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일 말인가요?
물론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이렇게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요,
그때 장면들이 눈앞에 차르르 펼쳐져요. 아주 자세하게 말입니다.
- 기다려요!!
그녀는 거의 악을 쓰듯이 소리쳤습니다.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죠. 내가 아는 아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이미 그때의 저는 흥분으로 인해 그야말로 통제불능 상태였거든요.
- 제발... 안 돼요... 가지 말아요.
제가 전혀 주저치 않자 이번에는 내 팔을 와락 끌어안으며 애원조로 말했습니다.
그건 마치 울음을 참지 못하면 나를 말릴 수 없게 됨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나오는 눈물을 억누르는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악스럽게 힘을 주어 그녀의 손을 떼어냈습니다.
- 이거놔! 어차피 경찰을 부를 수도 없잖아? 금방 다녀올테니 말리지마라고!
그녀는 순간 멈짓 하더니 두어 발걸음 뒤로 물러서더군요.
아마 그 때 제 얼굴은 진짜 무서웠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악한데다가
이렇게, 이렇게 표정을 조금만 일그러뜨려도 제법 무시무시한 얼굴이 연출되거든요.
보시기에도 그렇죠? 으흐흐흐.
저는 지하로 내려가는 문 앞에 섰습니다.
- 살았으면 구해와야 되고, 죽었으면 시체라도 숨겨놔야 해.
나중에 발견되면 덮어쓰는 건 우리라고.
- 예...
- 분명 여기서 소리가 들렸다, 그거지? 명호 이자식.
여기엔 뭣하러 내려간거야.
사실 그 때는 무진장 떨리더군요.
하기사 누구라도 조금전까지만해도 비명소리가 울러펴지던
문앞에 선다면 긴장할 수밖에 없을겁니다.
저도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문을 열면 칼 같은 것이 휙 날라와서
가슴팍에 꽂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도 그렇게까지 큰 소리를 쳐댄 마당에 뒤돌아선다거나
살금살금 문을 여는 나약한 모습은 보일 수가 없으니
저는 될대로 되라는 각오로 문을 확 잡아당겨 열었습니다.
다행히 지하의 쾌쾌한 냄새외에는 아무 것도 튀어나오지 않더군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습니다.
안을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제법 긴 계단이 죽 이어져있었고
통로에는 희미한 백열등이 켜져있어
굳이 랜턴을 켜고 내려갈 필요는 없겠더라구요.
저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 후, 안심하고 기다리라는 손짓을 보내었습니다.
이렇게 오른손을 펴서 아래 위로 흔들어주면서요.
그녀는 여전히 걱정스런 눈빛이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저는 서서히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계단이 너무 좁아서 똑바로 내려가기가 어려워
할 수 없이 몸을 틀어 발바닥을 대각선으로 내려놓으면서 내려갔습니다.
낡은 계단인지라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는데
그것이 못내 더 불안하더군요.
안에 저를 노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분명히 이 소리를 들을테고
그렇다면
분명히 전 그 '누군가'에 비해 불리한 입지에 처해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저희는 그 저택에 있어선 어디까지나 '불청객'이고
지하실 구조 같은 것은 알리가 없으니까요.
내려가다보니 긴장해서인지 몸에 땀이 차기 시작했고
야구방망이를 쥔 손바닥에서도 땀이 나 미끌미끌한 기분이었습니다.
휘두를 때 미끌어지거나 놓치면 안 되니까 얼른 바지에 손을 여러번 문질러 닦아냈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계단에 닿았습니다.
계단 끝에서 무언가가 팍 튀어나올 것만 같아
조심스럽게 몸을 벽쪽으로 붙이고 스며들듯 안으로 들어갔죠.
지하실 안은 한조각 빛도 없이 어두웠습니다.
서 있는 곳 근처의 벽을 살짝 더듬어보았습니다만 전원스위치는 찾을 수 없었구요.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불을 켜는 것이 자연스러우니
분명 전원스위치는 그 부근에 있었겠지만 섣불리 더듬거리다가는
더 위험할 것 같기도 해서 애써 찾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주머니에 넣고간 작은 랜턴을 살며시 켰습니다.
휴대용이라 빛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형체를 살펴보기에는 충분하더군요.
랜턴으로 여기저기를 비추며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랜턴 때문에 방망이마저 한 손으로 들게 되니 불안감은 더 커지더군요.
내 위치를 적에게 고스란히 보여주는 셈이었고
또 한 손으로는 갑작스런 공격을 막아내기 충분치 않으니까요.
지하실은 캄캄하기 그지 없었지만 눈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이런저런 박스류의 짐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은 감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먼지는 지독히 많았구요, 숨쉬기가 괴로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숨소리나 움직임, 부스럭거리는 소리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저 말고는 어떤 인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걸음 정도 안으로 들어가다보니 어느새 반대편 벽에 도달했습니다.
지하실은 의외로 작았고 거기서는 명호도, 가해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분명 비명소리는 여기서 났다고 얘기했습니다만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비명소리 비스무레한 소리를 듣긴 했으되
조금 멀리 떨어져있어가지고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아내가 지하실로 향하는 문을 가리키며 영호인 것 같다고 하는 바람에
내려간 것이었거든요.
아내가 분명 잘 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고 올라가서
잔소리를 퍼부어줘야자 다짐하며 돌아서는 찰나였습니다.
때마침 위에서, 제길
여자의 비명소리가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아내인 듯 했습니다.
아차, 이거 당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 그래도 캄캄한 눈 앞이 더 캄캄해지더군요.
