껏 불러대고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마음 여기저기가
거품 피어오르듯 뭉클해졌다.
고개를 돌려
98년의 나를 바라보았다.
좀처럼 생각하지 않았고
좀처럼 생각하지 않으려했던
그렇게나 어리고
촌스러웠으며
세상 물정 몰랐었고
모든게 미숙했던
스무 살의 나.
그런데,
용케도 잘 버텨왔구나.
지금 하라면 다시 못할 수많은 과제들과 시험,
지금 하라면 다시 못할 군생활
지금 하라면 다시 못할 사랑과 이별,
지금 하라면 다시 못할 많은 결정과 고민들까지
잘,
제법 잘 통과했구나.
갑자기 난 녀석이
너무도 기특해서
그냥 암 말 없이
등짝을 두드리며
꼭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맙다. 고마워.
고맙다. 고마워.
비록 10년의 세월은
공식적으로
학교4년, 군대 2.5년, 회사 3년, 휴학 0.5년으로
간단하게 계산되어 버리고
학점 얼마, 군필, 토익 얼마, 몇 개의 자격증, 현재 연봉 얼마로
잔인하게 정산되어 버렸지만
계산되고 정산될 수 없는
비공식적인 무언가들이
내 머리와 몸과 마음의
세포질 하나하나에 깊이 스며들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았다는 구태한 진리를
경외 속에 깨닫게 된다.
“아. 네! 서른 살의 문성이
스무 살의 문성으로부터
훌륭히 바톤을 넘겨받았습니다.”
10년 뒤,
다시 이 캠퍼스에 서게 된다면
그 때는 또 다시
2008년의 나와,
여전히
촌스럽고
세상물정 모르며
모든게 미숙한
서른 살의 나와 함께 걸으며
지난 10년을 회상하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정말 난,
학생회관 벽에 기대서서
나이 값 못하고
펑펑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
(아래 글은 나우누리 과게시판에서 발췌)
[성] 나의 삶 1998/06/05 01:44 | koreatic ( 문성 )
질문 6 : 죽기 전에 꼭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뭐야?
여러가지라도 괜찮아..
음.이 점만은 평범하다. 결혼해서 애들 낳고 잘 키우는 것 .
이것 못하고 죽으면 상당히 억울 할 것 같다 ^^;
음..그리고 또... 어떤 방법을 통해서는 모르겠지만
전국에 내 이름을 날리고 싶다.. 잘 되면 해외까지 알려도 좋겠고 --;
그냥..평범하게 살기 싫다는 소리겠지...이루어지긴 어렵겠지만.
질문 7 : 삶에 대한 너의 태도는?
간단히 말해 아주 긍정적이다. 때론 뭐..그렇게 생각 안 될때도 있지만..
어쨌든 삶의 끝에서 돌아보았을 때 그것은
비극이든 희극이든 인기가 있었든 없었든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드라마를 찍고 있는 중이다,,라는 생각.
(참, 앞의 인기는 김인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몰라.난 어려서부터 기독교 적인 사고가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삶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솔직히 자살하고 싶은 충동 한 번 못 느꼈을 정도로..
성격이 너무 좋은 거겠지? ^^
이만!
^^
오래간만에 다시 학교를 찾게 되었다.
입학 10주년.
반겨주는 사람은 물론 없었지만
여유롭게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나름의 홈커밍데이를 기념할 수 있었다.
주말인지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따라서 신입생들이 우글거리는 분주한 풍경 속에
나를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건 오히려 다행이었다.
나의 10년 전 모습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후배들을 보는 건
글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도 간간히 마주친
누가 봐도 신입생으로 보이는 어린 녀석들은
그 때의 나보다는
그래도 좋은 옷도 입고 있고
샤기컷이니 뿔테안경이니
딴엔 꾸민 테가 났지만
여전히 풋내가 물씬나고
촌티가 자욱하게 풍겨나오는
영락없이 스무살이었다.
영락없는 그 때의 나의 모습이었다.
10년 전
지금은 마흔 살이 되었을
어느 88학번 선배가 학교를 찾아와
어리버리한 모습을 한 나를 보고 느꼈을 생각을
이제 내가 물려받은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입학 후 3월의 첫 번째 토요일.
서울에 갓 올라와
어차피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룸메이트와는 아직 머쓱하고
그렇다고 딱히 갈 데도 없었던 지라
동문 친구들 몇이랑 학교 투어를 감행했던 기억이 난다.
대략 3시간이 넘게 걸렸을 만큼 만만찮은 여정이었는데
학교 정문을 지나 경영대학, 공과대학, 사회과학대, 음미대를
모조리 짚은 후 기숙사로 돌아와
부어오른 종아리를 두드리며
풀썩 쓰러진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리고 10년 뒤
우연찮게도
역시나 3월의 첫 번째 토요일에
똑 같은 투어를 하게 된 것이다.
