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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07 문성대상(文成大賞)

문★성 2007.12.19 22:00 조회 수 : 294


엑셀에 매크로로 깐깐하게 코딩하여 1년 동안 꼼꼼하게 기록해오던 가계부 파일과 핵심가치, 장기계획, 중기계획, 단기계획 및 하다못해 내가 2005년부터 읽어온 책 리스트를 적어둔 파일들이, 그리고 기록하기 좋아하는 내 습성이 자아낸 그 밖의 각종 데이터파일들이 모두 사라졌다. USB 메모리가 우스꽝스러운 실수로 인해 뚝 부러졌기 때문이다.
비참하게 조각난 USB를 바라보며, 그 속에 쏟아 부었던 내 열정과 노력을 생각하며 한참을 멍해있었다. 왜 백업을 안 했을까 하는 후회를 한게 아니라 상실, 그 자체가 주는 충격에 마비되었던 것이다.
  
살다보니 이렇게 자꾸만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된다. 물론 상실은 인생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무언가를 떠나 보내는 것은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부던히도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 못지 않게 잃은 것도 많다. 2007년도 마찬가지였다. 부서진 USB처럼 남들이 뭐라 해도 내겐 소중했던 것들이 떠나갔다. 어떤 것들은 내 의지대로, 어떤 것들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리고 또 어떤 것들은 의지의 개입여부조차 파악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사라졌다.

이제 며칠 후면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것 하나를 또 잃게 된다. 그것은 스무 살의 특권으로 청춘을 극한까지 만끽할 수 있었던 십 년의 세월, 나의 이십 대이다.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일종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예전에 내가 쓴 어느 글처럼 나이 먹는 것이 ‘Growing’이 아니라 ‘Aging’을 뜻하게 되는 시점부터는 말이다. 서른 살은 그 반환점일 것이다. 팽팽했던 피부가 늘어져 주름지기 시작하고 머리카락은 힘을 잃으며 배는 옛날 그렇게 경멸했던 아저씨들처럼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고 마음껏 누려오던 삶의 자유는 무겁게 압박해오는 세상의 기준에 제약당하여 대부분 의무로 치환되는 시점, 그것이 서른일 것이다.

물론 난 그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더욱 자신을 옥죄여 아등바등 살 것이다. 잃어버렸지만 잃어버리지 않은 것처럼, 잃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자신을 포장할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 모든 것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늙고 약하며 외롭고 가진 것도 없고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것을 객관성과 더불어 내 스스로가 무릎 꿇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날이 올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왠지 서른 살이 되면서 서서히 시작될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난 벌써부터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난 2007년의 끝자락을 다시 한 번 붙잡고 말을 건네보려 한다. 곧 떠나갈 녀석임을 알고 있지만 이 녀석과는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다. 하나라도 더 물어보고 싶다. 난 너와 1년 동안 어떻게 살아온 거니? 나 잘 살아온 것 맞지? 최선을 다한 것 맞지? 내가 내린 결정들은 옳은 결정들이었지? 라고 말이다.

2007년 문성대상(文成大賞)은 연기대상이나 가요대상처럼 즐겁고 축하하는 심정이 아니라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 아쉬움으로 썼다. 내용은 일기와 여기저기 남겨놓은 기록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1. 오프닝 스테이지
---------- 2007년 1월 1일의 일기
새해 첫날, 별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집에서 좀 쉬다가 새마을호를 타고 왔는데 뻘짓이었다. 왜 이렇게 판단력이 부족할까나. 돈도 거의 차이 안 나고 시간은 한 시간 더 걸리는 새마을호를 20분 먼저 온다고 KTX를 버리고 갈아타다니 뻘짓도 이런 뻘짓이.
집에 와서 정리 좀 하다가 만사마 전화가 와서 라이딩을 둔산까지 다녀왔다. 만사마가 밥 먹여준 후 집까지 태워다 줬으니 잘 쉬고 왔지. 첫날부터 계획은 좀 어긋났지만 그래도 이렇게 불러주는 사람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다행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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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은 위와 같이 평범하게 시작했다. 아마 내년 1월 1일도 별 감흥없을 것이다. 괜히 센치해지기보다는 하루하루의 삶에 더욱 충실하는게 아무래도 낫겠지. 다만 내년 1월 1일에는 만사마형이랑 라이딩을 못하는게 아쉽지만 말이다.


