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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추석특집 - 귀향

문★성 2007.10.03 10:43 조회 수 : 396

[자전거 타고 고향으로]

2007년 9월 21일 새벽 다섯시 십오분경.
가방을 줄줄이 달아매어 한껏 무거워진 자전거 '샴푸'와 함께 현관을 나섰다.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지만 바늘로 콕 찌르면 금세라도 한바탕 때려부을양
하늘은 먹구름으로 두껍게 덥혀있었다.

걱정스런 마음에 전날부터 거듭 확인한 일기예보는
입을 모아 '오전에 비. 오후에 갬'을 외치고 있었고
이미 비내음에 물씬 적셔진 공기와 사뭇 으슬으슬한 바람은
굳이 이십 수년의 인생경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곧 비가 올 것이라는 불안함을 야기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별로 망설여지지는 않았다.
나중에 비바람 몰아치고 천둥번개 칠 수는 있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분명 달릴 수 있고, 또 설혹 비가 온다한들 오후에 갠다지 않는가.

"아직 채 시작하지도 않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그리고 오더라도 곧 끝날 고생,
그게 무서워 포기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니까"


나는 첫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집을 떠났다.

- 자 출발이다 -


[장애물]

출발하기 전날 밤, 자리에 누우며
내 여행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하나씩 나열해보았다.

- 한국의 유일무이한 날씨예보기관인 기상청에서 발표한 우천예고
- 어제부터 시작된, 신경성 위염으로 의심되는 복통
- 3일전부터 계속된 왼쪽 대퇴부쪽 근육통과 오른쪽 무릎의 통증
- 턱, 손목, 무릎, 고관절 등 관절에 문제가 유난히도 많은 허약체질
- 학교에서 강의실도 잘 찾지 못하는 심각한 방향치
- 여행경로는 자동차로도 가본적 없는 초행길
- 일반 자전거보다 작은 18인치의 바퀴.
- 공대출신치고는 쪽팔릴 정도의 상당한 기계치. 고장나면 감당못함
- 가방 세 개를 차지하는 무거운 짐들. 짐받이도 달려있지 않은 자전거
- 최근 5번의 회식과 2번의 출장으로 인한 체력의 저하
- 낮은 기어 단수를 가진 자전거라 오르막에서 불리함 예상
- 평소에 유산소 운동은 거의 하지 않는, 어쨌거나 내일 모레면 서른되는 나이
- 자전거 동호회에서도 웬만해서는 하지 말라고 말리는 '혼자만의 국도여행'
- 200km 정도의 장거리. 난 하루 50km 달려본게 고작 최고기록  



- 들고갔던 짐. 가방 3개. 추석 때 입을 옷들과 책까지. 개념없었다 -


끝도없이 이어지는 걱정의 고리를 억지로 매듭지으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미개한 종족들이 자기 손으로 우상을 뚝딱거리며 만든 후 그 앞에 절하며 소원을 빌듯
내 스스로 갖은 장애물을 자아낸 후 그것들을 곱씹으며 이래서야 포기할 수밖에 없잖아 하며
작아져만가는 내가 꼴사납고 우스웠다.  

"왜 성공의 이유가 아니라 실패의 이유만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하다못해 내가 랜스 암스트롱 버금가는 절정의 체력을 갖춰
24시간을 쉴새없이 달려도 땀한방울 나지 않고
사천오백만원짜리 은나노 자전거를 보유했으며
GPS System을 뇌속 여기저기에 쑤셔박아 무궁화 위성과 WCDMA 7.2Mbps로 통신한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 마음을 잘 다져먹지 않는다면
장애들은 역시나 꽃처럼 피어나고 변명들은 무성해질 것이다.
  
실패하지 않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패의 이유 따위, 생각하지도 말자.  
어쨌거나 난 이 여행에서 무조건 성공할 운명이기에, 그렇게 확신하기에
저 십여가지의 장애들을 하나씩 꿰뚫어가는 쾌감을
여행의 성공으로 인한 성취감과 더불어 덤으로 향유해주면 되는 것이다.