무수히 다녔던 강의동들
수백 번 밥 먹었던 식당들
공부하느라 숙제하느라 밤 새기 일쑤였던 도서관과 전산실
기타 이런 저런 추억이 묻은 곳들을 지날 때마다
겨울잠을 자고 있던 묵은 기억들이
기지개를 피며 일어나
오래간만이다
싱긋 웃어주는 것만 같았다.
반갑다. 반가워.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서
98년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밤늦도록 알탕에 소주잔 기울어가며
남들이 알아먹지 못하는 사투리를
광속으로 나발거리며
캠퍼스를 발발 돌아다니던 내가
투명하지만 분명한 윤곽을 그리며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오래된 과가(科歌)라도 끄집어내
어깨걸고 목청껏 불러대고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마음 여기저기가
거품 피어오르듯 뭉클해졌다.
고개를 돌려
98년의 나를 바라보았다.
좀처럼 생각하지 않았고
좀처럼 생각하지 않으려했던
그렇게나 어리고
촌스러웠으며
세상 물정 몰랐었고
모든게 미숙했던
스무 살의 나.
그런데,
용케도 잘 버텨왔구나.
지금 하라면 다시 못할 수많은 과제들과 시험,
지금 하라면 다시 못할 군생활
지금 하라면 다시 못할 사랑과 이별,
지금 하라면 다시 못할 많은 결정과 고민들까지
잘,
제법 잘 통과했구나.
갑자기 난 녀석이
너무도 기특해서
그냥 암 말 없이
등짝을 두드리며
꼭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맙다. 고마워.
고맙다. 고마워.
비록 10년의 세월은
공식적으로
학교4년, 군대 2.5년, 회사 3년, 휴학 0.5년으로
간단하게 계산되어 버리고
학점 얼마, 군필, 토익 얼마, 몇 개의 자격증, 현재 연봉 얼마로
잔인하게 정산되어 버렸지만
계산되고 정산될 수 없는
비공식적인 무언가들이
내 머리와 몸과 마음의
세포질 하나하나에 깊이 스며들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았다는 구태한 진리를
경외 속에 깨닫게 된다.
“아. 네! 서른 살의 문성이
스무 살의 문성으로부터
훌륭히 바톤을 넘겨받았습니다.”
10년 뒤,
다시 이 캠퍼스에 서게 된다면
그 때는 또 다시
2008년의 나와,
여전히
촌스럽고
세상물정 모르며
모든게 미숙한
서른 살의 나와 함께 걸으며
지난 10년을 회상하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정말 난,
학생회관 벽에 기대서서
나이 값 못하고
펑펑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
(아래 글은 나우누리 과게시판에서 발췌)
[성] 나의 삶 1998/06/05 01:44 | koreatic ( 문성 )
질문 6 : 죽기 전에 꼭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뭐야?
여러가지라도 괜찮아..
음.이 점만은 평범하다. 결혼해서 애들 낳고 잘 키우는 것 .
이것 못하고 죽으면 상당히 억울 할 것 같다 ^^;
음..그리고 또... 어떤 방법을 통해서는 모르겠지만
전국에 내 이름을 날리고 싶다.. 잘 되면 해외까지 알려도 좋겠고 --;
그냥..평범하게 살기 싫다는 소리겠지...이루어지긴 어렵겠지만.
질문 7 : 삶에 대한 너의 태도는?
간단히 말해 아주 긍정적이다. 때론 뭐..그렇게 생각 안 될때도 있지만..
어쨌든 삶의 끝에서 돌아보았을 때 그것은
비극이든 희극이든 인기가 있었든 없었든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드라마를 찍고 있는 중이다,,라는 생각.
(참, 앞의 인기는 김인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몰라.난 어려서부터 기독교 적인 사고가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삶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솔직히 자살하고 싶은 충동 한 번 못 느꼈을 정도로..
성격이 너무 좋은 거겠지? ^^
이만!
^^
댓글 6
-
wonjo
2008.03.10 10:12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아리다. -
문★성
2008.03.11 06:48
자네랑 나는 입학 10년을 기념하여 가볼 때가 좀 있네. 63빌딩 볼링장, 서울대 입구 만화방 등등. -
이치훈
2008.03.14 10:22
어이쿠..63빌딩 볼링장이라하면...거기아닌가.. -
문★성
2008.03.14 14:29
엉. 거기 맞다. ^-^;;;; -
미영
2008.03.15 11:53
나도 작년 가을에 학교에 간적이 있는데 기분이 새롭더라.
하지만 길을 잃어서 버들골로 가려다가 돌고돌고 학교다닐때도 안가봤던 오만길을 다 돌아 겨우 내려왔지... -
문★성
2008.03.16 11:32
다들 향수에 한 번쯤 취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것이죠. 10이라는 단위가 가진 힘인 것 같다. 근데 4년 동안 안 가본 곳이 있냐-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