2. 올해 가장 즐거웠던 일은?
-         자전거 여행 성공

아무리 큰 행복이라도 공으로 받는 것보다는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게 상대적으로 감격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자전거 여행은 내게 무척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밖에 조카탄생! 토익대박! 결혼식첫사회! 미국다시방문! 문성닷컴재오픈! 문성찾기성공! 자기계발스터디모임 개설! 그리고 여기 밝힐 수 없는 몇몇 등 올해는 즐거운 이벤트들이 참 많았다. 너무 감사하다.


3. 올해 가장 어이없던 일은?
-         볼거리 재발사건      상세설명


예비군 훈련 중 머리에 송진이 주먹만한 크기로 떨어진 해프닝을 누르고 볼거리 재발을 가장 어이없던 사건으로 선정. 송진 떼는 것도 엄청 고생했다. 결국 퐁퐁이 답이더만.


4. 올해 가장 슬펐던 일은?
-        ...이건 생략합시다…


5. 올해의 인물은?
-        긍정의 힘의 저자 미국 레이크우드 교회의 조엘 오스틴 목사.
이 분 동영상을 긁어 모아 한 달여 동안 하루에 한 편씩 봤는데 정말 놀랍게도 하루하루 마인드가 긍정적으로 변함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일기장에서 불평, 불만이 사라졌고 웬만한 심적 어택은 가볍게 튕겨낼 정도로 내성이 강해진 것을 느낀다. 이 분의 말씀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은혜이다.

언젠가 텍사스에 위치한 레이크우드 교회로 찾아가고자 한다. 인터넷으로 위치까지 파악해두었다. NBA 관람하는 것보다 훨씬 뜻깊을 것 같다.


6. 올해의 최고의 지름은?
-            자전거 샴푸구입

---------- 2008년 2월 11일의 일기
그래, 내 살림에 무리한 건 안다. 뭐. 그래도 인생에는 지름이 필요한 거니까. 자주는 아니고 가끔은 말이다.
에잇, 변명이 구차하다!! 하긴 이 정도 수준의 지름인데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가 없지, 암. 흑. 에잇 몰라. 대전-영천 라이딩만 한다면 이 모든게 만회될 터인데, 추석에는 할 수 있으려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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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하기 이를 때 없는 변명과 함께 올해 산 것 중 가장 비싸다는 면에서 ‘최고’의 지름. 결국 멋지게 만회했다는 점에서도 역시 ‘최고’의 지름


7. 올해의 드라마는?
-           노다메 칸타빌레
하얀거탑과 치열한 경쟁 끝에 겨우 골랐다. 그러고 보니 사실 올 해 제대로 본 드라마가 이거 둘 밖에 없군. 하여간 한참 클래식에 대해 관심을 가져갈 무렵 본지라 타이밍이 좋았고 간만에 싱그러운 웃음에 부담없이 마음을 맡길 수 있어 좋았다.

드라마는 내년에도 가능하면 안 보려고 한다. 프리즌 브레이크나 태왕사신기가 유혹이 되긴 하는데 내 약한 의지를 생각해봤을 때 한 번 보면 헤어나오지 못하니까 가능하면 발도 안 담구는게 옳다. 게임 한 번 빠지면 오타쿠처럼 주인공 피규어까지 사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니까. 물론 노다메도 위험했다. 치아키 옷 입는 것보고 따라 하려고까지 했단 말이다.  