"장애가 많으면 그것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더 많이 배우게 되고,
또 그만큼 더 재밌는거야"


난 참으로 푹 잘 수 있었다.


[궤도] 집 → 대전역

쉐쉐쉐
쉐쉐쉐

땅을 훑고 지나가는 꺼림직한 바람소리를 헤치며
일차 목적지인 대전역으로 향했다.
대전에 살고있다고는 하지만 대전역은 우리집에서 택시비로만 만원이 훨씬 넘게 나오는 곳,
자전거로는 아직 한 번도 가본적 없다.

내겐 베이스캠프나 다를 바 없는 신탄진역까지는 가볍게 도착했는데
문제는 그 후부터였다. 자전거도로 뿐만이 아니라 인도까지 사라지기에
차도에서 자동차들과의 본격적인 실랑이를 해야하는 것이다.
늘 안전 및 저속라이딩을 만끽해온 나로서는 차들과 한 길에서 달린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부담,
게다가 새벽녘이라 차들은 자신들이 내뿜는 헤드라이트의 빛을 따라잡기라도 하는 듯
마구잡이로 질주해댔으니 그 옆의 나는 한 떨기 청초한 수선화처럼 오돌오돌 흔들릴 뿐이었다.


- 길 건너기조차 부담스럽다 -

그런 와중에서 설상가상이라고, 설마했던 장애물들이 실제로 고개를 드밀어오기 시작하였다.
나무를 휘게 만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하필이면 서울행을 고집하며 불어닥치고
준비되지 않은 체력은 몇 번의 오르막길에서 벌써부터 크게 소모되었으며
방향치 문성은 초장부터 동서남북을 전혀 가려내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10분의 1도 채가지 않았는데도 다리가 슬슬 저려오기 시작했다.
어제의 근육통이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바람, 바람 -

뭐. 이쯤이야 다 예상했던 것 아닌가.
생각보다 답답한 출발과 예상보다 심한 어려움에 위축되기는 했으나
벌써부터 관둔다거나 다른 편한 길을 모색해본다거나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번 여행의 주제를 괜히 다음과 같이 정한게 아니란 말이다.  

"문성은 근성이다"
  

그렇게 한참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쯤이었나,
다행스럽게도 서서히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두터운 구름이 아스라히 깨지고 그 틈새로 빛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맞바람은 어느새 땀을 식혀주는 꽃바람으로 변했고
초반에 긴장했던 근육은 자기 힘을 찾아가고 있었다.
신기했다. 일기예보가 완전히 무시되는 현실이 놀라웠다.  



날씨가 풀리니 페달에 힘이 실리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대류권중간권성층권열권을 뚫고 뚫어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인공위성처럼
드디어 나도 내 궤도를 찾은 것일까.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귀에 꼽고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고
가게를 여는 사람들의 분주함과
교복입은 학생들의 부산한 발걸음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나는 목적지에 다 온 사람인양
치아를 시익 드러내며 기분좋게 바람을 갈랐다.

그러나,
겨우 대전역에 도착했을 뿐이었다.




  
[어리석음] 대전역 → 김천

긍정의 힘, 좋다, 좋아.
밝고 낙관적인 사고, 캬, 멋진 말이다.
자신감과 포기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 음! 반드시 필요한 삶의 자세지.

그렇지만, 물러설 때는 물러서야 한다.
현실에 대한 자각과 미래에 대한 가늠없는 무모한 도전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에 불과할 뿐이다.

장거리여행 경험이 일천한 나는 겁도 없이
대전에서 옥천으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즐비한 오르막길에
내 무릎힘만으로 도전했다.
기어단수가 낮고 짐이 많기에 페달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그저 다리의 근력으로 억지로 누르면서 오르막을 넘고 또 넘었다.


