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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핫싼씨에게 빠져듭니다 ep2

문★성 2007.11.29 05:24 조회 수 : 392

태양이 뜨겁게 대지를 덥히는 어느 더운 겨울날.
핫싼씨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한참 주시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그 날 따라 하늘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며 조금씩 울렁거리고 있었고 숨을 내쉬니 하얀 입김이 공중에 날파리 문양을 만들며 흩어졌다.
뿐만이 아니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유유히 날아가다 핫싼씨 얼굴을 힐끔 쳐다보고는 갑자기 두 번 꺼억 트림을 한 후 땅으로 툭 떨어져버렸다. 핫싼씨는 15층 베란다에서 아파트 앞마당에 벌러덩 누워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까마귀를 내려다 본 후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곧, 비가 오겠구나”

핫싼씨는 얼른 대청마룻바닥에 대자로 누워 자고 있는 두 딸을 군화발로 토닥토닥 보듬어 깨웠다. 오늘이야말로 고비사막에서 흙을 퍼 담아올 적기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작업이 쉽지 않다. 그게 얼마나 흙탕물 사업에 지장을 주는지는 작년 ‘펜실베니아연합 흙탕물 판매상 총 협의회’, 줄여서 ‘펜흙판총협’에서 ‘우천기후’를 흙탕물 장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5대 악의 축 중 하나로 지정하여 선포한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물론 팬흙판총협 회원사는 핫싼씨의 흙탕물스토리밖에 없기 때문에 5대 악의 축 따위는 핫싼씨 혼자 기안하고 발제하고 의결하고 결제하고 공표했다. 참고로 나머지 4대 악의 축은 ‘더울 때’, ‘추울 때’, ‘눈 올 때’, ‘울적할 때’로 핫싼씨가 주로 일하기 귀찮아하는 때이다.

장면이 바뀌어, 핫싼씨와 두 딸, 그리고 간식용 파전제공을 위해 머리채 잡혀 끌려온 첫째 아들이 고비사막에 도착한 것은 점심을 갓 넘겼을 때였다. 최근 고비사막까지 지하철이 뚫려서 가기가 상당히 편해졌지만 짐을 날라야 하기 때문에 핫싼씨는 업무용 트럭을 이용하고 있다. 핫싼씨 같은 사람들 때문에 지하철 4호선 '고비사막역'은 늘 한적한 편이다.

차에서 내려서 하늘을 바라보니 푸르등등한 것이 역시나 아침의 예감대로 금새라도 비를 쏟아부을 것 같았다. 핫싼씨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 나머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거리며 휘파람이나 불고 있었는데 그걸 알아챘는지 땅 여기저기를 질끈질끈 밟아보며 흙질을 가늠하던 첫째딸이 분연히 핫싼씨에게 뛰어와 눈을 서너번 부라리고 입술을 두어번 실룩거린 후 따지듯 말했다.

“아버지!!!”

“왜 그러느냐. 딸아. 보기 심히 흉하구나. 아무리 내 딸이지만.”

“오늘 우리가 이렇게 무리해서 나온 이유가 뭐라고 하셨죠?”

“녀석. 아까 얘기했지 않느냐. 날씨를 보아하니 곧 비가 올 것 같아서이다.”

“그렇다면 오늘 곧 비가 온다는 말씀이잖아요?”

“보면 모르겠느냐.”

“그럼 그럴수록 오늘 나오면 안 되는 거잖아요!! 비 오는 것 뻔히 알면서 나오는 바보짓이 어디 있냐고요!! 그동안 쌓아둔 재고가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일하다가 비오면 어떡하란 말예요오오!!”

“….”

첫째 딸은 제법 현명했다.

“뭔가 말 좀 해보세요. 아버지!”

“딸아, 네가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는구나”

“…그.. 그게 뭔데요?”

“…”

“…”

“미안. 나도 둘은 모르겠구나. 이따가 너희 엄마한테 물어보도록 하자”

“…아버지..”

