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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평균의 삶

문★성 2007.11.05 17:42 조회 수 : 280

여기 들어오시는 분들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나는 겉으로는 얼추 예의 바르고 싹싹한 듯 보이나
실상은 삐뚤어지고 모난 생각으로 가득 찬 아니꼬운 아이로서,
속내를 까뒤집어보면 발음 불분명한 막말과 싸가지 없는 훈계,
차디찬 잔소리와 버릇없는 참견의 남발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지만 날 밥먹여 연명케하는 이 사회란 바닥은 잔인하고 냉엄하기가 가차없으며
그 속의 키도 작고 눈도 작고 아무튼 이것저것 작디작은 나는
어떻게든 조신이 처신해야할 가련하고 청초한 한 떨기 수선화와 다름없기에
공적으로는 싸가지 없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의 조심을 더하고 있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께서 즐겨하시는 인생에 대한 일장연설에는
2분의 1 티스푼의 토도 달지 않고 고개를 수직으로 끄덕여가며 경청하고 있는데
실로 이는 나 같은 꼬꼬마 녀석의 필수적인 머스트 해브 애티튜드인 것이다.

물론 어른들의 이야기에는 배울 점이 많다.
그분들의 혈중알콜농도가 운전시 면허정지 레벨에 도달하실 쌔 자기 혀를 농밀이 휘감으시며
‘내카 니히 나히 만할테는 말히치’ 식의 매우 미쿡스러운 스타트로 시작하는 강좌을 청취해보면
앞으로의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것이며, 어떠한 어려움들을 겪을 것인지로 시작하여
[여기까지는 문제]
그리고 자기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그 모든 난관들을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는지 각종 레퍼토리를 섭렵하신 후에
[여기까지는 예제]
더불어 인생을 쥐뿔도 모르는 어린 문성은 이를 무슨 수로,
어떠한 마음자세로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여기까지는 답안]
종합세트로 묶어 마치 수 대를 거쳐 내려온 비기(秘技)이자 비전(秘傳)인양 친절히 설파해주시는 것이다.
보통 이런 식의 숙취스피킹은 수식어가 지나치게 많고 발음이 빨간머리 앤
양갈래머리처럼 마구 꼬이며 주제 자체도 여차하면 삼천포로 바로 새기 때문에
청자 입장에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데 연거푸 들어보면 그래도 제법 일관된 메시지는 있다.
정리하자면, 남들 하는대로 얼른 빚내고 차사고 집사서
몇 년 거치 몇 년 상환으로 허겁지겁 갚아가고
빨리 결혼하고 애 낳아서 그 녀석 키우는 재미에 겨우겨우 살아가며
사는 낙 별로 없으니 취미생활 몇 개 만들어 마누라 눈치 봐가며 힐금힐금 즐기다가
연봉인상률과 주가등락에 희로애락을 절감하며 사는게 바로 인생이다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조금의 틀림도 없다. 모범답안이며, 정답이다.
이미 지난 수십년 동안 충분히 검증 되었으며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끊임없이 증명되고 있는,
이른바 대한민국 코리안의 노멀 라이프, ‘평균의 삶’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문장 하나하나를 잘 뜯어내어 칼로 썰고 기름에 데친 후
간을 내고 접시에 담아서 후루룩 맛을 보면
수십년 전 홍모 선생님이 구국의 결단으로 세계 유수(주로 일본)의 참고서를
‘한국적’으로 재창조하여 펴내신 ‘XX의 정석’을 연상시킬만큼
기출문제는 세월의 향기가 묻어 오래된 태가 나고
저자 직강 예제는 수능출제문제와는 살짝쿵 시간차를 두는 것 같으며
해답 및 풀이는 카르마의 정리라도 되는양
‘본 문제는 사실 니가 어쩔 도리 없이 못 푸니 펜 그만 놓으세요’로 귀결되고 만다.

즉, 이는 틀림이 없는 말이로되 나를 설레게 하지 못한다.  
모범답안이긴 하지만 양각의 자극을 전해주지 않는다.
정답임에 분명하지만 반숙이 될만큼의 들끓음도 선사해주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평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렇게 살았으니 너도 그렇게 살거라는 답답한 가정에서,
인생의 큰 줄기는 이놈이나 저놈이다 다를 바 없다는 자포자기적 가정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대한민국 남성과 여성의 초라한 일생을 개탄하는 글을 가끔 보곤 한다.
사십대에 가정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직장에서 무시당하다가
사망률 세계 1위를 기록하며 쓰러져가는게 대한민국 남성이라고 하고
집과 직장에서 각종 무시와 차별을 당하다가 애 낳고는 예전의 총명함과 지혜,
아름다움을 상실한 채 몰상식한 아줌마로 변태하여 살아가는게 대한민국 여성이라고 한다.
상당 부분 맞는 소리이기에 많은 이들이 통감하며, 슬퍼하며,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불행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말이다.
그 흐름을 역류하려는 사람, 거슬러 오르자라고 격려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두들 그런 인생이 싫다, 끔찍하다라고 말하면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물론 ‘평균의 삶’을 벗어난 분들은 인터넷 댓글 따위 달 시간에 열심히 자기 인생을 경주하고 있겠지만)

아무래도 삶은 그런 서글픈 평범함에서 벗어나 좀 특별해야하지 않을까.
이왕 한 번 사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짧은 인생, 남을 판박이한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 모델이 되는 모범답안, 즉 ‘평균의 삶’을 사실
누구도 존경하거나 갈망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만일 내게 인생을 정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노력’이라는 가정을 추가할 것이다. ‘열정’과 ‘의지’라는 가정을 덧붙일 것이다.
발버둥치며 부딪치고 또 부딪쳐 모두를 동일한 좌표로 수렴시키고야 마는
강퍅한 삶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 멋진 인생이라고 말할 것이다.
꼭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꼭 성공해야한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한계, 그로 인한 모든 변명과 합리화를 뒤집으려는 노력을
후회없이 했다는 것만으로 스스로에게는 크나큰 위안과 용기의 원천이 될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내실은 거듭 여물어졌기에 이미 특별한 삶에 다다름에 다름 아니다.
라고, 나는 말할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이러한 인생에 대해 하나의 증인으로 당당히 증언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소원한다.
새파란 젊은 녀석을 앞에 앉혀놓고
‘너도 뻔한 인생이야. 어쩔 수 없어. 그러니까 그냥 대충 살아’가 아니라
‘너는 정말 특별한 인생이야. 노력하면 충분히 더 멋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라
싱긋 웃으며 말해줄 수 있는 인생의 선배가 되기를 소원한다.
비록 내 능력의 부족과 불운으로 제자리에서 한치 나가지 못하는 자맥질로 끝날지라도
있는 힘껏 버둥거려 보았다는 얘기는 자랑스레 전해줄 것이다.
아마 그 때의 내 모습은, 글쎄 요모조모로 꽤나 멋있어 보일 것 같다.  
분명 눈초리 하나만큼은 빠지직 불타오르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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