8. 올해 가장 감명깊게 들었던 음악은?
-           You know Better Than I
연초에 회사생활에 너무 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지쳤을 때 알게 되어 큰 힘을 얻은 곡. 주말에 자전거 타고 회사가면서 계속 불렀던 기억이 난다. 까놓고 내가 인생에 대해 뭘 알겠는가. 나름 계획도 많이 세우고 열심히도 산다만 과거에 대한 해석과 현재의 어려움에 대한 해답, 앞으로의 일에 대한 불안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난 그 모든 것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대신 그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을 믿고 맡기는 것이다. 그 분이 나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You know better than I. You know the way. I'd let go the need to know why for You know better than I"
1년 동안 가요는 별로 안 들은 것 같다. 그래도 굳이 2등을 고르라면 윤하의 비밀번호 486. 이런 목소리 참 좋다.


9. 올해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는?
-           수상작 없음
99년 영화감상문을 시작한 이래 가장 적은 편수의 영화를 봤다. 그만큼 삶의 여유가 없었다라기보다는 다른 활동에 치중했기 때문일 테다. 그나마 본 것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대단한 영화는 한 편도 없는 것이 사실. 올해 나온 영화들이 다 별로라기 보다는 내가 너무 적게 봐서 그럴 것이다. 그나마 하나 골라 보라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정도? 어쨌든 수상작 없음.


10. 2007 문성대상 (두두둥)
-           앤쏘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올해 내 삶에 큰 가속을 실어준 책이다. 네 번은 족히 읽은 듯.

한참 자기계발에 목말라 닥치는 대로 각종 서적을 흡수하고 있을 때 추천받아 읽은 책으로 한참 관심이 있던 분야라서 그런지 연이어 등장하는 새로운 개념들을 그야말로 무릎을 치면서 빨아들였다. 이후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이 개념들을 내 삶에 제법 잘 적용시키는데 성공하였고 기대 이상으로 큰 변화를 맛볼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에 수록된 ‘가치순위를 조절하기’를 그 동안 내 자기계발의 근간을 이뤄온 스티븐 코비의 ‘일곱가지 습관’과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에 내 멋대로 접목시킴으로써 살아있는 동안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비전을 조금이나마 뚜렷하게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매일매일의 삶의 질도 제법 업그레이드 되었다. 나중에는 이 책과 그 동안 공부했던 여러 이론들을 종합하여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마치 자기계발 컨설턴트인양 수 차례 소개해주기 시작했는데 나도 즐겁고 사람들의 반응도 아주 좋아서 뿌듯할 정도다. 이모저모로 올해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11. 클로징 스테이지: 스무살의 일기를 꺼내며
---------- 1998년 5월의 일기
또 다시 일기를 시작한다. 분명 대학 와서 처음 쓰는 일기는 아니다. 몇 번이고 계속 도전해본다. 이 번에도 같은 경우인 것 같다. 이렇게 시작된 일기가 십여일 지속된다면 지난번처럼 3년, 4년 계속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시작이 그렇게 가치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 하루하루가 소중히 여겨진다면, 하루하루가 많은 사건들로 가득찬다면 이 일기도 분명 계속될 것이고 어쩌면 수년, 수십년 동안 쓰여질 일기들의 위대한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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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 몇 개월 일기를 계속 못 쓰고 있었다. 일기장만 몇 번을 갈아치웠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5월 달에 위 일기를 쓴 후부터는 약간 흔들리기는 했어도 근 구년을 거의 쉼 없이 쓸 수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만 반까지 유지하는 것은 시작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지난 십년을 내게 있어 어떠한 ‘시작’이라 봤을 때 앞으로의 십년은 이를 내 인생 끝까지 관철할 수 있는가를 가늠할 시기가 될 것이다. 많은 흔들림이 있을 것이고 내 운신의 폭은 더 좁아질테니 한층 어려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내 이십대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만큼은 ‘위대한 시작’이었기에, 앞으로의 십년도 그리 쉽게 호락호락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위의 일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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