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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거짓말#4

문★성 2008.01.06 13:20 조회 수 : 130

거짓말 그 네번째.
나름 엑셀에 차트까지 만들어놓고 체계적으로 구성하려고
애는 쓰고 있는데 기대만큼 잘 이어지지는 않네요.
그래도 이런 식으로 몇 편 더 쓰다보면
제법 자리 잡힐 것도 같습니다.
==============

제가 어디까지 말했었나요? 아. 그렇죠. 지하실에서 아내의 비명소리를 들었다고까지 말씀 드렸었죠. 예. 예. 그 소리를 들은 후 넘어질 듯 허둥대며 1층으로 올라왔는데 말이죠.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어디 흔적조차 보이지 않더라고요. 머리 속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고 전신의 신경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등에 식은 땀이 여러 줄 흘러내리는데, 한 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서있었을만큼, 그만큼 당황했습니다. 제가 원래 잘 그러지 않는데 말이죠. 허헛.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죠. 일단 아내부터 찾아야겠다는 들어 무작정 아까 걸어온 거실 쪽으로 뛰어가 방 하나하나를 뒤져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물론이고 딱히 달라진 점 하나 찾을 수 없었죠. 내가 너무 흥분해서 제대로 살펴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걸 제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래도 그 때는 마음을 가다듬기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아내의 비명소리를 분명히 들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온데간데 없단 말입니다! 이건 아무리 저 같은 무식한 놈이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요.

그렇게 한참을 뒤져봤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같은 방을 두세 번씩 들락날락거릴 정도로 정신도 없었고요. 그러다가 2층에 있는 명호와 보라가 생각났습니다. 그 사람들이라면 뭔가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내가 그들과 같이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래서 2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후다닥 뛰어갔습니다. 아까 지하실에서 올라왔듯 한 걸음에 계단으로 뛰어올랐죠. 제가 동작 하나는 무지 재빠르거든요. 그런데 계단 한 중간에 세상에, 시커먼 덩어리 하나가 놓여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밟을뻔했죠. 겨우 피해 난간에 몸을 의지한 후 살펴봤는데 한 눈에 뭔지 알아볼 수 있었죠. 영호였습니다.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며 엎어져 있는게 누가 뒤에서 후려갈긴게 분명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몸을 살펴봤습니다. 코나 목에 손을 대볼 필요도 없이 죽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더군요. 하긴 형사님도 보셨겠지만 뒤통수의 상처가 어마하게 컸잖습니까. 그렇게 맞으면 죽는게 당연한거죠.

굵은 침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갔습니다. 아까 세희, 제 아내의 비명소리에 이어 명호까지 눈 앞에 죽어있으니 아찔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내에 대한 걱정과 죽은 명호에 대한 안타까움도 안타까움이지만 다음은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엄습하더군요. 그런 생각을 드니, 아 정말 쪽팔리지만 도저히 거기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몰래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시 거실로 도망치듯 달려왔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까 뒤져봤을 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거기만은 안전할 것이라고 판단했었습니다.

거기서 방 하나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자리에 앉아서야 비로소 마음이 다 잡히고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아내의 비명소리를 들은 후부터 한참 동안은 저도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제가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명호를 죽였다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오해 마십시오. 그냥 당황했다는 것뿐이니까요.

방에서 숨을 가다듬으며 찬찬히 생각해봤습니다. 1층에는 분명 아무도 안 보였고 명호는 계단에서 1층 쪽을 향해 누워있었으니까 범인은 2층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라씨가? 하지만 그녀가 그럴 사람은 아닙니다. 명호와 오래 알고 지낸지라 보라도 심심찮게 보아왔지만, 제가 아는 그녀는 말수가 없이 조용한 나약한 스타일의 여자거든요. 명호와 아내를 해쳤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더군요. 제가 이래봬도 사람 보는 눈은 있다, 이겁니다.
오히려 전 제 아내가 의심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지금도 아내가 제일 의심스럽습니다. 왜냐면…… 에잇 사실 전 무식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본능적으로 아내가 범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명소리도 거짓인 것 같고요. 형사님께서 아내도 취조하시겠고 뭐 잘 알아서 판단하시겠지만 말입니다. 아내는 뱀 같은 여자입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어쨌거나 당시로선 아내를 찾는 것이 답이 될 터였습니다. 저는 2층으로 다시 올라가기로 하고 방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방문을 여니 놀랍게도 거실 한 복판에 아내가 떡 하니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비명소리를 허투루로 만든 것이라는 제 판단이 정확했죠. 뭘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놀라기는 아내가 훨씬 더 놀랐죠. 저를 보자마자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으니까요. 발이 얼마나 빠른지 2층으로 뛰어올라갔는데 삽시간에 제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더라고요.

저는 명호의 시체를 비켜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가며 아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범인이라면 보라도 성하지는 않을 테고 또 그 머리에 또 어떤 잔꾀를 부릴지도 모르니 조금은 조심스러웠습니다. 명호처럼 제 뒤통수를 후려치려고 노리고 있을테니까요. 그런데 2층에는 방이 어찌 그리 많은지 무슨 호텔 객실에 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걸 무식하게 하나하나 뒤지려니 거참 환장하겠더라고요.

그렇게 한참을 뒤지다가 형사님을 재수없게……아니, 저 운이 좀 없게 맞닥뜨린 것이죠. 그 저택이 시내에서 그리 가까운 것도 아닌데 어디 근처에서 회식 중이셨습니까?

하여튼 오히려 이렇게 현장에서 체포되니 마음은 편합니다. 범인이 누군지 제가 구태여 밝힐 필요도 없고, 죽은 시체 숨기니 마니 하며 난리 북새통 피울 필요도 없으니까요. 어쨌든지 저는 단순 가택침입 절도 정도의 형량만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설마 제가 명호를 해쳤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니시겠죠? 보시다시피 저는 좀 무식하고 힘만 앞세우며 살긴 하나 그럴만한 머리는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형사님이 전문가시니까 제일 잘 아실거예요. 제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제 자신을 보호하려고 그랬던 것 뿐임을, 이제 형사님도 충분히 이해하실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대체 범인은 누구랍니까? 아내가 맞지요? 아니면 애초부터 2층에 숨어있던 또 다른 사람인가요? 거참 궁금합니다.


제4부 근식의 두번째 진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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