정말 전 미친 사람처럼 계단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부: 남편의 진술 (끝)
물론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이렇게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요,
그때 장면들이 눈앞에 차르르 펼쳐져요. 아주 자세하게 말입니다.
- 기다려요!!
그녀는 거의 악을 쓰듯이 소리쳤습니다.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죠. 내가 아는 아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이미 그때의 저는 흥분으로 인해 그야말로 통제불능 상태였거든요.
- 제발... 안 돼요... 가지 말아요.
제가 전혀 주저치 않자 이번에는 내 팔을 와락 끌어안으며 애원조로 말했습니다.
그건 마치 울음을 참지 못하면 나를 말릴 수 없게 됨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나오는 눈물을 억누르는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악스럽게 힘을 주어 그녀의 손을 떼어냈습니다.
- 이거놔! 어차피 경찰을 부를 수도 없잖아? 금방 다녀올테니 말리지마라고!
그녀는 순간 멈짓 하더니 두어 발걸음 뒤로 물러서더군요.
아마 그 때 제 얼굴은 진짜 무서웠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악한데다가
이렇게, 이렇게 표정을 조금만 일그러뜨려도 제법 무시무시한 얼굴이 연출되거든요.
보시기에도 그렇죠? 으흐흐흐.
저는 지하로 내려가는 문 앞에 섰습니다.
- 살았으면 구해와야 되고, 죽었으면 시체라도 숨겨놔야 해.
나중에 발견되면 덮어쓰는 건 우리라고.
- 예...
- 분명 여기서 소리가 들렸다, 그거지? 명호 이자식.
여기엔 뭣하러 내려간거야.
사실 그 때는 무진장 떨리더군요.
하기사 누구라도 조금전까지만해도 비명소리가 울러펴지던
문앞에 선다면 긴장할 수밖에 없을겁니다.
저도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문을 열면 칼 같은 것이 휙 날라와서
가슴팍에 꽂히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도 그렇게까지 큰 소리를 쳐댄 마당에 뒤돌아선다거나
살금살금 문을 여는 나약한 모습은 보일 수가 없으니
저는 될대로 되라는 각오로 문을 확 잡아당겨 열었습니다.
다행히 지하의 쾌쾌한 냄새외에는 아무 것도 튀어나오지 않더군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습니다.
안을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제법 긴 계단이 죽 이어져있었고
통로에는 희미한 백열등이 켜져있어
굳이 랜턴을 켜고 내려갈 필요는 없겠더라구요.
저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 후, 안심하고 기다리라는 손짓을 보내었습니다.
이렇게 오른손을 펴서 아래 위로 흔들어주면서요.
그녀는 여전히 걱정스런 눈빛이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저는 서서히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계단이 너무 좁아서 똑바로 내려가기가 어려워
할 수 없이 몸을 틀어 발바닥을 대각선으로 내려놓으면서 내려갔습니다.
낡은 계단인지라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는데
그것이 못내 더 불안하더군요.
안에 저를 노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분명히 이 소리를 들을테고
그렇다면
분명히 전 그 '누군가'에 비해 불리한 입지에 처해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저희는 그 저택에 있어선 어디까지나 '불청객'이고
지하실 구조 같은 것은 알리가 없으니까요.
내려가다보니 긴장해서인지 몸에 땀이 차기 시작했고
야구방망이를 쥔 손바닥에서도 땀이 나 미끌미끌한 기분이었습니다.
휘두를 때 미끌어지거나 놓치면 안 되니까 얼른 바지에 손을 여러번 문질러 닦아냈습니다.
이윽고 마지막 계단에 닿았습니다.
계단 끝에서 무언가가 팍 튀어나올 것만 같아
조심스럽게 몸을 벽쪽으로 붙이고 스며들듯 안으로 들어갔죠.
지하실 안은 한조각 빛도 없이 어두웠습니다.
서 있는 곳 근처의 벽을 살짝 더듬어보았습니다만 전원스위치는 찾을 수 없었구요.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불을 켜는 것이 자연스러우니
분명 전원스위치는 그 부근에 있었겠지만 섣불리 더듬거리다가는
더 위험할 것 같기도 해서 애써 찾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주머니에 넣고간 작은 랜턴을 살며시 켰습니다.
휴대용이라 빛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형체를 살펴보기에는 충분하더군요.
랜턴으로 여기저기를 비추며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랜턴 때문에 방망이마저 한 손으로 들게 되니 불안감은 더 커지더군요.
내 위치를 적에게 고스란히 보여주는 셈이었고
또 한 손으로는 갑작스런 공격을 막아내기 충분치 않으니까요.
지하실은 캄캄하기 그지 없었지만 눈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이런저런 박스류의 짐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은 감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먼지는 지독히 많았구요, 숨쉬기가 괴로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숨소리나 움직임, 부스럭거리는 소리 따위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저 말고는 어떤 인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걸음 정도 안으로 들어가다보니 어느새 반대편 벽에 도달했습니다.
지하실은 의외로 작았고 거기서는 명호도, 가해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분명 비명소리는 여기서 났다고 얘기했습니다만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비명소리 비스무레한 소리를 듣긴 했으되
조금 멀리 떨어져있어가지고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아내가 지하실로 향하는 문을 가리키며 영호인 것 같다고 하는 바람에
내려간 것이었거든요.
아내가 분명 잘 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고 올라가서
잔소리를 퍼부어줘야자 다짐하며 돌아서는 찰나였습니다.
- 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때마침 위에서, 제길
여자의 비명소리가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아내인 듯 했습니다.
아차, 이거 당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 그래도 캄캄한 눈 앞이 더 캄캄해지더군요.
정말 전 미친 사람처럼 계단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부: 남편의 진술 (끝)