- 보기엔 쉬워도 상당히 어려운 오르막길 -

고개를 맞닥뜨릴 때마다 멀리 내리막으로 꺾여 내려가는 변곡점을 바라보며
저기까지 내가 꿋꿋하게 올라가지 못하면
마치 낙오자라도 되는양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길이 험준하다고하여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거나 쉬었다 가는 것은
이번 여행에 있어 반드시 피해야할 부끄러운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출발 4시간 30분만에 무릎이 우는 소리를 냈다.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아프기 시작했다. 움찔할 정도로 아팠다.
오른쪽이 아프길래 그쪽은 살살 돌리고 왼발에 힘을 실었더니
금새 왼쪽도 똑같아져버려 결국 페달 돌리는 한 바퀴 한 바퀴가 고통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의 무릎통증과는 전혀 다른 류의 아픔이었고
무리한 승부로 인한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찔했다. 아직 3분의 1도 채 커버하지 못했는데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두 무릎이 고장이 나버린 것이다.
이 여행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집까지 완주하는 것,
결코 작은 오르막 하나하나에 자존심을 걸 필요는 없었는데
최종적인 목표, 비전을 고려하지 못한 아둔함으로 인해
코앞의 작은 문제와 작은 어려움들에 집착하였고
결국엔 나를 지탱해줄 소중한 것을 망쳐버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때 아프기 시작한 무릎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평속 20~25km, 최고시속 50km 정도로 제법 빠르게 달리던 내 발을 묶어
평속 15km의 굼벵이로 만들어버리고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전체적인 일정이 크게 늦춰지는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어려움에 집착하여 건강을 해치고,
사람을 배신하고 술, 마약 등 잘못된 길로 접어들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등 어리석은 길을 택하곤 한다.
내가 그들과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완전 바보짓했네. 이번에는"

국도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주물러대며 혼자 중얼거리는 나를
자동차들은 무심히도 휙휙 잘도 지나치고 있었다.


- KTX를 바라보며 잠시 멍…정말 편하겠다 -


- 노근리 학살사건 현장이 4번 국도에 있다 -


- 영남제일문, 혁신도시김천. 좋은 이름은 다 가져갔네 -


- 엉겁결에 김천에서 문성찾기를 해버렸다 -



[여행은 길어지고] 김천 → 왜관

쉼 없이 펄펄 날듯 달려가던 내 여행은 무릎의 망가짐으로 인해 기세가 완전히 꺾여버렸다.
다리가 무거우니 속도도 나지 않고 체력은 밑바닥에서 겨우 찰랑찰랑 거리는 수준으로 전락,
휴식을 수시로 가져줘야 그나마 버틸만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도중에는 음료수 통의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물이 가방에 모두 쏟아져버리는 사건이 발생,
다음 시가지가 나올 때까지 한동안을 갈증과 씨름해야 했다.
그 때는 길거리에 버려진 찌그러진 캔 하나에도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런 갈증은 군대생활 이후 실로 오래간만에 느껴지는 것이었다.  
가방 속에 쏟아진 물을 마셔버릴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니까.


- 도저히 대구까지 갈 체력이 안 되어서 왜관으로 만족을 -

그리고 드라마틱한 연출을 위해서인지 최악의 난코스가 등장하였다.
김천에서 왜관으로 향하는 국도는 애초에도 2차선의 좁디 좁은 길인데
공사까지 행해지면서 극도로 험하고 살벌한 길로 변모해있었다.
길이 막히니 다른 도시쪽으로 돌아가라고 안내표지판이 충고해주긴 했지만
1KM가 버거운 나로서는 도저히 핸들을 꺾을 수 없었다.

