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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거짓말 #3

문★성 2007.10.06 05:20 조회 수 : 151

문성의 네 번째 소설, 7부작 ‘거짓말’입니다.
부부인 '근식'과 '세희'의 이야기(거짓말?)를 차례로 들었고
이젠 남편 명호을 잃은 '보라'의 이야기(거짓말?) 입니다.
변함없이 진지하게 나갑니다.

--------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사실 아직도 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있기는 합니다. 몸도 많이 안 좋구요.

그이가. 죽은 남편이 자꾸 꿈에 나와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원수를 꼭 좀 갚아달라는데,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잠에서 깨어나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정말, 괴롭습니다.

이렇게 범법행위를 저질러 취조당하는 것도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스런 일인데

남편까지 잃었으니 후회가 너무 커요. 모든게 다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

간절합니다.


다른 분들께 대강의 전말을 들으셨다니 저희 쪽 이야기만, 간단히 말씀드릴까 해요.

식당에서 논의한 대로 1층은 근식씨와 세희씨가 맡기로 했고

제 남편과 저는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저희가 2층으로 가길 원했던 것은 아니고,

역시나 근식씨의 그 못말리는 밀어부침 때문인데요.

그래서인지 그이는 기분이 많이 상해있었습니다.

물건이야 늘 그랬듯 작업완료 후 계산해서 나눠가지면 되는거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근식씨가 마치 자기가 리더라도 되는 양

마구 우겨서 결정한 거니까요.


두 사람은 십 년 넘게 동업을 해오긴 했으나 사이는 안 좋은 편입니다.

근식씨는 남편의 약삭빠르고 영리한 면을 고까워했었고

그이는 그이대로 근식씨의 무식하리만큼 저돌적인 모습을 싫어했었죠.

그래도 상대방의 그런 면들 때문에 혼자 일을 진행할 때보다 얻는 장점이 많아

이렇게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손을 잡곤 하는데요.

아무래도 근식씨가 늘 과격하게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학원까지 나오고 머리도 좋은 남편을 나름 존중해주는 측면이

내실 없지는 않았고, 남편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여전히 의견다툼이 자주 발생하긴 하지만요.


1층은 더 하겠지만, 2층은 꽤나 넓은 편이었습니다.

방이 몇 개나 있는지 얼핏 봐서는 샐 수 조차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룻밤으로는 도저히 다 돌아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남편과 따로 갈라져서 보지 않고 같이 다녔는데,

이런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웬만해서는 그이 곁에서 잘 떨어지지 않거든요.

제가 그 사람에게 많이 의지를 하는 편입니다. 그이도 그걸 싫어하진 않고요.



그 때 2층에서 제가 세희씨 애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꺼림직해서 아마 남편에게 얘기함으로써

마음의 후련함도 좀 얻고 또 늘 그러하듯 그이 의견도 듣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다름아니라 세희씨가 저녁 먹을 때 몰래 해준 얘기인데

근식씨의 폭행이 갈수록 심해져서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욕지거리나 손찌검은 기본이고 어떤 날에는 발길질까지 하는데

갈수록 강도도 심해져서 어떨 때는 이러다 죽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나 봐요.

원래 근식씨가 그런 사람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말 끔찍하고 싫은 기분이었습니다.

세희씨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남편에게 얘기를 하니 그이도 근식씨의 문제와 세희씨의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을 해 주었는데 세희씨의 대처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그런 스타일의 남자에게는 고분고분히 당하기만 하면

행동의 한계지경을 넓혀주기 때문에 상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무슨 심리학 이론을 꺼내기도 했는데,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하여간 그렇게 둘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2층을 1시간 정도 살피고 있었는데

아래쪽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세희씨였고,

마침 아까의 얘기도 있고 해서 근식씨의 소행이란게 본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같이 1층에서 작업하다가 근식씨의 심정을 거슬러 맞은게 아닌가 하고요.

    - 자기도 들었지? 세희씨, 세희씨인것 같아. 어.. 어떡해?

    - 응. 여자 목소리였으니까, 그 사람밖에는 없겠지.

    - 그.. 근식씨가 또 세희씨를 때린 것 같은데. 어떻게, 내려가봐야될까?

    . 아니. 단순히 때린 수준은 아닌 것 같아. 그 정도라면 소리가 더 들려야지.
      신음소리라던가. 더 때리는 소리라든가, 소리를 지른다거나 하는거 말야.
      봐. 지금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의식을 잃었다거나 아니면 크게 다쳤을 수도 있겠는걸.


역시나 남편은 침착하게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이는 똑똑한 사람이에요. 상황판단력도 좋은데다

눈치도 굉장히 빠르고요. 그래서 가끔은 조금 무섭기도 한데

이런 일들에 부딪치면 의지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랍니다.

저는 계속 남편을 쳐다봤습니다.

늘 그랬듯 답을 내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 잠시 내려갔다 올게. 당신은 여기에 있어. 괜히 위험해질 것도 같으니.
      내가 상황을 좀 파악해볼테니 여기 어디 방쯤에 숨어있다가
      내가 부르면 나오면 돼. 알았지?

    - 으… 응. 하지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그 사람이 어쩌면 우리까지…

    - 한두 번 한게 아냐. 쉽게 다를 수 있는 녀석이니까. 걱정마.


그이는 벽에 세워져있던 골프백을 뒤져 채를 하나 꺼내더니

밑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 사람이 말한대로 복도 끝에 있는 방에 들어가 숨었구요.

…지금 생각하면… 흑. 그 때, 남편을 꼭 말렸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같이 내려갔더라면 나았을지도 몰라요.

그게, 그게 마지막일거라고는, 그렇게 죽어버릴거라고는… 흐흑

그 때는 정말… 알지 못했습니다.


3부: 보라의 진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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