그 때였다.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목이 쉰 남자가 블루스를 추면서 대못으로 유리장을 긁어대는 듯한 기분 나쁘고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핫싼씨와 첫째 딸은 대화를 잠시 멈추고 소리 나는 곳으로 냅다 뛰어갔다. 옆에서 파전 구우려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던 첫째 아들도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비닐장갑을 벗고 같이 달려갔다.

둘째 딸이 뒤로 나자빠져있었다. 무언가에 크게 놀란 모양인지 1제곱센치미터에 육박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눈물과 눈곱으로 그렁그렁했다. 왜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둘째 딸의 3m 정도 앞 땅바닥에서 시커먼 연기가 굵은 기둥을 만들어내며 하늘로 치솟고 있었던 것이다. 땅 밑에서 모닥불이라도 지피는지 전혀 끝나지 않을 듯한 기세로 연기는 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흙을 퍼 담으려 후려쳐.. 아니 그냥 살짝 톡 귀엽게 건드렸는데 갑자기 연기가 피어 오르는 거예요. 잉”

“음 이상한 일이로군. 아무튼 우리 귀여운 둘째 딸이 많이 놀란 모양이구나. 그렇게 끔찍한 비명소리를 낸 걸 보니”

“…아녜요, 아빠. 난 그냥 유전 하나 발견한 것 같아서, 이제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되는구나 해서… 인생역전이라는 생각에 환희에 찬 환호성을 내뱉었을 뿐인걸요”

“…목이 쉰 남자가 블루스를 추면서 대못으로 유리장을 긁어대는 듯한 그 소리가 환호성이었냐. 그리고 연기나는게 다 유전이면 우리집 부엌도 유전이겠다”

이런 대화가 오갈새 파전 부치기에 능한 첫째 아들은 연기 기둥 옆에 가까이 다가가서 여기저기를 곰곰이 살펴보고 있었다. 이미 연기는 하늘 끝까지 뻗어나간 듯 커다란 구름 하나를 관통하고 있었고 어느새 장정 세 명이 손을 잡고 껴안아야 할 정도로 굵어져 있었다.

“아들아. 그거 왠지 위험할 것 같으니 건드리지 않는게 좋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아버지, 이것 보세요. 요렇게 파전용 주걱으로 툭툭 치면요.. 보세요. 연기처럼 보이는데 딱딱 소리가 나요. 딱딱. 이상하죠?”

실로 그랬다. 분명 기체의 일종일 텐데, 그 피어나오는 꼴이나 바람에 사르르 흔들리는 모양이 연기가 분명할진대 마치 고체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핫싼씨는 다가가 기둥의 한 면을 만져보았다. 뜨겁지도 않았고 아들 말대로 딱딱했다. 순간 핫싼씨의 뒤통수를 알싸하게 때리는 깨달음이 있었으니.

“아들, 그리고 딸들아”

“네 아버지”

“나를 봐라. 이 아버지의 늠름한 기상을 췌장 깊숙이 느껴보도록 하여라.”

핫싼씨는 슬그머니 폼을 잡더니만, 갑자기 폴짝 뛰어올라 연기기둥에 올라탔다. 고목나무에 매미가 달라붙듯 기둥에 매달린 것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하늘을 향해 움직이는 연기와 더불어 핫싼씨의 몸도 점점 공중으로 떠올라가기 시작했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분명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우하핫핫! 내 이럴 줄 알았다! 이건 바로 재크의 콩나물인게야!!"

일대의 영웅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 하늘로 승천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첫째 딸이 조용히 구시렁거렸다.

“올라가시면 어떻게 내려오시려고…”

둘째 딸이 말했다.

“물 길어와서 여기 부으면 꺼지지 않을까? 아. 그러면 아버지 땅에 떨어지시겠다”

첫째 아들이 말했다.

“글쎄. 누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정말 아버지 말대로 재크의 콩나물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이 이상한 연기만 봐도 뭐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이건 마치...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비둘기호 통근열차 같은 것인지도 몰라”

첫째 딸이 꾸짖듯 말했다.

“콩나물이 아니라 콩나무겠지. 어쨌든 난 아버지를 따라 올라갈테니까 너희는 집에가서 어머니께 이 사실을 보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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