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긴 한데요,
그래도 생각나는 대로 말씀을 드릴게요.
시간은 한 열 시는 넘었던 것 같고,
어차피 저택은 2~3일 더 빌 예정이었으니
다들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남편이 같이 저녁 먹을 때 식당에서 큰 소리쳤듯
그날 안 되면 그 다음날 또 오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비밀통로도 알겠다, 집이 언제까지 비는지도 알겠다,
도둑질도 이렇게 맘 편한 도둑질은 없겠거니 생각했을 정도였죠.
집에 들어온 과정은 아시는 바와 같고요,
들어온 후에 저녁 먹을 때 얘기한 대로 팀을 나누어
명호씨와 보라가 2층을, 남편과 제가 1층을 뒤져보기로 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먼저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 후에
남편은 방 쪽을, 저는 거실 쪽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사실 남편은 손이 크고 행동거지가 굵은 사람이라 방 같은 것을 세세히
잘 뒤지는 타입은 아닌데요, 그 날은 웬일인지 굳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더라고요.
어쩌겠어요. 보셨겠지만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서요
그 사람이 뭘 하겠다고 우기면 저는 끽 소리도 못해요.
요즘은 좀 잠잠해졌지만 예전에는 주먹 날라오기가 일쑤였다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제가 거실을 죽 살펴봤습니다.
노인네 혼자 사는 집임에도 크고 작은 장식품들은 어찌나 많은지
그거 하나하나 살펴보려면 하룻밤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어요.
소파나 탁자 같은 것이 척 보기에도 상당히 고가로 보였지만
저희 사정상 그런 것들을 들고 나갈 수는 없어서, 그게 좀 아쉽더라고요.
삼십 분 정도 동안 거실 하나를 체크한 후 복도를 따라
다음 거실 쪽으로 이동을 했어요. 그 집엔 아마 거실이 세 개인가 있을 거예요.
마지막 것은 사실상 식당이라 봐도 무방하지만요.
첫 번째 거실과 두 번째를 잇는 복도는 꽤 길었는데,
한 삼십 미터? 예, 한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았어요.
왜 저희 첫째 애 초등학교 운동회가 얼마 전에 있었잖아요.
우리 애가 거기서 달리기를 했는데
아 글쎄 그 콩알만한 녀석이 일등을 했지 뭐예요.
우리 아들이지만 어찌나 대견스럽고 이뻐보이는지.
아이고 내가 뭔 소리를 하는건지, 죄송합니다.
여하튼 그 때 봤던 오십 미터 달리기 거리보다는 좀 짧아보이더라고요.
그렇게 복도를 한 절반쯤 걸어왔을 거예요.
왼쪽에 나무로 된 쪽문을 하나 발견했어요.
형사님도 보셨다시피 애초에 원목 분위기의 인테리어인지라
크게 위화감 같은게 생길만한 모습은 아니었는데요,
그래도 뜬금없이 복도 한복판에 있으니까 이상하긴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그걸 보자마자 문을 조금 열어봤어요. 저도 모르게요.
왜 사람 심리가 그렇잖아요. 뭐가 들었을까 궁금해지고,
호기심 같은게 생기잖아요. 뭐, 보물창고일 수도 있는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문을 채 다 열기도 전에 그 안에서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온거예요.
남자, 예. 분명 남자 비명소리였어요. 명호씨라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사실 자세히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죠. 너무 무서웠거든요.
비명이라도 지를 줄 알았는데 세상에, 입도 벌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만큼 무섭고 당황스러웠어요.
누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쫓아올 것만 같았거든요.
도망쳐야겠다. 그래야 산다. 이런 생각이 들어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돌려
무작정 남편이 있는 방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아 글쎄 몸이 얼어붙어서인지
몇 걸음 채 딛지도 못하고 제 발에 걸려 넘어져버린거있죠, 아주 우스꽝스러운 몰골로요.
그런데 말예요. 형사님! 그 때 남편을 정면에서 따악! 마주친거예요.
이 양반은 분명 방에서 헤매고 있어야 되는데 제 조금 뒤에 따라오고 있었던 거죠.
수상하죠? 그치만 그 때는 이런 생각하지도 못하고 남편을 붙잡고 외쳤죠
- 여보여보! 저.. 저 들었어요? 비명소리요!!
- 어? 어! 그래.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는 했는데, 그게 비명소리였어?
- 네에! .. 명호씨 같아요!
- 뭐야?! 명호라고?
- 들어가봐요! 살았다면 얼른 구해야죠!
- 미, 미쳤어 당신?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들어가라고?
- 그럼 어떡해요? 경찰이라도 불러요?
- ...
- 여보! 진짜 명호씨라면, 버리고 가면 안되잖아요. 나중에 발견이라도 되어봐요!
남편은 조금 인상을 쓰더니만
야구방망이를 고쳐 쥐고는 문을 열고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문을 열 때부터 다리가 후들거리는게 뒤에서도 다 느껴지더라고요.
그 때는 머리가 멍해서 아무 생각 못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람, 참 못난 사람이에요.
참 악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이제부터 말씀드리겠지만요.
2부: 아내의 진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