땅값이 비싸서 그랬는지 갓길은 타지역에 비해 치사하게 좁았고
그마저도 모래로 덮여있어 미끄럽거나, 아예 막아놓은 곳까지 있었다.
덤프트럭 같은 대형 차량은 평소에 차를 타거나 길을 걷다 마주쳐도 위험이 느껴지는데
스포츠카로 착각한 듯 광속으로 돌진하는 이 괴물들과 한 차선을 공유하며 나란히 달려야 되니,
그야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 이런 길이 계속이었다 -  


수시간 동안 대형차량들과의 이인삼각 레이싱은 계속되었고
밉살스럽게도 그 와중에 우리의 오르막길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등장해주신데다
Made in 문성의 허약무릎은 갈수록 상태가 악화되어갔다.
특별부록으로 점심때부터 뜨거워진 태양까지 도로에 작열하니
각본상 준비하지 않았던 멘트가 애드립으로 절로 튀어나왔다.

"에잇! 이 고생, 절대 잊지 않겠다!!"

길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주구장창 외쳤댔는데 물론,
당연히 잊혀질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그 때의 외침만 뚜렷할 뿐
느낌, 고통 등이 완연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매번 그래왔듯이
이런 고생들은 내 머리가 아닌 내 근성에 스며들고 내 깡다구에 뿌리를 박아
언제든 힘든 일이 닥칠 때 또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전진케해 줄 것이다.

왜관시 인근이 되어서야 길은 겨우 넓어졌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해방을 선언할 수 있었다.  
출발 후 12시간 경과. 밥먹거나 쉬었던 시간 제하면 자전거 끈 건 9시간이 조금 넘었을 것이다.
더 달리고 싶었지만 무릎이 걱정되기도 했고, 야간국도로의 자전거 주행은
12차선 고속도로 무단횡단과 동일한 수준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
그나마 위락시설이 제법 갖춰져 있는 왜관시내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다.

역 주위를 몇 바퀴 돌아 하룻밤 2만 5천원짜리 허름한 여관방 하나를 잡았고
땀에 쪄든 몸을 씻고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하나를 먹어 칼로리를 채웠다.
위치를 확인해보니 3분의 2정도 달려왔는데
어쨌든 간에 내일은 오늘보다 짧게 달리고,
고로 오늘보다는 고생하지 않을 노릇이니
무리해서라도 오부능선을 넘은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놓은 것이 결국 나를 하여금 하게끔 만드니, 그게 바로 자신감이지"

통증이 있는 무릎, 허벅지, 허리 쪽에 파스를 붙이고 시커멓게 타들어 따갑기까지 한
피부에 연고를 발라준 후 잠이 들었다.
낯선 곳 후진 여관방이었지만 편안하고 아늑했다.  



[도착] 왜관 → 대구(영천)

아침 여섯시 삼십분,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여관을 출발.
통증은 여전했지만 컨디션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이미 나는 경북에 들어와 있었고 대구시를 관통한 뒤 영천시로 들어가면
얼마가지 않아 우리집을 만나게 될 터, 마음도 가벼웠다.


- 산호장 여관앞에서, 썬크림으로 얼굴이 희멀겋다 -

과연 우리나라 삼대도시인 대구까지의 길은 넓고 쾌적했으며
날씨는 살짝 흐려 달리기 더없이 좋은 상태였다.
무릎부상으로 제 속도를 못내고 헥헥거리는게 못내 아쉬웠지만
빨리가든 늦게가든 바퀴가 구를 때마다 목적지가 다가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
느긋한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다.


- 희망찬 칠곡을 지나, 저땐 정말 희망찼다 -

오르막길은 역시나 계속되었는데, 그 못지 않게 내리막길도 계속 되기에
가히 나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다보면 가장 즐거운 순간이 바람을 맞으며
활강하는 것인데, 사실 그것도 오르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생각하면 오르막길도 내리막길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사실 평지를 달리는 것이 가장 재미가 없다. 지루하고 지겹다.
인생도 너무 평평하고 아무 어려움이 없다면 역시나 지루하고 지겨울 터,
크고 작은 고개를 넘어가며 다이나믹하게 사는게 적어도 내겐 삶의 큰 즐거움인 듯 싶다.
그래서 이렇게 자전거여행이라는 고개도 굳이 만들어 넘고 있는 것이겠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순간에도
곧 이어질 오르막길을 걱정하여 그 기쁨을 맘껏 누리지 못했다는 것.
즐거움에 있어서만큼은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나를 자주 본다. 자전거 탈 때도 예외는 아니니.
까르페 디엠, 까르페 디엠이로다.


- 과적차량도 없어서 대구까지의 길은 양반이었다 -


슬슬 익숙한 지명들이 눈에 들어오는 대구 시내에 진입하였다.
대전에 비해 크게 혼잡한 교통상태 때문에 더이상 갓길 주행을 하지 못하고
인도로 올라탔는데 왠걸 집에 갈 때까지 자전거 도로가 1m도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김천도 배부르게 가지고 있는 자전거 도로인데,
내가 태어나서 자란 도시이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 그래도 대구다! 대구 안이다! -

대구에서부터 영천까지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는데
내가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승용차를 타고 지나갔던 곳을
자전거로 하나하나 짚어가는 색다른 재미가 있어 만족스러웠다.
어릴 때 길잃어 헤맸던 태전동,
서울에서 버스타고 올 때 정차하던 서대구터미널,
얼마전에도 누구 결혼식 갔었던 인터불고 호텔,
고속도로 탈 때 늘 이용하는 동대구 IC,
대구 올 때마다 매번 이용하는 지하철 안심역,
우리학교 다음으로 많이 지나다닌 경일대학교...
집에 다가갈 수록 나와 공유하는 기억의 농도가 진한 지명들이 차례로 등장하고
그에 따라 내가 느끼는 감정도 반가움에서 감동과 감격으로 발전되어갔다.

- 안심역. 지하철 1호선의 종착역이다 -


- 하양에서 감격의 200km를 주파했다 -


그리고
드디어 멀리 보이는 우리집,
206km를 달려,
13시간 40분을 달려,
총 18시간을 소요하여
드디어 멀리 보이는 우리집.

감동이 내 감정의 그릇에 넘쳐 흐른 탓인지
아님 육체의 피로가 갑작스레 진하게 다가와서인지
집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해있었다.

다 왔구나.
정말.  

해냈구나. 자식.


- 집근처 호숫가에서 이쯤해서는 신이 났다. 신이 났어 - 


- 집 앞에서. 좋다고 웃고 있다 -



[정리]

이후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고 놀라주고 칭찬해주었는데
사실 별거 아니었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짧은 거리였으니까, 짧은 기간이었으니까,
체력적으로 전혀 준비되지 않은 나도 한 거니까
누구나 출발만 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국토종단, 미국횡단 등에 익숙한 자전거 동호인들에게는
코웃음칠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건 어디 자랑할게 아닌 내 자신을 위한, '내 청춘의 알리바이'이니까."

나중에 나이들어

'야 문성 너 이십대를 뭐하고 보낸거냐. 젊은 날을 어떻게 보냈냐고'

라 자문할 때
내가 그동안 했던 많은 노력들,
남들은 이해 못하지만 스스로는 특별하다 여긴 여러 허튼짓들,
그로인해 이룰 수 있었던 잊지못할 성취 중 하나로
이 여행을 자신있게 언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경험은 또 하나의 자양분이 되어
내 뿌리에 뿌려질테니, 내 줄기에 스며들테니
나는 여전히 작고 볼품없는 놈이지만
내 안의 나는 또 한 뼘 더 자랄 수 있으리라 믿는다.


- 문성은 근성이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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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화요단상] 이해 문★성 2007.10.23
94 [소설] 거짓말 #3 문★성 2007.10.06
» [기행] 추석특집 - 귀향 [6] 문★성 2007.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